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남도'
정형남의 장편 소설 ‘남도’를 최근에 읽었습니다. 일제시대부터 근대까지 지나오면서 겪었던 역경과 희로애락을 한 여인의 삶을 통해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런 삶을 겪고 견디며 살아오셨던 분들의 모습을 보며 부모님 세대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어서입니다. 또한 부모님의 삶의 모습을 보며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을 이해하게 되면서 연민의 감정과 송구스러운 마음이 올라와서 더욱 먹먹해지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베이비부머 세대의 일원으로 그 중 많은 부분을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암울한 대학 시절을 보냈고, 군대에서 10.26, 12.12 사태와 광주 민주화 운동을 겪었습니다. 제대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IMF를 겪었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보았으며, 지난 정권의 수장들이 감옥에서 생활하는 참담한 모습도 보았습니다. 수많은 사고로 인한 가족들 간의 상실감을 간접적으로 느꼈으며 자연 재해로 인한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지켜보며 같이 아파하기도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결혼 후 가정을 이루고 딸아이가 출가를 하여 손녀가 곧 태어날 예정입니다. 직장생활 5년과 18년간의 개인사업 운영, 그리고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많은 일들을 겪는 삶을 통해 그 속에서 희로애락을 느끼고 성숙해지기도 하였습니다. 작년에 환갑을 맞이하여 인생 재정비를 위한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또한 50대 중반에 대학원에 입학하여 상담심리 공부를 하였으며, 지금은 상담심리사로 활동하며 인생이모작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난 세월이 힘들었던 이유 증 가장 큰 이유는 어릴 적 나를 죄여왔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안간힘 때문이었습니다. 소설 ‘남도’에서도 여주인공의 아들인 백상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버지의 족적이 만들어 낸 삶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방황을 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 그런 노력과 방황의 시절을 많이 보내왔기에, 백상의 삶이 저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또한 여주인공의 삶이 우리 어머니의 삶과 너무나 비슷하기에 더욱 더 마음이 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백상이 방황을 하며 불교를 접하듯, 저 역시 방황을 하며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백상은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촌부로 살아가듯, 저 역시 상담심리사로 사회 속에 묻혀 삶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과 함께 살며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되어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도’를 통해서 뼈저리게 배울 수 있는 것, 어쩌면 체득하고 있던 내용을 확인한 것일 수도 있는, 중 하나는 인생은 결코 우리의 뜻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입니다. 인생은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흘러갑니다. ‘남도’에서 말하려는 인생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새옹지마’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뜻과 어긋나는 삶이 온다고 하여 비통해 할 필요도 없으며, 원하는 대로의 삶이 되었다고 해도 자만할 필요도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점점 더 ‘삶의 수동성’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주어진 삶을 받아드리며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능력, 지위, 주어진 환경, 권력, 부(富), 학력은 물론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 욕심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겸손을 배우게 되고 자타가 하나가 되어가며,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가게 됩니다. 결국 우리 모두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삶 자체가 고해라는 것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삶이 고해(苦海)인 이유는 이미 모든 것은 다 이루어져 있는데 그 진리를 볼 눈이 없어서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데 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정견(正見)을 팔정도 중 제일 먼저 언급하셨을 겁니다. 있는 그대로 보기(如實知見)만 하면 되는데 우리의 눈이 욕심, 어리석음, 분노 등의 먼지가 가득 끼어 제대로 볼 수가 없기에 다른 뭔가를 구하려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의 수동성’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힘든 일이 저절로 사라집니다. 굳이 할 일이 없습니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하기만 하면 됩니다. 뭔가를 이루려고 하거나 욕심을 낼 필요조차 없습니다. 어떤 기대나 희망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할 일을 할 뿐입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고,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처럼 매일 상수리열매를 심듯. 이미 모두 이루어져 있고 그렇게 되어 있기에. 하지만 이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세상을 보는 바른 견해(正見)을 갖춰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업장(業障)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행한 업으로 인한 과보를 받는 다는 것입니다. 업은 절대로 그냥 소멸되지 않고 반드시 그에 따른 과보를 받아야 소멸이 된다고 합니다. 지나온 업은 바꿀 수 없으니 과보를 적극적으로 수용을 하며 진정어린 참회를 통해 소멸을 하고, 앞으로의 삶은 정견을 갖추고 바른 삶을 살면서 바른 업을 짓거나 무위의 행을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정견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간 많은 곳에 상담심리사로 지원을 하였고, 어느 곳에서도 채용이 되지 않아 좌절을 겪고 힘든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어제 서울심리지원 서남센터에서 초빙상담사로 채용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소식을 접하며 그간 힘들게 지내왔던 저 자신을 돌이켜보며 저의 어리석음과 욕심을 되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반성하며 이 글을 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