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적극적 수동성
최근에 ‘어느 인문학자의 걷기 예찬 (아널드홀테인 저)’ 을 읽었습니다. 그 책 내용 중 이런 글귀가 닫혀있었던 제 눈을 뜨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산책자가 가져야 하는 적절한 마음가짐은 흔들림 없이 완벽한 수동적인 자세이다. 이는 곧 어떤 느낌도 받아들이겠다는 개방적인 태도와 자비로운 자연의 위대한 힘이 이끄는 대로 나 자신을 그냥 내맡기겠다는 태도이다.’
며칠 전 장태산 자연휴양림과 계족산 황톳길을 다녀왔습니다. 문득 위의 글귀가 떠오르며 길 안내를 해 주시는 분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날씨도 걷기에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만약 태풍이 몰아치거나 폭우가 쏟아지거나, 폭설이 있었다면 그 길을 걸을 수 없었을 겁니다. 친절하고 안전운전을 해 주신 기사님이 계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그 길을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겁니다. 만약 장태산을 관리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지 않으셨다면 그렇게 멋진 메타세콰이어 길을 걸을 수 없었을 겁니다. 또한 어느 기업 회장님의 적극적인 배려와 봉사의 마음이 없었다면 황톳길 맨 발 체험과 야산에서 진행되는 멋진 음악회를 볼 수 없었을 겁니다. 함께 걸었던 즐겁고 유쾌한 길동무들이 없었다면 아마 그 길은 외롭고 쓸쓸한 길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길 안내자, 기사님, 자선사업가, 길동무, 날씨와 자연환경 등이 조화롭게 이루어지지 않는 한 길을 걷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고마움을 잊고 자신들이 길을 다녀왔다고 얘기를 하곤 합니다. 길을 걷기 위한 모든 환경이 주어졌기에 우리는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길을 걸은 것이 아니고, 길이 우리에게 걸을 수 있게끔 허락을 해 준 것입니다. 자연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고, 자연이 보여주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를 가는 것이 아니고, 그곳이 나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마치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 산이 허락을 해야 하듯이. 물론 걸을 수 있는 우리의 건강과 의지도 있지만, 이 역시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상황을 ‘걷기의 적극적 수동성’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수동적’이라는 의미는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의미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수동성’을 받아들이면 매사 감사함을 느낄 수 있고, 동시에 겸손함과 모든 존재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배우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수동적’인 것은 매우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의미가 됩니다. ‘수동성’의 이면에는 스스로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마음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되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 상황, 존재들에게 감사함을 저절로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 가 아니고 ‘우리’라는 ‘우리(울타리)’ 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됩니다. ‘나’가 ‘우리’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습을 내려놓는 겸손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에 대한 존중과 사랑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오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나의 의지로 걸었다는 생각을 해 왔는데, 이제는 그런 마음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또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은 이유는 이런 자연의 섭리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저의 언행이 이런 느낌과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이런 내용을 안다는 것 자체는 제게 그렇게 살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앞으로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라는 ‘우리(울타리)’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존재들이 베푸는 사랑과 배려, 격려로 그런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상황과 환경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며, 겸손과 감사함을 배워가는 과정이 ‘걷기’ 일 것입니다. ‘걷기’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또한 아주 고마운 일입니다. 걸으며 ‘걷기의 수동성’을 적극적으로 배우며 살아가겠습니다. 길을 허락해 주신 모든 존재와 환경에 머리 숙여 감사함을 표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