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로 어젯밤에 편의점에서 사 온 떡국, 계란 한 개를 먹고 커피를 마신다. 편의점 음식이 잘 나와서 밖에서 식사를 하기 편하다. 아침 5시 반에 기상해서 아침 식사를 한 후 조금 쉬었다 7시에 출발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편안한 세상이다. 창원시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교통편을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쓸데없이 추운 날씨에 밖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참 살기 편한 세상이다. 집 밖을 나와서 생활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 물론 집에 머무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힘이 들기는 하지만 가끔 일상을 벗어나는 것도 삶의 활력이 된다. 숙소도 쉽게 찾을 수 있고, 음식도 얼마든지 골라 먹을 수 있고, 교통편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 옷은 날씨에 맞게 걷기 편안한 복장을 하고 있고, 잠 잘 곳이 있고,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트레킹 하기 위해 더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굳이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몸 컨디션이다. 버스를 타고 전날 도착지점에서 내린 후 걸어서 이동한다. 아침 바람이 세고 날카롭다. 옷을 잘 챙겨 입고 나왔는데도 춥다.
길을 걸으며 벽안을 위한 자애 명상을 한다. “벽안님의 건강과 행복과 평온을 기원합니다. 벽안님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길 기원합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회복실에 있다고 한다. 한 친구는 그 와중에도 들어갈 수 없는 회복실까지 몰래 숨어 들어가 얘기는 못하고 뒷모습만 살짝 보고 왔다고 한다. 한 친구는 간단한 통화를 했다고 한다. 사람에 대해 마음 쓰는 것이 느껴진다. 좋은 우정이다. 한 친구는 통화했다기보다는 벽안의 목소리 말 한마디 들은 것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이제 막 수술을 마쳤고 회복기간이 긴 것을 고려하면 말하는 것이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런 친구의 마음을 헤아려 그냥 목소리 들은 것으로 안도감을 느낀 모양이다. 나도 카톡이나 전화를 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상태가 어떤지도 모르고 내 연락을 받고 연락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연락을 취하는 것이 부담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또 만약 목소리가 힘들게 느껴지면 그 고통을 나 스스로 견디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든다. 단톡방에 벽안이 소식 올리기 전까지는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간병인을 두고 약 한 달 정도 회복실에서 지낸다고 한다. 빨리 회복하기를 기원한다. 걷는 도중에 벽안이 생각날 때마다 기도를 이어간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초입에 경사가 매우 심한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난이도가 보통 수준으로 표시되어 있어서 걷기 편한 길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복병을 만난 것이다. 경사도가 한 40도 이상 되는 것 같다. 몸이 채 풀리기도 전에 가파른 오르막 산길을 오른다. 경사는 심해도 거리가 짧다. 한 20분 정도 올라 정상에 도착한다. 해는 떴지만, 산속에는 해가 들어오지 않아 춥고 쌀쌀하다. 정상에 올라 잠시 한숨 돌린 후 숲길을 걷는다. 낙엽이 가득한 조용한 숲길이다. 우리 외에는 걷는 사람이 없다. 만약 이 길을 혼자 걸었다면 조금 무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낙엽이 가득 쌓인 길을 지나니 좌측에 빽빽한 전나무 숲이 보인다. 아무도 없는 좁은 오솔길을 우리 셋이 걷고 있다. 행복한 순간이다. 오르막 길을 오른 고통에 대한 보상이자 고마운 선물이다. 하산 길은 낙엽이 가득한 좁은 지그재그 길이다. 완만한 경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조용히 명상하며 걷기에 아주 최적의 산길이다. 이 길을 걸으니 저절로 마음속이 차분해지며 좀 더 오래오래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약 한 시간 정도 이 멋진 힐링 숲길을 걸었다. 저 밑에서 차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산속에서는 신선놀음을 하며 걸었다. 차소리를 들으며 현실로 돌아온다. 이 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잠시 혼자 마치 차마고도를 걷고 있다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지그재그로 연결된 아주 좁은 오솔길이 가끔 TV에서 시청한 차마고도를 연상시킨다.
이어서 창원 주거단지 지역을 통과한다. 무척 조용한 마을이다. 아파트 조경도 잘 되어 있고, 하천 정비도 매우 깔끔하게 되어 있다. 아파트 이름이 volvo라는 한 동의 아파트가 보인다. 아마 창원 내에 볼보 공장이 있고, 직원을 위한 사택으로 아파트를 지은 것은 아닌가라는 상상을 한다. 인상적인 것은 아파트 입구에 어린이집, 유치원 간판이 설치되어 있다. 볼보는 직원의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기업 이미지를 강조한 것 같다. 굳이 서울에서 힘들게 사는 것보다 지방에 위치한 공장에 근무하며 사택에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아파트를 따라 걷는 산책로 조성이 잘 되어있고, 중간중간에 운동시설도 설치되어 있다. 주민의 복지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 경의선 숲길 같은 예전의 철길에 산책로를 조성해 놓은 길이 나온다. 제법 긴 길이다. 좌우 벽에는 사진, 그림, 간단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이 길의 과거를 알려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고 있다. 레일은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다. 산책로 끝 부분에는 과거의 철길 일부를 그대로 보존해 놓았고, 중간에는 철도 건널목을 관리하는 관리인 동상과 멈춤 표지판도 설치되어 있어서 사람들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이런 길을 걸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옛 생각도 떠오른다. 과거가 점점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이제 서서히 늙어 가는구나. 9코스가 끝난 후 점심 식사를 한 후 길동무 한 명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다른 선약이 있어서 이번에는 먼저 돌아가고, 다음 길에 다시 만나 걷기로 했다.
2박 3일간 시간을 내어 온 길을 쉽게 끝내기가 아쉬워서 그런지, 한 코스를 더 걷기로 욕심을 내 본다. 오늘 9, 10 코스를 모두 걸으면 31킬로를 걷는 것이다. 중간에 힘들면 모두 걷지 않고 숙소로 가기로 하고 걷는다. 하지만 일단 시작한 길을 중간에 포기한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다. 10코스는 아파트 뒷산을 오르는 길로 시작된다. 처음에 오르막길이 있지만 데크길로 조성되어 있고, 아침에 넘어온 오르막길에 비하면 귀여운 정도의 오르막이다. 조금 오른 후 편안한 숲길에 야자수나뭇잎으로 만든 길이 나타난다. 걷기 좋은 아파트 뒷산이다. 이 산을 지나니 청량산이 나타난다. 제법 높은 산인데 임도가 아닌 포장도로로 걷기 편안하게 길을 만들어 놓았다. 차는 거의 다니지 않고 주로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산 좌측에는 바다가 보인다. 바다를 보며 임도를 통해 산을 넘는다. 완만한 경사가 계속 이어지는 이 길은 이미 약 20킬로를 걸은 우리들에게 조금 버겁게 느껴진다. 하지만 걷기로 한 길을 중간에 포기할 수는 없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그래야만 하는 명분과 사명이 있는 것처럼 걷는다. 걸으며 왜 한 코스를 더 걷자고 결정한 자신을 나무란다. 스스로 발등을 찍은 것이다. 하산한 후 편안한 마을 길을 걷는다. 하지만 위험한 구간도 많다. 보행로가 없는 도로를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고 고맙게도 운전자들이 차를 중앙 쪽으로 몰아 운전하며 우리의 안전을 확보해 준다. 중간에 쉬며 간식을 먹는다. 남을 길을 마저 걷기 위해 영양 보충을 하는 것이다. 이제 남은 길은 약 2킬로. 지쳐간다. 그리고 이 길을 더 걷자고 한 자신이 원망스럽다. 드디어 10코스가 끝났다. 버스도 2분 내로 도착한다고 전광판이 안내를 한다. 시간 맞춰 잘 끝내서 뿌듯하다. 만약 이 차를 놓치면 다음 차가 언제 올진 알 수 없는 일이다. 약 50분 정도 차로 이동해서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를 한 곳으로 정해서 베이스 켐프처럼 만들어 짐을 맡기고 가볍게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앞으로도 전체 걸을 코스 중간에 숙소를 정한 후 짐을 놓고 편안하게 걸을 계획이다. 오늘 걸은 거리는 총 31km, 5만보 이상을 걸었다. 굳이 이렇게 무리해서 걸을 필요가 없는데, 일단 마치고 나면 뭔가 큰 일을 한 것처럼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간단히 씻은 후 어제 갔던 양평해장국집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 어제 먹었는데 음식이 맛있어서 다시 찾아온 것이다. 내일 11코스를 걸으면 창원 구간이 끝난다. 이어서 곧 고성과 통영 구간이 기다리고 있다. 경치가 좋은 곳이라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길을 걸으며 힘들어한 후 다시 다음 길을 생각하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상한 현상이다. 하지만 길을 걸으며 자유를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다. 길 걷는 힘듦보다 길 걸으며 느끼는 즐거움과 걸은 후 돌아오는 행복감이 훨씬 더 크다. 그래서 오늘도 걷고 또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