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의 나 (영화 '패터슨')

영화 '패터슨'

by 걷고

최근에 광화문으로 출근하면서 점심 식사할 곳이 마땅치가 않아서 며칠 전부터 아내가 도시락을 준비해 준다. 입맛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지만, 북적대는 식당에서 식사를 주문하고 서둘러 먹고 나오는 것도 불편하고, 음식의 간이 전반적으로 강하고 자극적이어서 입맛에 맞지 않는다. 특히나 눈앞에 펼쳐진 북악산을 바라보고 음악을 들으며 아내가 정성스럽게 준비해 준 도시락을 홀로 먹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다.

출근을 하면서 도시락을 종이백에 들고 나오는데 갑자기 얼마 전에 봤던 영화 '패터슨'이 생각이 났다.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패터슨'이라는 버스 기사 역시 나처럼 매일 아침 샌드위치를 종이 백에 싸들고 출근한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근무하고, 퇴근 후 아내와 저녁을 먹고, 바에 가서 맥주 한잔 하고 지내는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는 ‘패터슨’. 매일 나름대로 자신의 삶의 모습이나 시를 비밀노트에 쓰기도 하고 아내의 취미생활을 도와주기도 하며 지루하리만큼 변화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삶이 지금의 나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요즘 나의 삶 역시 점점 더 단순해지고 있다. 아내가 준비해 준 도시락을 들고 사무실에 나와 업무를 보거나 책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적기도 한다. 가끔 내담자를 만나서 상담을 하기도 하고, 가까운 지인들과 가벼운 술자리를 하며 소소한 재미를 느끼며 살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늘 나의 편이 되고 나를 지지해주는 고마운 분들과의 만남이 점점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런 단순하고 단조로운 삶이 어떤 분들에게는 지루하거나 답답해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속에서 내면의 평온을 느끼는 편이다.

무탈하게 하루하루 잘 보내는 요즘이 좋다. 이제는 북적거리고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것 보다는 그런 단순하고 단조롭고 다소 심심한 삶도 좋다. 불교에서는 '명훈가피력'이라는 용어가 있다. 일상에서 큰 일 없이 잘 지내는 것을 뜻하는 용어로 부처님의 가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주변에서 인정받고 사회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런 단조로운 삶도 나름 의미가 있는 삶이다. 이제는 뭔가를 채우기보다는 비워내는 노력을 하며 일상 속에서 평온하고 단순한 삶을 살고 싶다. 아내의 도시락이 단순함 속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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