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씀, 조현실 옮김)
초등학교 시절부터 죽기 직전까지 자신의 몸에 대한 변화와 느낌 등에 대한 글을 평생 써 온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돌아가시면서 그 일기를 자신의 딸에게 전해주고, 그 딸은지인인 작가와 상의를 하여 이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거의 평생에 가까운 기록을 보며 성장하고, 가정을 이루고 늙어가는 과정 속에서 삶의 희로애락을 객관적으로 표현을 하였습니다. 또 그 책을 딸에게 전해 주었다는 사실도 저로서는 놀라울 뿐입니다. 특히 성생활에 대한 내용도 비교적 자세히 기술하고 있는데, 이런 내용을 가감 없이 딸에게 전하는 솔직함이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성적인 부분을 부녀 지간에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비록 그 글을 쓴 분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전달하였고, 딸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읽었을 것이라 하여도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버지는 전쟁의 상처로 인해 평생 침대에서 생활을 하며 부인의 구박을 받으며 살지만 아들인 자신에게는 지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자양분을 제공해 줍니다. 또한 유모와 그녀의 남편은 이 분이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줍니다. 자유분방한 동생은 인생의 좋은 친구로 서로 상반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서로 짙은 형제애를 나누며 삽니다. 결혼 후 자녀, 손자와 손녀 등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삶의 희로애락을 경험하게 됩니다. 특히나 손주의 죽음을 보며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로 지내는 모습을 보며, 저 역시 최근에 손녀가 태어나서 더욱 그 슬픔이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앞둔 상태에서도 이 분은 만년필을 놓지 않으시고 기록을 합니다.‘만년필 들기가 천근처럼 무겁고, 글 한 자 쓰기가 높은 산에 오르는 것처럼 힘이 든다.’는 표현을 보며 육체의 변화와 한계를 뚜렷이 볼 수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권투와 운동으로 몸을 단련시켰고 레지스탕스 활동도 하셨던 분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만년필을 들고 글 한 자 쓰기 조차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스콧 니어링이라는 분은 만 백세에 곡기를 끊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합니다. 그분의 글에 장작을 들어 나르는 시간은 늘어나고, 들고 오는 장작의 수는 줄어든다는 표현이 생각이 납니다. 저 역시 산을 오르거나 걸을 때, 또는 그 이후에 시간과 피로 가예전에 비해 많이 늘어난 것을 느끼며 육체의 쇠잔함을 절감하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도 뭔가를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분처럼 몸의 변화를 기록할까, 매일의 날씨나 기분을 기록할까, 걸었던 길에 대한 소감을 기록할까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였습니다. 약 3주 전에 첫 손녀가 태어났습니다. 저는 손녀와 만나는 순간을 기록하기로 하였습니다. 처음 만날 때의 느낌, 앞으로 자라나는 과정을 보며 느끼는 마음, 같이 공유하는 추억, 가족들과 함께 어울리는 내용 등을 정리하여 손녀가 성인이 되는 날에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비공개로 손녀에 대한 글을 쓰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간단한 내용,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사진, 성장해 가는 모습 등 특별한 형식 없이 사진과 소감을 올려놓으려 합니다. 언젠가 그 아이가 커서 성인이 될 때, 그 내용을 보게 되면 가족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기록은 역사가 됩니다. 언제, 누구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디를 놀러 갔고, 함께 뭔가를 했다는 것이 그 가정의 역사이고 문화입니다. 가족 간의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기록은 아이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됩니다. 또한 그 기록 안에는 삶의 필수요건인 생로병사도 고스란히 남아있을 겁니다. 가족 구성원 중 한 사람의 죽음은 다른 사람의 탄생을 뜻하기도 하고, 그런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성장하고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몸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의 겪는 죽음, 쾌락, 고통, 행복을 통해서 우리는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 내용은 이제 더 이상 금기 시 될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딸아이와 많은 것을 공유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부분이 아빠로서 많이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 미안함을 손녀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싶습니다. 딸과는 친구처럼 지내지 못한 것 같은데, 손녀와는 친구처럼 지내고 싶습니다. 책의 주인공은 손주가 동성애자인 것을 알고 힘든 부분을 참아내며 이해를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며, 제가 갖고 있는 편견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손녀와 친구처럼 지내고 싶습니다. 소유하지 않고 자연인으로 인정하며 동등한 입장에서 같이 지내는 친구 같은 할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