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대한 단상
시험이 1주일 남았다. 하지만 준비를 하기는커녕 뒹굴거리기 바쁘다. 한 달도 아닌 일주일 안에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39가지나 되는 레시피를 내 머리에 다 집어넣는 게 가능은 할까. 나는 단지 칵테일이 좋아서 시작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아 가면서 준비해야 하는가. 의문이 많았지만, 걱정은 놀면서 했다.
조주기능사 시험은 7분 안에 3가지 칵테일을 정확하게 만들어 내야 합격 목걸이를 받을 수 있다. 테스트가 시작되면 모양이 재각각인 술잔 속에서 정확한 글라스를 고른 다음 얼음부터 넣는다. 그리고 60가지가 넘는 술과 음료 중에서 나에게 필요한 재료를 꺼내야 한다. 비슷하게 생긴 술병이 끊이질 않아 차라리 월리를 찾는 게 더 빠를 수도 있다. 술병을 찾으면 재빨리 뽑아 용량을 정확하게 재고 글라스나 쉐이커에 붓는다. 마지막으로 레몬, 파인애플, 오렌지, 사과 따위를 썰어 가니쉬 픽을 만들고 잔에 꽂으면 조주가 끝난다. 이 모든 과정을 감독관이 지켜보며 채점을 한다. 손동작 하나하나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 부담스러운 눈빛을 견디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리고 감점은 돌이킬 수 없다.
악몽이 떠올랐다. 때는 2년 전 여름, 운전면허 기능시험을 친 날이다. 안 그래도 어려운 1종 보통인 데다 실시간으로 '감점입니다' 기계음이 나와 부담감이 엄청났다. 딱 한 번 감점이 되었을 뿐인데도 시험을 망쳤다는 생각에 손이 떨리고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좌회전 깜빡이를 켜지 않아 감점되었다는 안내를 듣자마자 연습한 걸 모두 잊어버려 줄줄이 실수 파티를 열기도 했다. 깜빡이가 아닌 와이퍼를 켜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후진을 하다 언덕에 올라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렇게 기능시험만 다섯 번을 봤다. 나는 제한 시간 내에 모든 걸 마스터한 프로처럼 움직여야 그나마 합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불안감이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건지 하루에 적게는 13시간, 많게는 16시간씩 매일 과수면을 했다. 시험이 2주 남은 시점부터 조여 오는 긴장감에 계속 누워만 있었지만 자도 자도 하품이 나왔다. 급기야는 취미로 시작한 건데 하나도 즐겁지 않다는 생각에 시험을 취소하려 했다. 감독관에게 주목받는 것도 싫지만, 내가 시험을 치겠다고 해놓고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면 망신이니까. 친구들에게 술을 만들어 주겠다고 허세를 잔뜩 부려 놓았는데 불합격하는 것보다 기권하는 게 덜 창피하지 않은가.
학원에서는 마침 보충 교육을 시작했다. 자신감이 넘쳤을 때 신청한 수업을 취소하려고 원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레시피를 다 외우지 못해서 아무래도 시험을 미루는 게 좋겠다고 말이다. 그는 다른 사람이 연습하는 걸 구경하기만 해도 도움이 될 거라며 일단 오라고 했다. 그 정도야 뭐, 할 만하다.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만 보고 시험을 취소하기로 마음을 잡았다.
실제 시험장처럼 세팅된 바(bar)는 압도적이었다. 두 명씩 앞에 나가 조주를 하면 선생님이 시험 감독관처럼 앉아 채점을 하는 식이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은 시간 내에 척척 칵테일을 만들어 냈다. 뭐가 뭔지 감도 안 잡히는 레시피를 줄줄이 말하는 그들과 달리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내가 한심해 보였다. 언제 저렇게 많은 걸 연습했는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완벽해 보이던 사람에게서 진짜 모습이 보였다. 제출은 했지만 정작 레시피를 들어 보면 엉뚱한 술이었고, 과일 손질은 엉망인 데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완벽한 사람은 어째 단 한 명도 없었다.
모의 테스트가 끝나면 자기가 무얼 잘못했는지 말해야 했다. 구구절절한 반성과 변명이 오가는 시간이다. 동작이 특히 느렸던 사람은 하나 같이 완벽하게 하고 싶다고 했다. 그들은 레시피에 적힌 용량을 눈금에 정확히 맞추려고 안간힘을 썼고, 하나라도 틀리면 술을 다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다. 시간이 다 끝나 가는데도 끝까지 만들려고 붙들었고, 5초면 되는 가니쉬 손질을 30초 이상 온 정성을 들여 다듬었다. 한 개라도 제출하지 않으면 실격인 걸 알면서도 완성에 집착하다 탈락하는 사람도 있었다. 완벽은 좇으면 좇을수록 얄밉게 달아났다.
공익광고 메시지가 아닌 바텐더 선생님들이 수시로 하는 말이다. 100점이 아닌 제출에 신경 쓰라는 의미이다. 무슨 뜻인지 머리로는 알지만 내 몸은 완전히 거부했다. 막상 선생님 앞에 서니까 손에 땀이 흥건해지고 시야가 좁아졌다. 분명 나 같은 사람이 눈앞이 캄캄하다는 말을 만들었을 거다. 보드카가 분명히 내 앞에 있는데, 심지어는 보드카를 똑똑히 보고 있었는데도 어디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시야가 흐려졌다. 감점이 시작되는 순간 망한다는 생각이 온 신경을 꽈악 조여 맸다. 5번이고 10번이고 연습해도 용량이 1ml라도 틀리면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 결과 나는 완벽한 느림보가 됐다.
당장 3일 후가 시험인데 여전히 완벽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한 번이라도 감점이 되면 망한다는 발상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걸까. 그동안 겁에 질린 내가 답답하다고만 생각했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는 돌아보지 않았다. 불안이라는 심해를 들여다보니 팽배하게 깔린 진짜 원인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완벽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믿음, 성취한 게 있어야 사람들과 대화할 주제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 타인의 인정이 곧 애정 표현이라는 생각, 대단하다는 박수가 내 가치를 올려준다는 착각이 둥둥 떠다녔다. 더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갔다. 거기에는 학교에서 2등을 한 날 가족들에게 곧장 뛰어가 자랑을 하자 1등이나 받아 오라는 아빠의 싸늘한 얼굴이 있었다. 나의 자랑이던 성적표는 그의 한 마디로 수치가 되었다.
삐익 소리와 함께 시험이 시작되면 하나라도 틀릴까 봐 심장이 요동치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건 부끄러움도, 불안도, 완벽주의도 아닌 수치심이었다. 내가 조주기능사 시험을 준비한다는 말을 듣고도 잊어버린 친구도 있을 텐데 그들로부터 망신을 당할 거라는 두려움, 성취를 해야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 거라는 믿음,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 안심이 되는 기분 모두 모멸감에서 시작됐다. 시험이라는 발이 그것도 모르고 수치심이라는 지뢰를 밟은 것뿐이다.
완벽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을 몸으로 받아들인 건 그때부터였다. 조금이라도 틀리면 남에게 인정받지 못할까 봐 패닉이 되는 나를 보고 '이런 말도 안 되는 발상이 있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려움의 실체를 알고 나니까 내가 했던 걱정 따위가 싱겁게 느껴졌다. 용량을 잴 때 눈금에 정확하게 맞추지 않고 실수로 조금 더 넣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는, 완벽주의와 거리를 두는 연습을 했다. 항상 1분이 남았다는 생각으로 빨리빨리 조주를 하는데만 집중했다. 술병의 뚜껑이 바닥에 떨어져도, 15번 흔들어야 하는 걸 10번만 흔들어도, 음료 하나를 덜 넣어도, 과일 손질이 이상하게 되어도, 글라스가 와장창 깨져도 지금 내 손에 쥐어진 일에만 신경을 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시험일이 되니까 긴장감이 돌기는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고 심장은 난리가 났지만,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까 봐 떨리는 것과는 다른 감각이었다. 감점을 받아도 괜찮지만 혹여라도 제출하지 못할까 봐 떨리는 정도였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누군가 모멸감을 줘도 내가 안 받으면 그만이라는 걸 받아들이자 패닉의 얼굴을 한 수치심이 조용히 들어갔다.
실수가 생겨도 호들갑 떨지 않았다. 흐물흐물하게 썰어버려 지렁이 모양이 된 과일 가니쉬를 감독관이 손으로 집어 올리곤 눈살을 찌푸려도 나는 아무렴 어떻냐는 눈빛으로 화답했다. 눈송이처럼 잘게 썰린 얼음을 넣어야 했지만 눈앞에 있는 각얼음을 뻔뻔하게 욱여넣었다. 돌이킬 수 없는 감점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다.
2분 남았다는 신호가 울리자 마음이 급해져서 조주를 끝내지 않은 채 그냥 제출을 했다. 체리 한 알과 파인애플을 손질한 다음, 조심스럽게 칵테일 잔에 끼우자마자 시험이 모두 종료 되었다는 신호가 삐익 울렸다. 감독관은 감점 요인을 알려 주고 나가봐도 좋다고 했다. 합격이라는 뜻이다. 나는 시험장 밖으로 나가자마자 주먹을 쥐고 발을 동동 굴렸다.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햇살이 유난히 뜨거웠다. 유난히 유난히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