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by Hwijeen Ahn

CEO는 바깥 일을 많이 한다. 아니 하는 거 같다. 회사에 있는 시간 대부분을 바깥 사람들과 미팅하는 데 쓰는데, 일종의 영업 마케팅을 한다고 이해하고 있다. 영업 부서와 다른 점은 상품을 판다기보다는 회사의 이미지를 파는 거 같다. CEO가 팔고 싶어하는 이미지는 기술 우위, 스마트함/엘리트함, 인간의 지능을 탐구한다기 보다는 회사들이 가진 문제를 푼다는 현실감각등이다. 이런 일반적인 구호가 잘 팔리는 이유는 많은 부분 이 사람의 명성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 회사의 핵심이 되는 기술은 사실 다른 많은 회사들도 자기네들이 잘 한다고 홍보하는 기술인데, CEO가 그들을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는 건 그 기술을 처음 제안한 논문의 저자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거 만든 사람인데 내 회사 제품을 써야되지 않겠어?“라는 메시지가 명성의 핵심이다. 그러고 그 사람이 일했던 회사들, 겸임교수 자리는 장식처럼 따라온다. 연구자로서 학교와 회사에서 커리어를 쌓아오면서 기술 업계나 투자 업계에 아는 사람도 많을 거고 자기 이름이 어느정도는 브랜드가 되었을 거기에 바깥 사람과 교류할 때도 갑은 아니지만 을도 아닌, 여유 있는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같다.


나는 이 사람과 두 번정도 독대를 해봤다. 한 번은 지원자로서 최종 면접을 보는 자리였는데 서로를 평가한다기 보다는 으레 거쳐야하는 인성 면접같은 느낌이었다. 예상을 벗어나는 당혹스러운 질문은 없었고, 기억은 잘 안나지만 다른 사람과도 충분히 나눌 수 있을만한 캐주얼한 얘기가 오갔다. 두 번째 대화는 내가 신청했다. 하루는 CEO가 오늘은 내부 사람들에게 시간을 쓰기로 결정했다며, 자기의 시간을 이용하고 싶은 사람은 미팅을 신청하라고 했다. 굳이 스타트업을 자기가 시작하는 개인적인 동기는 뭔지, 세상의 어떤 부분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구호 말고 엑싯 플랜등 현실적인 계획은 뭔지, 바깥에 나가서 얘기할 때 어느정도까지 기술을 공개하는지 등등 질문이 많이 떠오르면서도 독대를 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하루정도 고민을 했지만 호기심이 부담감을 이겼다. 그런데 막상 만나서는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개인적인 질문은 하나도 못하고, 내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기술적인 이야기만 오고 갔다. 내 프로젝트는 우리 회사가 가진 범용 모델을 특정 데이터나 특정 도메인에 특화되게끔 만드는 기술인데, CEO는 이를 위해 준비해야하는 데이터는 뭔지, 어떤 알고리즘들이 어떤 특징들이 있는지 등에 대한 기술적인 디테일을 많이 알고 있어서 대화가 매끄러웠다. 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대화 막바지에 다른 동료가 우리 대화에 끼게 되었을 때, CEO가 나보고 지금까지 얘기 나눈 내용을 요약해서 설명해보라고 한 것이다. 시험대에 오른 것처럼 바짝 긴장이 됐지만 “오브 코스~”하는 태도로 큰 그림부터, 너무 디테일한 내용은 빼고, 또박또박한 영어로, 설명을 했다. 중간 중간 동료가 질문을 하면 내가 계획한 대화의 흐름에 집착하기 보다는 그 질문에 맞게끔 대화 방향을 수정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긴장되는 경험이 더 자주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대는 아니지만 슬랙 채널에서도 인상적인 교류가 있었다. 회사 일과는 별개로 같은 실리콘 밸리 동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학교에 있을 때는 알 수가 없던 사람들이지만 같이 시간을 나눠보니 고수의 느낌이 나는 사람들이었다. 스타트업을 좋아하고, 논문에는 영 관심이 없고, 코드는 아주 기가막히게 짜는 그 사람들은 내 고수 레이더에 의하면 고수, 그 중에서도 재야의 고수 느낌이 강했다. 얘기 와중에 두 명이나 나에게 혹시 같이 해커톤을 주최해볼 생각이 있냐고 물어봤다. 두 명이나 그런 얘기를 꺼낸 게 좋은 신호라고 생각이 들어서 회사 슬랙 채널에서 이게 우리의 ‘기술 우위’를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CEO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CEO는 재미는 있겠지만 자기가 생각하는 전략과는 다르다는 답변을 했는데 내 표현대로 재구성하면 재야에 있는 인디 고수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는 것 보다는 영향력 있는 인물들과 관계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우리가 초기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조금은 언더독 위치에 있지 않나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이 사람은 생각이 다른 듯했다. 가방 끈도 길고 성취도 많은 이 사람의 인생은 언제나 자신감이 가득차 있는 것 같았고, 지금 자신의 스타트업이 초기인 것은 자신의 일류 인생과 배척되지 않고 어쩌면 일류라는 것의 반증으로 이해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어찌 됐든 아주 인터레스팅한 사람임이 분명하고, 회사의 대표로 믿고 따라도 되겠다 싶은 자신감과 안정감을 가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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