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의 나 (뿌리 깊은 나무)

뿌리 깊은 나무

by 걷고

최근에 심혈을 기울였던 두 가지 시험에 불합격 발표 후 며칠간 마음이 많이 우울했었다. 많은 기대를 했기에 불합격의 충격이 심했었다. 한 곳의 실패는 ‘나이의 벽’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만들어 주었다. 다른 곳에서는 50대 이상이 지원할 수 있는 곳인데도 불합격이 되었다. ‘나이의 벽’을 넘지 못하게 되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용도폐기처분’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다른 한 곳에서의 실패는 ‘나의 사고와 언행이 비이성적이고 비현실적인가?’라는 고민까지 하게 되었다. 이런 후폭풍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다행스럽게 내게는 좋은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있다. 세 개의 모임으로 사회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만난 열 명 이내의 분들이다. 수년 전부터 이 분들과 함께 하는 모임 외에는 저녁 약속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간도 아깝게 느껴지고 예전처럼 많은 사람들과의 교제를 위한 에너지와 쓸 수 있는 경비도 아깝게 느껴진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람들도 줄어들게 된다. 그분들과는 한두 달에 한번 정도씩 만나 귀한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아마 이 분들이 평생 나와 함께 좋은 인연을 이어나갈 수 있는 분들일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진다.

이번에 이 분들께서 따뜻한 ‘위문 공연’ 자리를 만들어 주셨다. 굳이 별다른 위로의 얘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어 너무나 감사했다. 어떤 분은 다른 회사에 취업을 알선해 주기 위한 면담의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했고, 다른 분은 상담심리사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모 단체와의 만남을 주선해 주기도 했다. 취업을 위한 면담은 너무나 좋은 기회였지만 전혀 다른 분야이기에 상담심리사로서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정중하게 사양하였다. 모 단체와의 만남은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만나기로 하였다. 그렇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분들에게도 감사하지만, 묵묵히 마음속으로 위로를 해 주며 즐거운 자리를 만들어 주신 분들에게도 많은 감사함을 느낀다. 아내 역시 든든한 나의 편이 되어 따뜻한 지지와 위로를 해 주었다. 그분들의 위로와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회복을 할 수 있었다.

지금 나의 주변 상황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시험에 불합격한 것 외에 모든 상황은 예전과 똑같다. 시험 전에는 매일매일 충실하게 지내왔고 늘 활력과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쳤었다. 그런데 단지 시험에 불합격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분이 저조해졌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다. 또한 지금 진행하고 있는 상담, 명상, 기타 심신 치유 관련 일을 계속 진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들기도 했다. 사람들을 만나도 예전처럼 즐겁지 않았고, 웃음이 사라졌으며, 길을 걸어도 콧노래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같은 환경이고 세상인데 단지 마음이 흔들려서 마치 다른 세상인 것처럼 느끼고 지내왔던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 가지 크게 느낀 것이 있다. 그간 상담심리사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헤드헌팅 업무를 등한시 여기며 지내왔다. 이것 또한 하나의 욕심이었다. 일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고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얘기를 해왔다. 하지만 정작 나의 일에 있어서는 어떤 일은 하고 싶고, 어떤 일은 하기 싫다는 차별하는 마음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좋아하는 일로 오랜 기간 할 수 있고,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일, 이 세 가지가 미래의 일을 준비하면서 정했던 나만의 기준이었다. 상담심리사나 헤드헌팅이나 모두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방향과 맞는 일들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내게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완수하지 못해왔다.

친구들과의 만남과 위로, 가족의 따뜻한 지지를 통해서 다시 예전의 활기를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금 지금-여기에 충실한 삶, 즉 결과를 위한 삶 (doing-mode) 이 아닌 과정을 사는 삶 (being-mode)의 중요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힘든 과정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삶 속에서 겪는 고통은 우리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되도록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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