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차 시간이다. 늘 그렇듯이 지난 주의 실행계획 이행여부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시작을 했다. 각자 자신을 위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은지 잘 알고 있기에, 스스로의 상황에 맞춰 조절을 하며 자신을 돌본다. 좋은 일이다. 삶에서 자신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이기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마음이 채워지고 건강해야 타인의 감정을 돌보고 건강을 진정으로 염려를 해주며 함께 갈 수가 있다. 가끔 자신의 삶이 피폐해지는 것을 느끼 지도 못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퍼주기만 하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그런 행동은 결국 기대심리나 보상심리가 있어서 하기에 타인을 위한 순수한 돌봄이 될 수가 없다. 그런 관계는 대부분 좋은 관계로 유지되기가 어렵다.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하루에 단 5분만이라도 꾸준히 보낼 수 있다면 그런 행위가 자신을 돌보는데 큰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여유의 시간을 통해 마음의 샘에 물을 고이게 할 수가 있고, 고이면 넘치게 된다. 그 넘치는 물은 자연스럽게 주위 사람들에게 흘러가게 된다.
이번 주의 주제는 ‘힘든 감정 다스리기’이다. 간병 생활이나 일상생활에서나 우리의 감정은 대부분 크게 다르지 않다. 간병도 삶의 일부이고 우리의 삶에서 처하게 되는 상황 역시 우리 삶의 일부이기에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간병, 처한 상황, 사람들로 인해 우리는 많은 상처와 힘든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런 감정에는 분노, 우울, 죄책감,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억울함이나 서운함, 존재감이 없는 것에 대한 무력감 등 다양한 감정들이 있다. 감정 자체는 옳고 그름이 없다. 생명이 있는 존재이기에 감정을 느낀다. 다만 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우리의 삶의 모습을 다양하게 변화하게 한다. 느끼는 감정을 잘 해소하게 되면 건강한 삶을 살 수가 있고, 그렇지 않게 될 경우에는 그 감정이 삶 전체를 휘둘러 놓을 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 감정도 오랫동안 간직하게 되면 변질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감정은 자신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감정을 느낄 수가 있다. 결국 감정은 변하는 것이다. 무상이다. 무상은 희망의 단어이다. 변화는 희망을 뜻한다.
내가 힘들어하는 감정은 분노이다. 옆 사람과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얘기를 하다 문득 하나의 작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한 배려나 존중을 하지 않고, 자신들의 의견대로 하거나 나를 통제하려 하면 화가 난다. 그 분노의 밑 감정은 무시당하는 것에 대한 분노이다. 그다음에는 그런 분노의 감정이 나를 다시 몰아세운다. 처음에는 무시하는 사람의 태도가 나를 분노하게 만들고, 그 이후에는 분노의 감정이 나를 더욱 분노하게 만든다. 그 자리에 나 자신의 주인인 ‘나’는 없다. 그런 상황을 만든 사람이 나의 주인이 되고, 그 이후에는 그 당사자는 사라지고 ‘분노’라는 감정이 나의 주인이 된다. 결국 내 삶의 주도권이 ‘타인’과 ‘분노’에게 넘어간 것이다. 이 알아차림은 내게 아주 소중한 경험이다.
어떤 분은 신혼여행을 시어른의 병원으로 가셨고 오랫동안 병 수발을 드셨다고 하셨다. 어떤 분은 배우자의 암 진행 과정을 온몸으로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시고 계셨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모두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런 삶의 역경 속에서도 우리가 모두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아주 대단한 일이다. 단순히 살아남은 것이 아니고 희망을 갖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모습은 처절한 아름다움이다. 고통의 이면이 행복이라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 분들이기에 그분들의 삶은 더욱 아름답다. 그런 변화무쌍한 삶 속에서 우리는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간병을 하면서 또 삶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살 수밖에 없다. 자신의 정체성, 돈, 시간, 희망, 꿈, 친구, 삶의 목적, 웃음, 사랑 등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과연 똑같은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이 같은 반응을 보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삶의 터널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볼 수 있고 상황은 바뀌지 않아도 행복을 느낄 수는 있다.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을 통해서 극한 포로수용소의 삶 속에서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하였고, 그런 이론을 토대로 ‘의미 치료’ 이론을 완성하였다.
같은 상황이자만 관점의 변화를 통해서 다르게 볼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끊임없는 노력과 시도를 통해서 이룰 수 있다. 그 선택은 각자가 할 수 있다. 지금처럼 가마솥 더위를 함께 지내며 어떤 사람들은 짜증을 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묵묵히 자신의 일에 빠져 더위를 잊기도 한다. 나는 이번 더위 속을 많이 걸으며 더위와 함께 사는 방법을 이번에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그간 길을 걸으며 빗 속과 강추위 속에서도 걸으며 비와 추위가 두렵지 않게 되었다. 더위가 가장 큰 어려움이었는데, 올여름을 통해서 더위 속에서 걷고 힘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사시사철 언제든 걸을 준비가 되어있다. 내게는 올여름이 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일단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더위 속을 걷는 것이 한결 편해졌고 체력이 더욱 좋아진 것을 느낄 수가 있다.
힘든 감정을 어떻게 해소를 하고 지쳐있을 때 어떻게 충전을 하는지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아주 짧은 시간만이라도 벗어나 그런 방법을 통해 해소와 충전을 해야 한다. 힘든 터널 속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도 꾸준히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을 충전시키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가만히 멈춰 있으며 그 터널을 빠져나올 수가 없다. 비록 앞이 보이지 않아도 꾸준히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각자 찾은 해소와 충전의 방법으로.
터널 속 삶이 힘든 이유는 앞이 보이지 않고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포기를 한다. 하지만 아무리 힘이 들어도 끝이 보이면 견뎌낼 수 있다. 끝이 보일 때까지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고, 그 움직임을 위해서는 충전이 필요하다. 서대문 안산 길을 밤에 걸을 때가 있었다. 멀리서 보면 어둠이 짙어 빛이 없어 보이고 첫 발을 내딛기가 무섭고 힘이 든다. 근데 한 발 앞으로 나 아가면 어둠이 그만큼 물러가고, 멀리서 어둠으로 보였던 그곳에서 희미한 빛을 볼 수가 있다. 나는 이런 것을 ‘어둠 속의 빛’이라고 표현한다. 어떤 어둠도 완벽한 어둠은 없다. 어둠의 이면은 밝음이듯이, 어둠 속에는 밝음이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한치의 어김없이 존재한다. 이것이 우리네 삶인 것 같다. 희망이 보이지 않고,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분들에게 이 글이 자그마한 도움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번 5회 차 교육은 그런 방법을 배우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
서대문 안산의 여름. 인공폭포
서대문 안산의 겨울, 인공폭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