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날짜와 거리: 20220509 - 20220511 27km
코스: 매봉산 자락길 외
평균 속도: 4.8km/h
누적거리: 6.760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두면 고물, 주면 보물”이라는 광고 문구를 지하철 역사에서 본 기억이 난다. ‘아름다운 가게’의 취지를 홍보하는 광고이다. 안 쓰는 물건을 기증하면,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서 수익금을 사회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한다는 공익광고 문구이다. 각 집안마다 사용하지 않는 고물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우리 집에도 아내의 근검절약이 몸에 밴 태도 덕분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물건들이 잔뜩 쌓여있다. 특히 옷은 버리지도 못하고 공간만 많이 차지하는 계륵 같은 물건이다. 아내에게 2년 이상 한 번도 꺼내 입지 않은 옷은 버리자고 얘기했지만,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만 돌아올 뿐이다.
‘손현주 작가의 에세이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증산 정보도서관에서 대면 수업으로 8주간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접수 첫날 아침 9시 이전부터 컴퓨터를 켜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혹시나 인원이 마감되면 오랜만에 찾아온 좋은 기회를 놓칠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사전에 도서관에 전화를 해서 온라인으로 접수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니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질문하기도 했지만 예상했던 답변만 들었을 뿐이다. 나이 먹은 찬스를 이용하려다 우스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듣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무리한 시도를 한 것이다.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서 인터넷 검색도 해 보고, 유튜브를 통해서 강의를 듣기도 했지만 그다지 구미가 당기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무조건 많이 쓰고, 많이 읽으라는 내용만 기억하고 미련하게 쓰기만 했다. 글이 교육적이라며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답답하다는 얘기를 한 사람도 있고, 쓸데없이 길어서 불편하다는 사람도 있다. 물론 가끔은 좋은 글을 잘 읽고 있어서 고맙다는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들도 있다. 글 쓰는 보람을 느끼며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내용이 비슷하거나 익숙해진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고 스스로 느끼며 출구를 찾고 있었다. 전문가의 평가를 받고, 조언을 들으며 어떤 변화와 보완이 필요한지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상황에서 첫 수업을 들었다.
손현주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한 번도 그녀의 소설이나 글을 읽어본 적도 없다. 미리 한 두 권 정도 읽어보는 것도 배우는 사람의 예의라는 생각도 했지만, 단 한 권도 읽어보지 못하고 작가를 강의실에서 만났다. 작가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작가가 어떤 글을 쓰는지, 어떤 세계를 글로 표현하는지 정도는 사전에 공부해 가는 것이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의 기본 마음자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기본이 부족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예 기본 자체조차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돌이켜보니 회사에서 근무할 때도, 사업을 운영할 때도, 글쓰기를 시작할 때도, 걷기 동호회에서 길 안내를 시작할 때도, 또는 일상생활 속에서 기본기 없이 막무가내로 시작하고 망치고 다시 시작하는 실수를 반복해왔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겨우 방법을 찾아내곤 남보다 열 배 이상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기본이 안 된 말을 하곤 했다. 기본기가 부족하니 열 배 이상 노력해도 기본이 갖춰진 사람들보다 결과가 좋을 수 없다.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니 참 어리석고 둔한 사람이다.
첫 수업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걷고의 걷기 일기’를 2년 이상 써왔고, 지금까지 370편 정도의 일기를 써서 SNS에 올리고 있다고 했다. 강사는 수필은 일기와 다르게 다른 사람들이 읽힐 것을 염두에 두고 쓰는 글이라고 했다. 창고 속에 쌓아 놓은 글은 ‘쓰레기’에 불과하다며 지금까지 썼던 글들을 다시 꺼내어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해주었다. ‘쓰레기’라는 단어가 진한 여운으로 남아있다.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 작은 깨달음이다. 꾸준히 오랫동안 쓰면 언젠가 누군가가 인정해 줄 것이라는 안일하고 잘못된 생각을 하며 써왔다. 지인이 글을 모아두는 방법으로 블로그를 추천했고, 이를 계기로 브런치, 네이버 밴드, 티스토리, 페이스북 등에 글을 올리고는 있지만, 공유한다는 생각보다는 모아놓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춰왔던 것 같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물’이라는 속담도 있다. 지금까지 구슬을 모아놓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 구슬은 창고 안에서 쓰레기가 되어가고 있다.
브런치 출간 프로젝트에서 선정된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어보라고도 조언해 주었다. 읽고 싶은 책을 빌리거나 구입해서 읽기는 하지만, 출품작 중에서 지난한 심사 과정을 거쳐 선정된 글을 읽지 않았다. 읽어보지도 않으면서 그들의 글이 시대의 흐름만을 따르고 있다는 편견과 그에 따른 약간의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매년 탈락을 당하면서도 정신 못 차리고 있었다. 비록 글을 쓴 시간과 노력이 허사가 된 것 같아 마음 한쪽이 아리긴 하지만, ‘쓰레기’를 인정한 순간 글쓰기에서 한 단계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희망을 보았기에 오히려 고맙고 다행이다.
강사는 글을 잘 쓰기 위해 네 가지를 강조한다. 글감과 필사, 좋은 글을 많이 읽고 해체하는 작업과 자신만의 개별화된 글쓰기이다. 일상 속 소재를 찾는 작업이 바로 글감의 발견이다. 발견하기 위한 노력과 메모의 습관이 요구된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필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 소설가는 소설 200편을 필사하며 내공을 익혔다고 한다. 좋은 글을 많이 읽으며 글 해체 작업을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경험과 개성을 살린 개별화된 글을 쓰는 작업이다. 좋은 글은 세상 밖을 나오면서 보물이 되고, 창고 속에 쌓여있는 ‘쓰레기’들은 고물이 된다.
오늘 브런치 수상 작품의 글 하나를 읽다가 중간에 멈추었다. 가볍게 읽기에는 글과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글의 깊이, 표현 방식, 소재의 선정 및 글을 이끌어 가는 구성력, 전문성 등이 골고루 잘 갖춰져 있는 글이다. 선정될만한 작품들만이 선정된다. 죽비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다. 죽비는 ‘고물’ 같은 마음을 ‘보물’ 같은 마음으로 변화시키는 아프지만 시원한 채찍이다. ‘쓰레기’라는 표현과 수상작가의 글은 ‘쓰레기’를 ‘보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죽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