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by Hwijeen Ahn

미국에서 일하는 게 한국에서와 다르다고 느끼는 지점은 커뮤니케이션 관련된 부분이다.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건 한국 회사에서 일할 때도 익히 알고 있었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이 사람은 처음 들은 내용을 교과서처럼 요약 정리를 기가 막히게 잘 하네, 이 사람은 미팅에서 정말 생산적인 질문을 하네, 이 사람은 자신이 한 주 동안 무슨 문제를 어떤 각도에서 접근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하네 등등 다양한 유형이 있었다. 반면에 너무 디테일한 내용을 먼저 꺼내는 사람, 담당자가 아니면 알아듣기 어려운 특수 용어 (대부분의 특수 용어는 심지어 임의적이다) 를 너무 많이 섞어 얘기하는 사람, 대화 내내 자기를 방어하는 건지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건지 주변적인 것에 초점을 맞춰 대화하는 사람 등의 부정적인 케이스도 있었다. 속으로 동료들을 판단해버린 게 조금 죄송하기도 했지만 나는 커뮤니케이션 잘 하는 사람들과 얘기나눌 때는 본 받으려는 노력을, 핀트가 안 맞는 사람들과 얘기할 때는 대화를 생산적으로 이끌어 가려고 노력했다.


미국에서 일한다는 것도 구조적으로는 별반 다르지 않다. 아무리 기술적인 일을 하더라도 정확한 단어로, 중언부언하지 않고, 일목요연하게 의사소통하는 건 큰 덕목이다. 달라진 건 내 언어실력 뿐이다. 모국어인 한국말로 설명을 할 때에는 그래도 짬밥이 나온다. 처음 보는 숫자 가득한 표를 보더라도 머리가 받아들이는 내용을 말로 옮기면서 읽을 수 있고, 대뜸 너는 무슨 일을 하냐는 일반적인 질문에도 큰 어려움 없이 큰 그림을 얘기할 수 있다. 영어로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건 조금 더 에너지를 요한다. 하고 싶은 말 자체는 언어화되지 않은 형태로 내 마음속에 있는 것 같은데, 그걸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찾는 과정이 모국어에 비해 현저히 느리다. 게다가 영어에 더 익숙하게 될수록 너무 단순한 단어는 빼고, 원어민이 많이 쓰는 단어 위주로 얘기하고 싶다는 욕심이 더해져서 가끔은 아주 자연스러운 척 "um.."을 하면서 생각할 시간을 몰래 벌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사용하는 단어의 풀부터가 내 한국어 어휘에 비하면 한정적이고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도 뭉뚱그려서 이해하고 있기에, 결과적으로 나오는 말도 그렇게 명료한 것같지 않다.


이번 주 금요일에는 "demo session"이 있었다. 데모라는 건 무언가 완성된 걸 공개하는 자리같지만 매주하는 우리 회사 데모 세션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소통하는 자리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슬라이드씩이나 준비하는 게 과한 준비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 두루뭉술한 영어를 만회하기 위해 딱딱한 슬라이드를 준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표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슬라이드 중간에 내가 실험한 내용이 들어있는 표가 있었는데, 나는 내가 그 정도의 표는 술술 설명을 잘 할줄 알았다. 대학원에서 가장 많이한 훈련 중에 하나가 표와 그래프에 담긴 의미를 쉽게 설명하는 거였으니까. 그런데 나는 어처구니 없게도 표의 각 열과 행이 무슨 의미인지도 먼저 설명하지 않은 채, 이 숫자 저 숫자를 얘기하고 있었다. 광화문을 설명하려면 배산임수 개념을 설명한다음에 백악산, 광화문, 청계천을 설명해야 똑똑한 걸텐데 나는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여기는 문이 있고 저기는 산이 있고... 그러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내가 발표를 하고 그 내용에 대해 그래도 후회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미국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아직도 큰 숙제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는 회사에 와서야 알게됐다. 미국 대학원 생활도 영어를 쓰는 환경이지만, 대부분의 일 관련된 의사소통은 내가 충분히 준비를 하고 하는 것들이다. 일주일 동안 일한 내용을 지도교수님께 말씀드리든, 무슨 기회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건, 남이 하는 발표를 들으며 떠오른 질문을 충분히 가다듬고 손을 들어 물어보든, 다 충분히 준비가 된 상태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진다. 회사에서 일한다는 건 조금 더 즉흥적이다. 사내 메신저로 누군가 메시지를 보내오면 즉각적으로 답장을 해야하고, 누군가가 토의를 하자고 불쑥 어깨를 두드리면 그때부턴 실전이다. 돌이켜보면 아침에는 얘기가 잘 되는데 저녁으로 갈 수록 어째 커뮤니케이션이 뭉개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뇌에 큰 부하를 준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나는 성장통이 있으면 성장이 있을 거라는 긍정적인 자세를 일단은 유지하고 있다. '잘 하는 재미'를 찾고 싶은 욕심이 앞에서 이끌고 외국인 노동자라는 불안한 신분이 뒤에서 눈치줘서 나는 적당한 긍정을 유지하며 일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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