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뭔가가 충족되지 않고 허전하다. 특별히 그럴만한 이유는 하나도 없다. 일상의 변화도 없고, 가정 내에 특별한 문제도 없다. 둘째 손주가 발달이 조금 지연되어 온 가족이 노력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 아이 덕분에 우리 가족이 함께 지내는 날이 많고 그만큼 가족애를 느끼며 행복하게 지낸다. 무엇보다 손주들과 즐거운 추억을 공유하게 된 것도 큰 축복이다. 늘 하듯 걷고, 글 쓰고, 책 읽고, 상담하며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허전함과 외로움을 자주 느낀다. 가까운 지인들을 만나 즐겁게 떠들며 술 한잔 할 수도 있는데, 선뜻 만나자고 하기가 꺼려진다. 예전에는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떠드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그 즐거움도 많이 시들해졌다. 딱히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다. 혼자 지내는 것이 편안하면서도 동시에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남아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혹시 우울이 찾아온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할 수 있는 일은 걷고, 글 쓰고, 책 읽은 것 외에는 없다. 명상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오랫동안 하지 않아서 그런지 문지방 넘어 좌복 있는 방까지 가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
일상의 변화도 원인 중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집에서 아내와 둘이 조용히 지내다 손자 때문에 주 4일은 딸네 머물고 있다. 매번 움직일 때마다 준비해 갈 물건들이 제법 많고, 옷이나 책을 챙기고, 복장도 상황에 맞춰 준비해서 가야 한다. 딸네 머무는 동안 활동에 제약을 느끼고 있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주 3일은 우리 집에 머물며 지내고, 주 4일은 딸네 머무는 불편함이나 불안정함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가족인데 나 혼자만 편안하게 지내겠다고 집에 머물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런 생활을 한 지 벌써 1년이 넘어간다. 상황에 따라 머무는 날짜와 시간이 바뀌기도 했다. 가능하면 루틴을 지키며 사는 것이 편안한 사람인데 이런 불안정한 상황이 주는 스트레스도 있다. 이런 생활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가장인 내가 스스로 가장의 역할을 내던질 수는 없는 일이다. 딸네 가족의 힘듦을 모른 채 하며 지낼 수는 없다. 우리 부부가 함께 지내며 도움을 주고 있기에 아이들도 힘든 상황을 잘 버티고 견디며 지내고 있을 것이다. 1년 넘는 세월이 지났으니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편안하지만은 않다. 내 안에 스스로 이 상황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자문해 본다. 처음에는 마음속에서 저항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많이 수용하며 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딸네 머물면서 그 안에서 나만의 루틴을 어느 정도 만들기도 했다.
집안에 특별한 변화도 없고, 딸네와 함께 지내는 것이 주된 이유가 아니라면 허전함과 외로움의 원인은 무엇일까? 어제저녁때 갑자기 일상의 큰 변화가 주된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변화는 걷기 동호회와 관련되어 있다. 걷기 동호회 활동을 12년간 꾸준히 활동하고, 길 안내자로도 활동하며 지내고 있다. 경기 둘레길을 1년 3개월간 진행한 후 지쳐서 잠시 길 안내자 역할을 내려놓고 혼자 걸으며 지낸다. 그럼에도 매일매일 카페에 들어가 글을 읽는다. 굳이 다른 사람들의 활동을 알아야 할 이유도 없는데도 무의식적으로 카페에 들어가서 확인을 한다. 아침에 기상하면 제일 먼저 찾아보는 것이 걷기 동호회 카페다. 이상한 일이다. 마치 제정신이 아닌 사람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활동을 잠시 쉬고 있음에도 하루에도 몇 번씩 핸드폰으로 카페에 들어가 본다. 딱히 읽을 내용이 있거나 궁금한 일도 없는데 습관적으로 카페에 들어간다. 최근에는 글을 몇 번 올렸다. 카페 활동을 쉬겠다고 하면서도 글을 올리는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 카페 외에도 활동하고 있는 sns에 들어가 자주 확인한다. 몇 명이 조회했고, ‘좋아하는’ 버튼을 누른 숫자를 확인하고, 댓글을 자세히 읽어본다. 이 짓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다. 어느새 sns 중독이 된 것 같다.
걷기 동호회 활동을 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을 즐기고 있었고, 그것을 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른 sns 활동도 마찬가지다. 거의 중독이다 싶을 정도로 자주 들어가 확인하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결국 누군가의 관심을 원하고 있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기에 허전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나쁜 습관, 특히 무의식적으로 중독에 걸린 듯한 습관은 없앨 필요가 있다. 남의 관심은 사실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그간 받아온 관심 때문에 계속해서 관심을 원하고 있었다. 중독의 금단증상과 같은 카페 활동 금단증상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sns 활동도 글 올릴 때 잠시 확인하는 것 외에 무의식적 금단 행동을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
이제 원인을 알게 되니 그나마 다행이다. 원인을 모를 때에는 제법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방법을 찾지 못해 힘들었다.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우습다. 인간은 결국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갈구하는 존재다. 언제나 이런 인정욕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스님들이 안거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수행자들이 홀로 수행을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한 후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간의 공부를 확인하는 과정의 반복이 우리네 삶이다. 때로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마음공부의 재료로 삼아 홀로 수행하며 자신을 절차탁마하는 것이 삶이다. 불편함은 마음공부의 아주 중요한 소재다. 우리가 모두 늘 행복하다면 행복을 느낄 필요도 없고, 행복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무기력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행복은 불행을 겪은 후에 찾아온다. 불행을 통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행복을 통해서 불행한 시간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이다. 어느 한 면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다른 모습도 볼 수 없다. 나에게도 불편함을 공부 재료로 삼아 자신을 변화시킬 기회가 온 것이다. 이런 변화의 힘은 누적이 되면 될수록 일상생활에서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요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그간 마음 밭이 많이 거칠어졌다. 그리고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부정적이고, 방어적이며, 공격적이 된 것 같다. 예전에는 이런 마음이 들면 바로 명상 수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쉽게 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마음공부를 멀리해 온 탓이다. 이미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람들의 관심에 익숙해져 있어서 홀로 있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이번에 느낀 허전함과 불편함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당분간 홀로 명상 수행하며 거칠어진 마음 밭을 정갈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명상할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고 상황을 만들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마음 준비가 아직 안 된 것이다. 마음이 사람들의 관심에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관심과 칭찬은 물거품과 같다. 잘 알면서도 크게 속았다. 덕분에 관심과 칭찬의 독이 얼마나 강한지 알게 되었다.
당분간 조용히 여유롭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 원인을 알았으니 별로 걱정할 필요도 없다. 당분간 카페 활동을 쉬게 된 것이 내게는 병을 확인하게 된 좋은 계기가 되었고, 덕분에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병 주고, 약 주고’에 딱 맞는 상황이다. 그간 잊고 살았던 명상 수행도 다시 조금씩 익혀 나가고 싶다. 호흡명상과 위파사나, 그리고 자애명상을 하면서 거친 마음을 정갈하게 다듬고, 사람들을 대하는 차가운 마음도 조금 따뜻하게 만들고 싶다.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는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형식적이고, 때로는 가식적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또한 자기중심적 생각을 많이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명상은 나의 이런 모습을 치료할 수 있는 좋은 처방전이 될 것이다. 허전함과 외로움이 시기적절하게 찾아왔다. 그리고 다행스럽게 그 원인을 찾게 되었고, 덕분에 치료 방법을 알게 되었다. 허전함과 외로움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일상생활 속의 모든 상황도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