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삶과 죽음

by 걷고

"미 소설가 에이미 블룸은 남편인 브라이언이 67세에 알츠하이머를 잔단 받고 6개월 뒤 취리히의 조력자살(존엄사) 기관인 디그니타스를 찾아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과정을 함께 한 회고록을 출간했다 이 책은 작년 타임지(誌)가 선정한 ‘최고의 논픽션 1위’에 올랐다. 최근에 국내에 번역된 책의 제목은 ‘사랑을 담아’ (원제 ‘In Love’)." (조선일보)


최근에 어빈 얄롬의 저서 ‘죽음과 삶 (얄롬 박사 부부의 마지막 일상)’을 읽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이며 저술가인 얄롬 박사는 평생 인간의 불안과 슬픔을 치유하는 상담을 진행해 온 의사이다. 하지만 그의 아내가 암 진단을 받자 매우 힘들어한다. 남의 고통을 다루는 것과 자신의 고통을 다루는 것은 다른 일인 것 같다. 부부는 함께 책을 쓰기로 결정한다. 각자 한 챕터씩 글을 교대로 쓰다가 아내가 먼저 죽은 후 얄롬이 나머지를 채워 책을 완성한다. 그의 아내는 조력 자살을 택하며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한다. 조력자살을 결정하기까지 힘든 과정도 책에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아내의 차를 매각한 후 주차장에 자신의 차 한 대밖에 없는 것을 발견하고는 울음을 터뜨린다.


주차장 장면을 읽으며 외국 사진작가의 사진 몇 장이 떠오른다. 부모님을 뵙고 돌아갈 때마다 주차장 앞에 서서 자신을 배웅하고 있는 부모의 모습을 차 안에서 사진에 담는다. 늘 같은 장소에 계신 두 분을 같은 장소의 차 안에서 찍은 사진이다. 두 분이 함께 서 있는 사진이 있고, 이어서 한 분만 서있고, 나중에는 빈 주차장만 보이는 사진이다. 늘 옆에 있을 줄 알았던 부모님 중 한 분이 먼저 돌아가시고, 나중에 남은 한 분도 돌아가시며 텅 빈 주차장만 보이는 이 사진은 어떤 말보다도 삶과 죽음을 잘 표현하는 사진이다. 함께 평생 살아온 부부 중 누군가는 먼저 가고, 언젠가는 남은 사람도 사라진다. 세월을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60대 중반으로 죽음을 가끔 생각한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고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또는 죽음을 맞이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또는 아내나 나 중 누가 먼저 갈까 같은 생각들이다. 가장 두려운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치매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꾸준히 걷고 글을 쓰며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내고 있다. 고통 속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바람도 있다. 죽음의 고비에 있을 때 억지로 삶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고통 속에 죽고 싶지 않아 진통제를 맞으며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또는 에이미 불룸이나 얄롬 박사의 부인처럼 존엄사를 택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책,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모리 교수는 죽기 전 보고 싶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사전 장례식을 축제처럼 치른다. 얄롬 박사 아내도 죽기 전 보고 싶은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자신이 갖고 있던 소중한 물건들을 나눠준다. 고통 속에 죽는 것보다 진통제를 맞아가며 고통스럽지 않게 사전 장례식을 치르며 보고 싶은 사람들과 만나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편안하게 눈을 감고 싶다.

죽음에 관한 이런 생각들은 삶을 단순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만약 내일 죽는다면 또는 시한부 인생을 산다면 굳이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거나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거나, 화를 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 보고 만지고 느끼고 맛보는 모든 것은 이 세상의 마지막 경험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 경험을 감정적으로 오염된 상태에서 맞이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죽기 전 바라본 노을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는 어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연상된다. 죽음을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 방법이 보인다. 최근에 죽음에 관한 생각을 하며 아내와 다투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바로 가족이고, 그중에도 특히 나와 평생 함께 살아온 아내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그간 참 하잘 것 없는 사소한 일로 많이 다투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다툴 일도 전혀 아니었다. 누가 옳고 그르고, 어떤 방법이 좋고 나쁘고, 무엇이 우선순위이고 등등 이런 아주 쓸데없는 것들이 다툼의 원인이었다. 아내는 대부분 참아왔고, 힘든 시간을 잘 견뎌주었고, 덕분에 우리는 잘 살아올 수 있었다. 아내에 대한 생각은 고마움과 미안함뿐이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 친구, 지인들도 매우 소중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사람들 속에서 살면서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조금씩 성숙해 나간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 또 겪는 상황들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날카로운 부분을 잘라내는 고통을 맞이하고, 이런 고통을 통해 우리는 성장한다. 우리의 삶은 우리를 단련시키고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자연의 섭리 또는 신의 뜻일 수도 있다.

“에이미는 ‘왜 나에게....’ 같은 원망을 한 적은 없다고 했다. ‘이 세상엔 많은 슬픔과 고통이 있고, 슬픔은 우리가 사랑과 삶에 지불하는 대가라고 생각해요.’ (중략) 남편이 떠난 뒤 제게 남은 것은 우리의 삶과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것, 모든 것에 친절하고,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필요한 것보다 더 너그럽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조선일보)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낸 후 아내인 작가 에이미가 한 말, 친절하게 대하고 필요한 것보다 더 너그럽게 대하라는 말, 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요즘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데 참 옹졸하고 이기적이고 못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 예의는 지키려 노력하지만 속에는 아만심이 가득하고, 사람들에게 불친절하고, 매우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며 가끔은 억울하기도 하고, 가끔은 자신의 못난 모습에 실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생긴 버릇 중 하나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나 상황들을 보며 만약 내일 죽는다면 이들을 어떻게 대할까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은 마음속 부정적인 감정들을 금방 사라지게 만들어준다.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이런 방법을 통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내면의 부정적인 면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싶다. 과거는 사라졌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오직 ‘지금-여기’가 나의 실존을 증명한다. 과거나 미래에 묶여 사람들과 상황을 대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 지금-여기‘를 통해 나를 변화시키고, 편안하고 단순한 삶을 살아가고, ’ 지금-여기‘에 죽음이 찾아오면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하고 싶다. 죽음은 몸을 앗아가지만,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삶을 편안하고 단순하게 만들어 준다.

9791162263495.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걷기는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