[마음을 읽다 03]

행복한 책 읽기 2회기 (광야에 선 인간)

by 걷고


날짜와 거리: 20220314 - 20220315 17km

코스: 화요 걷기 (한강공원과 상암동 공원)

평균 속도: 4.6km/h

누적거리: 6.299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두 번째 모임이다. 10주간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3시간 동안 진행된다. 진행자 수녀님 포함 총 9명이 모여 공부하며 나눈다. 두 분이 참석하지 못해 7명이 모임을 시작했다. 그중 한 분은 코로나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 코로나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 관리 능력 한계치를 벗어나 각자 검사하고 약 처방받아 자가 격리하며 견디고 있다. 빨리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돌아서길 희망해 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똘똘 뭉쳐 전의를 불사르고 있으니 쉽게 함락당하지는 않겠지만, 러시아가 침략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면 오히려 더 심한 상항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쟁은 승자나 패자 양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큰 상처만 남긴다. 국민들의 권리와 자유를 무시한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의 전쟁놀이에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만 고통받고 있다. 빨리 정전이 되길 기원한다. 전쟁 상황에서 고통받는 모든 분들이 빨리 고통에서 벗어나길 마음 모아 기도한다.

오늘은 책, ‘광야에 선 인간’을 읽고 나누는 시간이다. ‘클러스터 연상법’이라는 기법을 이용해서 ‘광야’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종이 가운데에 ‘광야’라는 단어를 쓰고 그 단어와 연상된 단어를 이어 쓰는 방식이다. 단어를 이어 쓰다가 막히면 원점으로 돌아와 다시 시작한다. ‘광야-사막-걷기-목마름-고통-외로움-두려움-혼자-오아시스-희망-걷고-도착-휴식’, 총 12개의 단어로 끝이 난다. 다시 시작해 본다. ‘광야-넓음-무한-대도무문-용서-포용-존재의 고마움-사랑-하나 됨’으로 끝난다. 첫 번째 단어들을 들여다보니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며 희망을 찾아 걷고 또 걸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이후에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거친 광야를 걷고 또 걸으며 방황의 시간은 평화의 시간으로 변화된다. 그 이후 써 내려간 두 번째 단어들은 무한한 마음을 열고 사람과 존재와의 화해의 시간을 갖는 단어들로 연결된다. 방황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찾고, 찾은 후 그간 경험했던 사람들과 상황들과의 화해의 시간을 통해 ‘나와 너’의 분별이 없는 ‘하나 됨’을 이룬다. 투쟁과 반목의 세상에서 화합과 사랑의 세상으로 변화된다. 물론 단어나 생각처럼 실제 삶에서 그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적어도 방향성만이라도 찾게 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광활한 바다 위에서 등대 불빛을 따라 항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등대는 그 존재만으로도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준다.


‘클러스터 연상법’은 삶의 다양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이 방법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고, 읽어 낸 단어들을 눈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상황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자신과 상황을 분리시키며 거리두기를 한다면 혼란스러운 상황들이 단순화되며 상황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스트레스는 스트레스 원인보다는 그 상황을 해석하고 집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낸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으로 인해 더욱 가중된다. 상황에 어쩔 줄 몰라 당황하고 빨리 해결하려는 급한 마음으로 인해 다른 힘든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혹을 떼어 내려다 다른 혹을 더 붙인 격이다.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두면서 바라보기만 한다면, 또 조금 떨어져 바라볼 수만 있다면 충동적인 이차 행동을 예방할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어렵게 느껴졌던 상황이 사라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금강경의 마지막 경구가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으로 ‘단지 바라만 볼뿐’이다. 실제 존재하지도 않은 허망한 상황들과 쓸데없는 싸움하지 말고 모든 판단 내려놓고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면 시간이 흘러 허상들은 저절로 사라진다. 어둠을 물리치려 싸운다고 사라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해가 저절로 떠오르는 것과 같인 이치다. 우리네 삶 속에서 벌어진 대부분의 상황들은 욕심과 어리석음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다. 이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광야를 건너는 것이고, 고해를 건너는 것이다.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닿는 글이나 생각, 느낌을 발표하는 시간이다. 같은 책을 읽지만 기억에 남는 구절들은 제각각 다르다. 부처님 법문을 백 사람이 들으면 백 사람 모두 자신의 얘기로 듣는다는 말이 기억난다. 한 말씀을 하시지만, 듣는 사람은 자신의 입장에서 듣기에 자신에게만 하는 말씀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구절이 바로 지금 자신의 생각과 마음과 감정이다. ‘인간이기에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라는 구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이 들어가면서 한평생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체득하고 있다. 그렇다고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다. 삶은 고통이지만, 고통은 반드시 선물을 동반한다.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군더더기를 떨어낼 수도 있고, 날카로운 면을 깎아낼 수도 있으며, 부족한 면을 자각하게 되면서 저절로 겸손을 배우게 된다. 광야가, 고해가, 삶의 고통이 제공하는 가장 친절한 선물이자 은총이자 가피가 바로 자신의 변화이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익어간다는 말의 의미는 삶이 무너져가는 것이 아니고 성숙해 감을 의미한다. 고통은 결국 축복이다. 다만 이 진리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는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믿음이 필요한 이유이다.


광야에 대한 체험을 나누는 시간에 각자 삶의 편린들을 꺼내놓는다. 힘들었지만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삶의 편린들이다. 그 당시에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고통이었지만, 돌이켜보니 축복이자 선물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며 행복해한다. 체험을 나누며 흘리는 눈물은 고통이 정화된 순수한 결정체이다. 눈물은 자신의 마음을 정화시켜주며 주변 사람들의 마음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다른 사람의 체험을 들으며 자신의 체험을 돌이켜보기도 한다. 경청이 주는 공감은 너와 나의 벽을 허물어준다. 마음속으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를 저절로 하게 만들어 준다. 진솔함과 경청이 주는 큰 힘이다. 또한 여러 명이 모여 만들어 낸 역동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산티아고 성당에서 하룻밤 머물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양한 수많은 순례자들이 매일 찾아와 머물고 가며 수많은 자취를 남긴다. 신부님과 자원봉사자들의 정성스러운 대접과 평화로운 미소를 보며 참다운 수용을 배울 수 있었다. 그분들은 모두 이미 성자들이다. 또한 모든 판단 내려놓고 늘 같은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모든 순례자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삶의 고통의 순간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도 지나간다. 고통의 순간을 밀어내려 애쓸 필요도 없고, 행복의 순간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쓸 필요도 없다. 그냥 흘러가게 두고 자신의 할 일에만 집중하면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지금-여기에서 자신의 소명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이다. 굳이 애쓸 일들이 사라진다. 따라서 뜻대로 안 된다고 화를 낼 필요도 없고, 고통스럽다고 울부짖을 이유도 없다. 그냥 주어진 일을 하는 것 외에 평화로운 삶의 열쇠는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는 비록 삶 속에서 잘 지켜지지는 않지만, 이런 시간을 통해서 기억을 상기시키며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의미 있는 참회의 시간이다.


‘광야’를 주제로 5 7 5 하이쿠 형식의 글쓰기 시간이다. 모두 시인이 된다. ‘혼란의 세상, 광야 속 답을 찾아, 나를 던진다.’, ‘무한한 광야, 포용과 용서 사랑, 우리는 하나’, ‘한 걸음 걸음, 나와 세상을 향해, 광야를 걷다’. 태어나 처음으로 지은 하이쿠 자작시다. 스스로 대견해한다. 라일락 향기님의 시 중 한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아. 여기 있네’. 지금 바로 이 순간 하느님, 진리, 본성, 불성, 본래면목이 존재한다는 자각과 믿음을 표현한 것 같다. 파랑새를 찾기 위해 평생 방황하지만 찾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파랑새가 늘 자신과 한평생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는 헛웃음을 짓는다. 세수하다 코를 만지며 코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과 다르지 않다. ‘행복한 책 읽기’ 모임은 결국 자신의 파랑새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나의 파랑새는 무엇이고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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