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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동안거>

화두 참선과 계율

by 걷고

동안거도 벌써 반 이상이 지나가고 있다. 한 해도 저물어 가고 있다. 날씨는 연일 한파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겨울을 보내고 있지만 동지가 지났고, 겨울도 서서히 봄에게 자리를 내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은 변한다. 의지나 희망과 상관없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안거 기간도 줄어들고, 한 해도 저물어간다. 추운 날씨도 언젠가는 무더위로 변할 것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듯이 리도 한 살 더 먹고 늙어간다. 우리는 늙어가지만 어린아이들은 성장하며 어른이 되어간다.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고, 아이들은 삶의 절정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들 역시 우리처럼 늙어가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태어나서 살아가고 죽음을 맞이하는 이치는 비단 사람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나뭇잎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도 한 때는 무성한 나뭇잎을 자랑했던 시절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나무에 상처도 생기고, 나뭇잎들도 하나하나 떨어지고 가지도 갈라져 떨어져 나간다. 모든 존재들의 모습이 바로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다. 태어나고 머물다 변해서 사라진다. 무상이다. 무상의 진리를 체험한다면 어떤 환경과 삶도 겸허하게 수용하며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 ‘아모르파티 (amor fai)’는 삶의 지혜이다.


우리가 괴롭고 힘든 이유는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욕심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과 다른 모습, 이루고 싶은 삶과 현실과의 괴리, 원하는 것을 얻고 싶은 것과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 남과 비교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기도 하고, 남의 시선에 비친 모습에 치중하느라 정작 자신은 속 빈 껍데기가 되어간다. 욕심의 바탕에는 어리석음이 깔려있다. 위에 열거한 모든 것은 어리석음이 가져온 결과들이다. 어리석음과 탐욕은 형제지간으로 상승작용을 한다. 어리석음은 탐욕을 불러일으키고, 탐욕은 어리석은 마음에 불을 붙인다. 어리석음과 탐욕으로 이루어진 ‘그놈’을 자신이라고 믿고 따른다. 하지만 ‘그놈’은 자신의 ‘참 주인’이 아니다. ‘그놈’이 ‘주인’ 노릇을 하며 점점 눈을 어둡게 만들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가린다. 마치 썬 글라스를 쓴 느낌이다. 누가 씌워 준 것이 아니고 스스로 쓰고, 그 안경이 만든 색깔로 세상을 보며 시비를 따진다. 선글라스를 쓰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선글라스를 쓴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


참선은 선글라스를 벗어버리는 좋은 방법이다. 동안거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공부한다고 할 수는 없다. 금주 한 가지만은 철저하게 지키고 있지만 공부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어떤 날은 공부하지 못하는 날도 있다. 걷기는 꾸준히 하지만, 걸으며 화두를 들고 있는 시간은 전체 시간의 5%도 되지 않는다. 일상 속 화두 드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다만 생각날 때마다 다시 드는 연습을 하고는 있다. TV 보는 시간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개인적인 모임은 예전에 비해서 줄어들었다. 송담 스님과 전강 선사의 법문을 거의 매일 한 편씩 듣고 있다. 특히 걸을 때 많이 듣는다. 조용한 길을 걸으며 스님의 법문을 듣는 습관이 들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요즘 듣는 법문은 전강 선사의 ‘초발심자경문’이다. 이 법문을 들으며 송담 스님께서 10계를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계율은 모든 공부의 기본이다. 기본이 되어 있지 않으면 모든 공부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된다. 세숫대야에 물이 고여있다. 물이 흔들리지 않아야 얼굴을 비출 수 있다. 세숫대야는 계율이고, 물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선정이고, 얼굴을 비추는 것은 자신을 찾는 일이다. 선정의 기반은 계율이다. 계율이 없다면 선정은 이루어질 수 없다.


몸과 말로 짓는 악업은 살생, 투도, 사음, 망어, 음주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생명을 죽인다면 마음이 조용할 수가 없다. 주지 않은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다면 역시 마음이 차분할 수가 없다. 불륜을 저지른다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고, 거짓말을 하거나 욕을 한다면 역시 마음이 좋지 않을 것이다. 술을 마시면 마음이 흐트러지고 술 취한 상태에서 실수를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 실수는 마음을 어지럽게 할 것이다. 한 가지 이야기가 떠오른다. “술 취한 상태에서 친구 집에 가서 닭을 잡아먹는다. 닭을 보지 못했느냐는 친구의 아내에게 닭을 보지 못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친구의 아내를 범한다. “ 술을 마셨으니 음주를 한 것이다. 닭을 잡아먹었으니 살생을 저질렀고, 남의 물건을 훔친 것이다. 남의 부인을 범했으니 사음을 한 것이고, 닭을 보지 못했다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음주로 인해 5계를 모두 범한 것이다. 음주는 다른 계율에 비해 중요성이 비교적 적어 보이지만 실은 다른 어떤 계율보다 더 중요한 계율이다. 금주를 한지 한 달 반 이상 지나고 있다. 집중력이 좋아진 것 같고, 아침에 기상할 때 전에 비해 몸이 훨씬 더 개운하다. 집중력이 좋아지니 마음이 흐트러짐이 줄어들었고, 따라서 상황에 끌려 다니는 일이 조금 줄어든 느낌이다.


‘초발심자경문’은 초심 수행자의 태도와 마음가짐 등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50년 전에 법문 하신 전강선사의 법문을 들으며 초심자로서 마음을 다진다. 일상적인 생활 태도에 대한 말씀도 많다. 걸을 때 몸을 휘젓지 말고, 언행 시 조용하게 하고, 쓸데없는 한담에 빠지지 말라는 말씀도 있다. 공부를 하는 사람의 자세는 당연히 저절로 이런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공부를 잘 지어가고 있는지 판단은 그 사람의 언행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맞는 말씀이다. 걸을 때 속도를 너무 빨리 걸으면 화두가 사라진다. 화두를 들고 걸으면 걸음걸이는 느려지고 동작도 차분해진다. 수행자가 화두를 들고 있는지 여부는 그의 언행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씀도 이해가 된다. ‘초발심자경문’은 결국 마음공부를 잘 지어 가기 위한 방편이다. 전강 선사께서는 법문을 하시며 내내 화두 참선을 강조하신다. 화두를 드는 것이 바로 ‘초발심자경문’을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다. 화두를 제대로 든다면 이 책에 나와있는 내용은 모두 숙지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 된다.


송담스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강조하신다. 두 스님의 말씀은 처음에도 또 마지막에도 ‘화두 참선’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가듯 불교 공부는 결국 화두 참선이라는 왕도가 있다. 비록 이번 동안거 기간 동안 공부를 제대로 하지는 못하더라도 화두 공부와 계율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게 되었고, 조금씩 실천하게 된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다. 물론 이 자리에 머물면 안 된다. 남은 기간 꾸준히 수행할 것이고, 안거 기간을 떠나 일상 속에서 공부하는 습관을 몸에 배도록 꾸준히 노력해 나갈 것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화나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고, 설령 화가 나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빨리 벗어나기 위한 자각의 힘이 조금 커진 것도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동안거 해제까지 40일 정도 남았다. 남은 기간 꾸준히 공부해서 화두 드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늘어나길 기원한다. 화두를 들기 위해서 계율을 잘 지켜나가야 한다. 화두와 계율은 깨달음의 두 바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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