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혈압'에게
나는 그대를 멀리하고 싶지만, 그대는 내가 그리도 좋은지 자꾸 내게 너무 가까이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랑을 베풀려고 하니 내가 고민이 많소. 원래 나는 그대를 친구로 받아들이지 않고 빨리 내 옆에서 사라지길 바라고 있었지만, 만난 것이 인연이라 그런지 이제는 정도 들고 ‘멀리하기엔 너무나 가까운 당신’이 되어 버렸소. 그래서 이제는 아예 ‘친구’라 부르기로 했소. 하지만 말이오, 아무리 가까운 친구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사는 게 인지상정이고 예의이고 오랜 기간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인데, 그대는 점점 더 내게 가까이 오고 심지어는 물량공세까지 붓고 있으니 조금은 부담스럽소. 우리 평생 친구로 지내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봅시다.
우선 나는 그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소. 그대로 인해 다른 주변의 나쁜 친구들을 멀리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오. ‘술’, ‘과로’, ‘수면부족’, ‘스트레스’라는 친구들이 늘 내 주변에서 나를 유혹하곤 했지만, 그대가 내게 오고 나서는 든든한 방패막이되어 이제는 그 친구들의 방문 횟수가 무척이나 많이 줄었소. 그래서 그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소. 그대 덕분에 내 건강을 잘 유지할 수 있고, 건강의 적신호를 알아차릴 수 있는 자체 경고 시스템을 몸에 장착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오. 그 시스템은 아주 예민해서 사소한 변화를 빨리 감지하여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고, 그 경고에 의해서 나 자신을 잘 관리할 수 있으니 어찌 고맙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소. 하지만 고마움도 고마움이지만 너무 가까워지면 내가 사라질 수도 있으니, 이제부터 일정 거리 유지하는 함께 사는 방법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 하오. 그대도 내 얘기를 듣고 ‘거리두기’에 협조를 해주길 바라오.
요즘 아침 기상 시간이 조금씩 늦어지고 있소. 나이 든 탓도 있지만 게을러진 것도 있을 거요. 조금 일찍 일어나서 ‘명상’이라는 친구를 매일 만나려 하오. 그대와는 상극일 수도 있지만 상극이 상호 균형을 잡게 도움을 주어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으리라 믿소. 그러니 이 친구가 오는 것을 싫어하지 않기를 바라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인 ‘걷기’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하오.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이 친구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그대와 오랫동안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친구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소. 평소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만나고 있는데, 앞으로는 네 번 정도 만나려 하오. 그러니 부디 질투하지 말고 이 친구와 보내는 시간을 허락해주기 바라오.
내가 싫어하는 친구들도 있소. ‘듀 카브 정 60/5mg’과 ‘오메가 3’라는 친구들은 ‘의사’라는 지인이 내게 추천한 친구 라오. 아마 이 친구들이 그대의 가장 큰 적이고 상극일 수도 있는데, ‘의사’와 이 친구들에 대한 나의 믿음은 그다지 크지는 않다오. 이 친구들을 지인인 ‘의사’ 에게 소개해 준 ‘제약사’라는 사람은 그 친구들을 많이 소개하면 할수록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서, 돈벌이 수단으로 추천을 하니 말이오. 그래도 그 친구들로 인해 득을 보는 사람이 많으니 할 말이 없소이다. ‘의사’라는 지인은 내게 꼭 그 친구들과 정규적인 만남을 매일 아침마다 하라고 나를 위한 명분으로 명령을 내리니 듣지 않을 수가 없소. ‘의사’라는 친구는 가능하면 만나기 싫은데 살면서 반드시 만나야만 하는 친구라 그 친구 얘기를 잘 따라야만 한다오.
가장 다루기 힘든 친구가 있소. 바로 ‘마음’이라는 친구요. 내가 틀림없이 그놈의 주인인데 가끔은 그놈이 나를 통제하고 자기 뜻대로 하라고 신경질도 부리고 짜증도 내고 있소. 특히 ‘업무’라는 친구와 아주 가까운 이 놈들은 둘이 만나면 신바람이 나서 주인을 종 부리듯 하고 있으니, 아주 꼴 보기 싫은 친구임에는 틀림이 없소. 그놈은 강제로 없앤다고 없어질 놈이 아니오. 누르면 누를수록 튀어 올라오는 성질이 아주 고약한 놈이오. 나는 그놈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그놈 손에 놀아나고 있소. 이 놈을 다루기 위한 좋은 친구들이 ‘명상’과 ‘걷기’라는 친구들이오. 그 두 친구들이 나타나면 이 놈은 조용히 사라졌다가, 어느 순간 ‘업무’라는 놈과 만나서 연합작전으로 갑자기 나를 공격하는 아주 교활한 놈이라오. ‘명상’과 ‘걷기’라는 친구들 외에 이 놈을 무찌를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마음 다스리기’라는 친군데, 이 친구와 가까워지기가 생각보다 쉽지가 않소. ‘마음 다스리기’는 나 자신의 ‘주인’을 알아야만 시작을 할 수 있는데, 실은 조금 창피한 얘기지만, 아직도 나는 나의 ‘주인’을 못 찾았고 지금도 찾아 헤매고 있소. 죽기 전에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오.
특히 ‘마음’의 부하들 중 ‘강박’과 ‘조급함’, ‘인내하기’라는 놈들이 완전 무장을 하고 있어서 ‘업무’라는 놈과 만나 야합을 하고 갑자기 공격해 들어오면 나는 속절없이 당해야만 한다오. 그래서 평상시에 ‘마음 다스리기’라는 친구와 가깝게 지내며, 이 놈들의 찰나 공격에도 방어를 철저하게 해야만 한다오. ‘명상’과 ‘걷기’라는 친구들을 만나며 자연스럽게 ‘마음 다스리기’라는 친구와 가까워질 수도 있지만, 평상시에 늘 ‘마음 다스리기’와 함께 있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오. ‘마음 다스리기’는 손에 잡힐 듯 하지만 빠져나가는 손 안의 모래처럼 잠시만 방심하여도 사라져 버리는 습성이 있어서 늘 세심하게 관찰하고 지켜보고 정성을 쏟아야만 같이 있을 수 있는 친구 라오. 좀 더 이 친구와 함께 하려는 노력을 해야겠소. 그러니 이 친구에 대해서도 너무 질투하지 말길 바라오.
딸아이가 내게 ‘양파즙’이라는 친구를 소개해줬다오. 그간 이 친구를 챙기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꾸준히 챙겨줄 생각이오. 딸아이의 정성도 있고, ‘양파즙’이 그대와 거리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니 말이오. 마지막으로, 주어진 상황이나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판단하고 비난하지 않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는 너그럽고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유지하며 흘려보내는 연습을 하려 하오. 가끔 어떤 생각에 푹 빠져서 생각이 꼬리를 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생각의 연결 사슬을 끊어내는 방법 중 하나가 빨리 알아차리고, 그러려니 하고 흘려보내는 것이라오.
‘궁리 끝에 악심 온다’는 말이 있소.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 결국은 나쁜 마음이 올라오고, 그 마음이 나와 남을 괴롭히고 있다오. 그런 사소한 일들이 쌓여서 그대와 친구가 된 것 같소. 그대가 인정하든 아니든 말이오. ‘의사’라는 지인은 그대와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유전적으로 가까운 사이라고만 애매모호하게 말하고 있소. 이유가 중요하겠소? 일단 친구가 되었으니 거리를 유지하며 잘 지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오. 친구 ‘혈압’이여, 그대와 더 이상 가까워지지 말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거나, 좀 더 거리를 두고 지내봅시다. 그런 ‘거리두기’에 많은 협조를 부탁하오. 고맙소, 친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