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며칠간 마음이 불편했다. 한 사람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이다. 그것도 개인적인 일만이 아닌 공적인 업무 내용이 뒤섞여있다. 하지만 막상 그 사람에게 불편함을 토로하기는 조금 애매모호한 상황이다. 그 사람 나름대로는 돕기 위해 노력해 온 점도 많고, 여전히 그 일을 수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개인의 수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봉사활동이다. 그 사람은 자신의 방식대로 일을 돕고 있고, 실제로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런 얘기를 꺼내기도 애매모호하고 가만히 있자니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일까? 여러모로 생각해 본 결과 그의 일방적인 태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업무를 진행하며 나를 포함하여 주변 사람들을 통제하고자 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이다. 한시적인 일이어서 수개월 후에는 저절로 그 업무는 저절로 사라진다. 하지만 그냥 모른 체 하기에는 마음속 불편함이 여전히 남아있다. 이 불편함을 정리하고 싶다. 상담심리사들과 함께 스터디 그룹 모임이 있는데 그 모임에서 이 얘기를 꺼내어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모임 마친 후 귀가하다가 문득 그 사람이 나를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내가 그 사람을 통제하려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올라왔다. ‘투사’다. 노(老) 심리학자 한 분이 상담심리사인 내게 해 주신 말씀 중 한 가지가 바로 ‘투사’를 조심하라는 말씀이었다.
“투사는 개인의 성향인 태도나 특성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그 원인을 돌리는 심리적 현상이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죄의식, 열등감, 공격성과 같은 감정을 돌림으로써 부정할 수 있는 방어기제라고 본다.” (네이버, 사회학 사전)
내 안에 있는 통제 욕구로 인해 마치 그 사람이 나를 통제하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나를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고 내가 오히려 그 사람을 나의 방식으로 통제하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를 통제하려 한다고 비난하며 상대방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갖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사람에게 안부 전화를 한 후 간단한 선물을 보내드렸다. 그럼에도 하루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불편한 마음이 올라온다. 아직도 불편함은 해소되지 않았다.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조만간에 연락해서 불편한 마음을 솔직하게 얘기하며 그 사람의 의견도 듣고 싶다. 지난 수개월간 불편함을 갖고 있어서 단순히 견디는 것보다는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무슨 얘기를 할까 고민하다 불편하게 느꼈던 점을 써보았다. 막상 쓰고 보니 별거 아니었다. 그러던 중 아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덕분에 중요한 사실을 통찰하게 되었다. 아내는 과거의 기억으로 지금의 나를 판단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여기’에 있는데, 아내는 과거의 기억 속 나의 태도를 기억하며 현재 나의 모습을 왜곡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굳이 언쟁할 필요는 없다. 꾸준히 변화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 언젠가는 아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내를 과거의 모습으로 왜곡되게 판단하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며 동시에 그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나 생각 역시 이미 지난 과거의 모습으로 판단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사람과 할 얘기를 정리해 놓은 내용을 다시 검토해 보았다. 대부분 과거의 내용이었고, 이미 지난 일들이었다. 지난 일들에 대한 불편함을 현재 다시 꺼내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이미 지난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 내용을 다시 현재형으로 정리해 보았다. 과거 내용은 지워버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으로 바꾸어 보았다. 그리고 그간 그 사람이 한 행동 중에 앞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줄 가능성이 있는 내용도 적어 보았다. 다시 내용을 훑어보며 혹시 과거의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 왜곡된 판단을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검토해 보았다. 이제 할 얘기들이 정리되었고, 조만간에 만나 편안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불편한 감정도 많이 사라졌다. 가능하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나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싶다. 그리고 그 사람 역시 내게 느꼈던 불편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 얘기를 귀담아들으며 그 사람의 불편함도 해소시켜주고 싶다.
이제 마음이 편안해진다. 편안해지 이유는 ‘과거와의 싸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대부분 과거의 기억으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따라서 ‘지금-여기’의 모습을 볼 수 없고, ‘지금-여기’의 얘기를 들을 수 없다. 지금 앞에 앉아있는 사람과 얘기를 하면서 과거의 그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꼴이다. 고통의 이유 중 하나는 ‘과거와의 싸움’이다. ‘지금-여기’에서 만나면서 과거의 모습과 만나 웃고 불고 싸우고 난리를 치며 살아간다. 매우 불필요한 소모전이다. 보이지 않고 이미 사라져 간 ‘과거‘라는 괴물과 싸우고 있는 것이 고통의 원인이다. 또 다른 고통의 원인은 ‘상상과의 싸움’이다. 사람과 상황에 대한 과거의 편견으로 끊임없는 상상을 하며 자신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다. 과거의 모습이 그대로 상상 속에 머물며 점점 더 확대된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상상 속 인물에 대해 비난하고 공격하고 화를 낸다. 이런 무의미한 행동은 자신 내부에 공격성과 분노심만 키우게 된다. 쓸데없는 상상으로 인해 지금의 시간과 에너지는 소모되고 내면에는 부정적인 감정만 쌓이게 된다.
‘과거와의 싸움’과 ‘상상 속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명상이다. 명상은 ‘지금-여기’에 머물 수 있는 유일한 휴식처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싸움이 치열해지면 질수록 명상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아직 명상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어젯밤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명상으로 진정되지 않아 결국 밖으로 나가 한 시간 이상 걷고 들어왔다. 걷는 중에도 여전히 그 사람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무 일도 아닌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걸으며 생긴 마음의 공간 덕분에 하고 싶은 얘기를 다시 정리하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가 있었다. 감정의 폭포가 강할 때는 일단 그곳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내게는 걷는 것이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좋은 방법이다. 일단 상황에서 벗어나면 마음의 공간이 생기며, 그 공간에 긍정적인 생각과 보다 합리적인 판단으로 채울 수 있게 된다.
감정 기복이 생기고 사소한 일에 쉽게 마음 상하는 것이 노화현상 중 한 가지라고 한다. 나 역시 이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마치 세상을 달관한 사람인체 하며 살아간다. 이율배반적인 자신의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짓는다.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다. 쉽게 상처받고, 쉽게 화내고, 쉽게 변하고, 쉽게 웃는 사람이다. 나의 모습을 포장하려고 하지 말자. 불편한 것도 표현하고 좋은 것도 표현하자. 다만 표현할 때 부정적인 감정에 휘말리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는 있다. 이번 경우처럼 일상 속 통찰을 통한 합리적인 방법을 찾는 연습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고민거리 덕분에 귀한 경험을 했다. 물론 이런 일이 반복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