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가고 길고 지루한 장마도 끝났다. 양재 시민의 숲에서 시작되는 서울 둘레길은 산길로 이루어져 있다. 습기를 잔뜩 품은 숲길은 습하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고 땅은 조금 젖어있어 걷기에는 아주 편안하다. 가끔 내리는 보슬비는 몸의 열기를 식혀준다. 수마가 지나가며 남긴 상처는 보기 흉하고 안타깝다. 하지만 작은 계곡에 흐르는 물과 물소리는 아름답다.
지난 2주간 지방을 다니며 알바를 했다. 오랜만에 매일 출근하듯 알바를 하니 몸도 마음도 피곤하다. 저녁에 귀가하면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저녁 식사 후에는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불광천을 한 시간 정도 걷는다. 걸으면 심신이 충전되는 느낌이 든다. 이제 걷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가 되었다. 피곤할 때, 슬플 때, 즐거울 때, 행복할 때, 괴롭고 우울할 때, 할 일이 없을 때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친구다. 걷기는 언제든 나의 부름에 응하며, 나는 걷기라는 친구와 함께 어울려 지내며 모든 고락을 함께 한다. 걷기라는 친구는 내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도 않고, 가볍고 유치한 말로 나를 위로하거나 축하해 주지도 않는다. 가끔 침묵이 어떤 말보다 훨씬 더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는 사실을 걷기라는 친구를 통해 알게 된다. 걷기라는 친구는 말도 못 하지만, 내 안의 다양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차리고 그에 맞는 적절한 답변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이런 친구 한 명은 백 명의 친구보다 낫다.
또한 길동무라는 친구 역시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좋은 친구다. 오랜만에 나오신 쏘피아님은 비록 말씀은 적지만 조용히 걸으시며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낸다. 정성껏 준비해 온 과일로 길동무들에게 마음을 표현한다. 말 없는 표현이 말보다 훨씬 더 나을 때가 있다. 앞으로 자주 나와 함께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오랜 세월 학생들을 가르치다 최근에 은퇴하신 뜬배님은 인생 2막 어린애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과 다른 삶을 살고 싶어서 뜬배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사명감과 가족을 위한 일이라면, 지금부터의 삶은 강가에 떠있는 뜬배처럼 유유자적하게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산티이고 여행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이 또한 반갑다. 게다가 나와 동갑내기 친구다. 닭띠 친구를 만나니 이 또한 더욱 반갑고 좋다. 주니유니님, 뜬배, 그리고 걷고는 동갑내기 친구다.
당근조아님과 도니님은 아주 편안한 길동무다. 비록 당근조아님은 최근에 만났지만, 오랜 친구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을 돕는데 솔선수범하며 주변을 밝고 활기차게 만들어주어 좋다. 도니님은 오랜 길동무로 한동안 보지 않으면 가끔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함께 걸으며 말 없는 말을 나누기도 한다. 이런 침묵 속 걷기는 활기찬 대화 속 걷기 못지않게 즐겁고 고맙고 좋다. 조용히 날아다니듯 걷는 제히님은 자신의 전공을 얘기하며 대화 속에 깊게 들어와 즐거움을 나눈다. 그런 모습이 보기 좋다. 요즘 걷기마당의 뜨는 해인 에단호크님은 활기차게 걸으며 사진도 찍고 막내답게 스스로 할 일을 찾아 길동무들을 도와준다. 에단호크님이 오면 괜히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 원래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인데 에단호크님이 나타나면 더 할 일이 없어진다. 그래서 편하다. 이런 사실이 에단호크님에게 부담으로 닿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일차와 이차로 이어진 술자리는 마냥 즐겁다. 걷기라는 친구와 길동무라는 친구가 함께 어울리는 자리는 언제나 편안하고 즐겁다. 끝나고 귀가할 때 뜬배님을 아이스크림을 먹고 가겠다며 우리를 먼저 보낸다. 동심을 지닌 뜬배님이다. 다음에는 같이 아이스크림 먹자 친구야! 길과 길동무들에게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