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코스 ~ 5코스 (세동 - 동강 - 산청 함양사건 추모공원 - 산불
아침에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어젯밤에 퇴근했던 관리인이 18km 떨어진 집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식당에 내려가니 식사가 차려져 있다. 게와 고통을 가득 넣어 끓인 국, 매실 장아찌, 조기, 김치 등 한 상 가득이다. 아침부터 고동과 게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먹으려는 자와 먹히지 않으려는 자와의 치열한 싸움이다. 게와 고동은 끝까지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버틴다. 나는 한 점도 남기지 않고 빼먹기 위해 집중한다. 잘못하다 게나 고동의 껍질이 이에 박히면 빼내는 데 고생을 해야만 한다. 애초부터 이 싸움은 이루어질 수 없는 싸움이다. 게나 고동은 죽어있고, 나는 살아있다. 죽은 자는 자신이 먹히는지 알지 못하지만, 나는 살아있는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을 먹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이미 버린 상태라 저항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지만, 나는 한 점이라도 더 발라먹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결과는 참담하다. 상 위에 게와 고동 껍질이 산산조각이 나서 수북이 쌓여있다. 치간 칫솔로 정신없이 이 사이에 낀 껍질들을 제거하고 있다. 아침 식사를 하며 우리네 삶을 생각해 본다. 빼앗으려 자와 빼앗기지 않기 위해 투쟁하는 우리네 삶.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 손해를 당연시 여기는 이기적인 삶. 과연 인간은 이렇게 살 수밖에 없을까? 이기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본다.
길동무가 자신의 휴대전화에 녹음된 소리를 틀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내가 코 고는 소리를 녹음해 둔 것을 틀어준 것이다. 소리가 제법 리듬감이 있고 안정적이다. 가끔 숨을 멈춘 듯 있다가 크게 뱉어내기도 한다. 조금 민망하면서도 그 친구의 그런 장난이 활기차고 웃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그의 코골이를 녹음해서 들려주려고 했지만, 끝나는 날까지 그 작업을 완수하지 못했다. 귀찮기도 했지만, 먼저 잠이 들어서 그럴 기회를 포착할 수 없었다. 아쉽지만, 다음에 걸을 때는 반드시 녹음해서 놀려줄 생각이다. 2층으로 된 숙소는 방이 뜨거울 정도로 난방이 잘 되어 잠을 개운하게 잘 수 있었다. 몸을 지지고 나니 몸도 마음도 개운하다.
식사를 한 후에 관리인과 잠시 차 한 잔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그는 20세부터 산을 타며 약초꾼으로 살아왔다. 환갑이 조금 넘어 보이는 그는 104세의 치매 노모를 극진히 모시고 살고 있다. 약초와 겨우살이 즙을 만들어 구매자에게 약초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 보내주고 있다. 우리에게 힘들 때 마시라며 겨우살이 즙을 5개 주셨다. 그에 의하면 겨우살이는 면역에 아주 탁월하고 특히 피로 해소에 좋다고 한다. 어제저녁에 우리 식사를 준비해 준 후 빨리 자리를 떴던 이유는 노모 식사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손은 투박했고, 얼굴에는 순진함이 묻어있고, 겨우살이를 그냥 내어 줄 정도로 고운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의 순박한 얼굴과 모습이 떠오르고 따뜻한 마음을 느끼며 내 마음도 따뜻해진다. 길에서 또는 숙소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을 통해 배운다. 길은 스승이고, 만나는 사람들도 스승이다. 길을 걸으며 일상 속의 참 공부를 할 수 있다.
숙소를 나와 걷기 시작했다. 숙소가 있는 세동 마을에서 산청 함양 사건 추모 공원까지는 도로를 따라 걷는다. 길이 지루하고 길다. 지리산 둘레길은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주는 도로를 따라 걷다가 산길로 접어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지루한 도로는 산길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한 전채 요리와 같다. 주요리가 나오기 위해 입맛을 돋우게 하는 요리처럼,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더욱 진하게 느끼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필수과정이다. 주변에 공사가 한창이다. 매년 지리산 둘레길 코스는 5% 정도 변화가 생긴다고 한다. 도로 공사로 인해 또는 길을 내어준 농민들이 더 이상 허락을 해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코스를 변경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한참 길을 오르다 추모 공원을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에 스탬프가 있어서 반드시 방문하게 되어 있다. 또한 이 기회를 통해서 추모 공원에 모셔진 영령들을 위한 기도를 잠시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한국전쟁 발발 후 남원에서 열린 사단본부 참모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지리산 고동재를 넘던 미 군사 고문단의 대령과 장교 2명, 사병 28명이 적에게 공격당하여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다. (.....) 이에 1951년 2월 7일 공비토벌 연합 작전을 수행한다. 산청군 금서면 가현, 방곡마을과 함양군 휴천면 점촌마을, 유림면 서주마을에서 무고한 민간인 705명을 학살하였다. 함양 산청 민간인 학살 사건은 한국 전쟁 중 빨치산 토벌작전을 이유로 대한민국 국군에 의해 비무장 민간인들이 처참히 학살당한 사건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추모 공원을 지나 산길로 접어든다. 시원한 물소리가 우리를 반겨준다. 왼쪽에 계곡을 끼고 산길을 오른다. 인적이 별로 없었던지 산길에 잡초가 무성하다. 오히려 그런 길이 더욱 정감이 가고 마치 오지 탐험하는 즐거움을 선물해준다. 길이 제법 가파르다. 하지만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와 상사폭포는 힘든 심신을 달래주기 충분하다. 조금 지쳐 가는데 빨간색 악센트 칼라 지붕이 보인다. 주막이다. 산 중간에 위치해있지만 앞이 뻥 뚫려서 지리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상 좋은 여주인이 우리를 맞이한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시원한 막걸리를 주문했다. 오미자 막걸리는 만 원이고, 일반 막걸리는 오천 원이다.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일반 막걸리보다는 색다른 막걸리를 마시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도수가 좀 센 것 같다. 두 잔 마시니 술이 올라온다. 주인은 부추 장아찌와 간단한 반찬을 내어온다. 그 반찬을 보자 일반 막걸리 한 병을 더 주문한다. 여기까지 올라오기 위해 흘린 땀이 워낙 많아서인지 막걸리 두 병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여주인과 함께 인증 사진을 찍었다. 그 주막이 없었다면 이 길은 힘들었던 것 외에 별 다른 추억이 없었을 것이다.
취기가 조금 있는 상태에서 정상인 산불 감시 초소를 향해 오른다. 사람들은 우리 밖에는 없다. 큰소리로 웃고 떠들며 신나게 걷는다. 술김에 정상에 오른 것 같다. 정상에서 바라본 지리산 풍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답다. 친구는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있다. 그 영상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나 보다. 정상에 조금 머문 후 다시 걷는다. 약 5킬로 정도 되는 지루한 임도이다. 그것도 흙길이 아니고 시멘트 포장길이다. 친구가 음악을 틀었다. 음악과 상관없이 우리는 수철마을을 향해가고 있으니 ‘가수 김수철’이 우리를 맞이해야 한다고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떠들어 대며, 김수철이 펄쩍 뛰면서 찍은 사진을 흉내 내며 두 발을 폴짝폴짝 뛰기 시작한다. 얼마나 많이 뛰었는지 그 덕분에 오른쪽 발목에 무리가 왔다.
그 길을 내려오며 고등학교 동창 한 명이 떠올랐다. 그 당시 여의도에 살고 있던 친구는 자기 방에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있었다. 그는 늘 라디오를 틀며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가 무척 부러웠다. 미국으로 간 지 벌써 30년이 넘은 친구이고 그간 만난 적도 없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보고 싶다. 개성이 강한 친구였다. 지금도 그는 그의 모습을 유지하며 잘 살고 있을 것이다. 한 가지 기억이 갑자기 더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 주인집에 전축과 레코드가 많이 있었고, 서가에는 책이 제법 꽂혀있었다. 주인 허락을 받고 책도 읽었고 음악도 들었다. 그때 들었던 음악 중 기억나는 것이 스카브로우 추억(Scarborough Fair) 정도이다. 햄릿과 오셀로 등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읽었던 것도 그 당시였다. 내용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읽었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다. 내용을 읽은 것이 아니라 제목을 읽었던 것이다.
산청에 마땅한 숙소를 찾지 못했다. 펜션이 하나 있긴 하지만 예상보다 비싸서 머물지 않았다. 우리가 준비한 예산은 숙소 인당 25,000원, 식사는 한 끼 당 만 원 정도이다. 가능하면 그 예산 범위를 넘지 않고 지내고 싶었다. 좀 더 걷기로 했다. 지리산 둘레길 안내 책자를 보니 지막마을에 숙소가 있다고 나와 있어서 약 1km를 더 걸었다. 그 마을에서도 숙소를 찾을 수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민박집들이 모두 문을 닫은 것이다. 슈퍼가 하나 보여서 물어보니 산청이나 내리교 근처에 모텔이나 민박집이 있다고 한다. 슈퍼에서 술 마시고 있는 한 사람이 아는 형님이 택시를 한다고 하면서 택시를 불러준다. 택시를 타고 산청에서 내렸다. 산청군이라 숙소가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에서 빈 방을 찾으 수가 없었다.
배도 고프고 몸도 지쳐간다. 우선 먹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청국장과 막걸리 한 병으로 저녁 식사를 마쳤다. 길동무가 식당에서 모텔 하나를 검색해서 예약을 했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 걷는 것이 조금 힘들긴 했지만, 제법 높은 곳에 위치한 이 모텔은 공기도 좋고 조용하다. 씻고 바로 잠들었다. 하루를 아주 충만하고 다양하게 보냈다. ‘김수철 춤 따라 하기’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