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의 나 (아빠와 딸)

아빠와 딸

by 걷고

딸아이가 결혼한 지 4년이 지났고, 현재 임신 8개월에 접어들었다. 약 두 달 후에는 나는 할아버지가 되고, 나의 딸은 자신의 딸의 엄마가 된다. 갓 태어날 그 아이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엄마가 될 것이다. 사위가 출장을 가서 어제 딸아이가 집에 와서 같이 지냈다. 오랜만에 세 명이 다시 뭉쳤다. 뭔가 가득 찬 느낌이 든다. 동시에 소란스럽고 분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딸아이가 출가한 이후 약 4년간 우리 부부만 살다 보니,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서 그런 것 같다. 여전히 딸과 나는 채널 쟁탈전을 하고, 딸아이는 내게 물을 달라고 심부름을 시키기도 한다. 결혼 전 내가 그렇게 대했던 것을 그대로 돌려주고 있다. 그런 심부름이 오히려 반갑고 고맙다. 아내도 싫은 기색 없이 음식 챙겨주고, 아이가 하룻밤 머무는데 불편함 없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준다. 딸아이가 결혼 후 몇 번 자고 가지도 않았는데, 나는 잠을 자고 있어서 한 번도 일찍 일어나 배웅을 해주지 못했다. 오늘 아침에도 역시 아이를 배웅해 주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아마 무거운 몸으로 출근하는 딸아이를 따뜻하게 배웅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나 보다.

아이가 결혼 전에 우리 집은 늘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딸아이와 나는 출근 준비로, 아내는 아침 식사 준비로. 약 30분 남짓한 아침 식사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는 아주 중요한 시간이었다. 늘 아침 식사를 함께했기에 우리 가족은 아침 밥상머리에서 서로 많은 얘기를 하곤 했다. 회사 생활, 최근에 경험했던 일, 겪은 상황에 대한 의견 나누기 등. 그 당시에는 그런 환경이 약간 정신없었고 시끄럽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 시간을 생각하면 흐뭇한 웃음이 떠오르고, 그렇게 사는 것이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이의 결혼 이후 언제부터인가 딸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아내는 지금도 가끔 경제적으로 더 챙겨주지 못한 점에 대해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는 얘기를 한다. 나는 우리 입장에서 할 만큼 했으니 그런 마음 안 가졌으면 좋겠다고 대답을 하곤 했다. 딸아이는 가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은 ‘금수저’라고 얘기를 한다고 전해 들었다. 그렇게 얘기해 주는 딸아이가 고맙고 또한 미안하기도 하다. 내 마음이 아린 이유는 경제적인 지원을 많이 못 해줘서 라기보다는 앞으로 딸아이가 살아가야 할 힘든 세상 때문이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녹녹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세상을 살아갈 딸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물론 나는 아이 부부가 이 세상을 잘 헤쳐 나가고 잘 살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지만, 그런 믿음과는 별개로 아빠로서 딸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리다.

결혼 후 가정을 꾸리고 이제 아이까지 태어나면 제대로 된 가정을 이루게 되겠지만, 그만큼 딸과 사위의 생활은 힘이 들 수도 있다. 물론 그런 것이 행복이 될 수도 있지만. 다행스럽게 아이 부부는 건강하게 양가 부모님들과 분리 독립을 잘 하였다. 결혼 준비할 때부터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전혀 없었고, 집을 알아보거나 이사를 할 때에도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 가끔은 미리 상의를 하지 않는 점이 섭섭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너무 의존적인 아이들보다는 훨씬 보기 좋다. 최근에는 많은 은행 빚을 안고 집을 구매해서 이사를 했다. 우리 부부는 그런 결정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일도 없었다.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한 이후였고, 우리의 의견을 묻지도 않았다. 허긴 이미 결혼을 한 성인이니 굳이 우리에게 일일이 보고하고 결정을 내려달라고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지금 생각하니 아이들이 큰 결정을 잘 내렸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우리보다 재테크나 살아가는 방식이 훨씬 진보적이고 자신들만의 삶의 태도를 지니고 있다. 좋은 일이다.

가끔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임산부 자리가 비어있어도 나는 그 자리에 앉지 앉는다. 또한 가끔 임산부가 내 자리 앞에 서 있으면 나는 자리를 떨고 일어난다. 그 임산부가 딸아이처럼 느껴졌기에 그랬을 것이다. 반면에 임산부 자리에 버젓이 앉아있는 비임산부를 보면 은근히 화가 나기도 하고, 일어나라고 점잖게 얘기를 하고 싶지만, 한 번도 그러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런 후안무치한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딸아이를 생각하며 모든 임산부의 마음과 그 부모님들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연결된 존재일 것이다.

지금부터는 딸아이 부부를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선적으로 괜히 아이들 생활에 참견하거나 조언을 준다는 명목으로 우리의 의견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아이 부부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이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걷고, 아내는 오늘도 탁구를 치며 각자 건강하고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아이는 이미 성인으로 자신의 가정을 이루었기에, 서로 독립된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가족으로서 함께 공유하는 ‘따로국밥’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서로의 삶에 어떠한 간섭을 하거나 요구를 하면 안 된다. 물론 가족이기에 서로 챙기고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우리의 둥지를 떠나 자신들만의 둥지를 만들고 그 안에서 자신들만의 삶을 지니고 있는 분리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따로 또 같이’ 살아야 한다.

연결된 존재이기에 어느 한 사람의 상황과 모습이 모두에게 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무뿌리 하나가 썩거나, 잎사귀 하나가 썩으면 전체 나무에 영향을 미치듯, 우리네 삶도 그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각자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각자가 잘 살면 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잘 사는 것이 결과적으로 다른 가족 구성원과 타인을 돕는 행위가 된다. 그렇기에 남이 잘 사는 것을 보고 배 아파할 일이 아니고, 고맙다고 얘기를 해야 한다. 그들에 대한 나의 책임과 짐을 줄일 수 있기에.

딸아이 부부가 서로 아끼며 사랑하길 바란다. 곧 태어날 손녀가 부디 건강하게 자라길 바란다. 이제부터 우리 부부가 잘 사는 것이 아이들을 돕는 최선의 방법임을 명심하고 아내와 함께 서로 사랑하며 건강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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