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해칠 자유
정신건강 분야에서 일을 하면 자살 이슈에 매일 노출된다. 자기 전화를 끊으면 죽을 거라는 협박부터 가족이 자살했다는 이야기, 술을 마시다 충동적으로 자해를 했다는 호소 등 당사자의 에피소드는 천차만별이다. 그들의 고민이 얼마나 연하고 진한지는 차치하고, 수화기 너머 모두가 자살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사전에 자살시도자를 심리적으로 소생(甦生)하는 교육을 들었다. 상대가 술에 취해 자살하려 할 때, 성적을 비관하는 청소년일 때, 우울증을 오래 앓아 자살을 재시도한 것일 때, 죽으라는 환청을 들었을 때 등 여러 상황에 따른 대처법을 아주 상세하게 배웠다. 케이스에 따라 교육 내용도 다양했지만, 공통점은 '그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들으라는 것'이었다. 교육 내내 경청이라는 단어를 귀가 닳도록 들었다.
- "잘 듣기만 해도 반은 해결됩니다."
강사는 섣부른 조언은 절대 금물이라고 했다. 죽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의 심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강력하기 때문이다. 당신을 살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힘들지 않을 때는 언제인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죽으려 했는지 등을 묻고 그 답을 풍부하게 끌어내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그렇게 쏟아져 나오는 말을 눅진하게 듣는 것만으로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했다.
교육대로 실천하는 일은 비교적 쉬웠다. 나의 사소한 말과 행동이 누군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낼 바엔 끄덕이는 것이 더 간단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잘 듣기만 하는 것은 정말 '반'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에 있었다. 대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면 당사자는 나에게 반문하고는 했다. 이때 나머지 '반'을 무사히 다뤄야 자살을 예방할 수 있었다. 경청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왜 자살하면 안 돼요?"
"내 몸에 내가 상처 내겠다는데, 왜 간섭하세요?"
"꼬일 대로 꼬인 내 인생을 그쪽이 대신 살아주기라도 할 겁니까?"
자살시도자 중 일부는 '자기 결정권'을 강조했다. 자기 몸을 위협하는 일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입장인 거다. 우리 모두에게는 죽을 권리가 있다는 논리에 말문이 막혔다. 여기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교육받지 못했을뿐더러, 우울함과 억울함으로 가득 찬 눈빛 자체로 방증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마따나 왜 자살하면 안 되는 건지 생각해 보았다. 그전에 자살은 선택이 맞는 걸까.
사전에서 말하듯, 옵션이 여러 가지일 때만 선택이라는 조건이 성립된다. 즉, 방책이 여럿임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끊은 경우를 두고 '자살을 선택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거다. 자해도 마찬가지다. 보통 죽으려는 목적보다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곤 하는데, 잘 들여다보면 자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재미를 느끼는 활동을 그다지 하지 않는 걸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짜릿함을 느끼고 싶어 자해한다는 사람은 이렇다 할 취미가 없다. 청소년의 경우에는 더 그렇다. 취미 활동을 가질 만큼의 수입이 없으며, 있다 하더라도 성인보다는 선택의 폭이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다시 자살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자살시도자는 대개 죽음 말고는 방도가 없다고 여긴다. 자기의 삶에는 희망이 없어 이렇게 살 바에야 죽는 게 낫겠다고 믿는 거다. 절벽에 다다라 어쩔 수 없이 뛰어내리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하지만 결국 본인의 의지로 몸을 내던진 것이기에 자발적 결정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타인이, 그리고 환경이 그를 죽고 싶게 만든다.
가정 폭력을 경험하고 있지만 집을 떠날 수 없다거나, 술에 취하지 않으면 삶에 직면할 수 없다거나, 자기만 없어지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다거나, 전재산을 잃었다거나, 복수하기 위해 죽을 거라거나, 사랑하는 사람(또는 동물)이 떠났다거나, 환각으로 인해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다른 선택지를 볼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이 고통이 영원할 거라 굳게 믿게 한다. 이것이 자살이 선택이 아닌 이유이다.
2021년 4월 13일 (화) 수련일지
프로그램을 마치고 학습치료를 진행했다. 내가 담당하는 학생이 내게 자해를 하면 왜 안 되는지, 왜 죽으면 안 되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나는 자해가 주는 편안함이나 쾌락이 몇 분도 채 가지 않고, 그보다 더 오래 안정감을 주는 방법도 많다는 걸 설명했다. 또, 자기를 해치는 행동 뒤에는 살고 싶다는 메시지가 숨어있을 수 있다는 걸 설명했다.
그랬더니 어떻게 불안에서 멀어질 수 있는지, 힘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방법’에 관해 많이 물어봤다. 주변 환경을 바꿀 수 없을 때 어떤 마음을 가지는 것이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궁금해했다. 정답은 없으니 함께 대화를 더 나누면서 찾아야겠지만, 염세적인 말만 하던 환자가 ‘어떻게’에 집중 한 게 반가웠다. 감정 카드를 활용해서 자동적으로 드는 생각을 기록하고 스스로 강점을 인지할 수 있게 개입해야겠다. 자기 몸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던 환자가 더 나은 방법을 묻는 모습이 꼭 살고 싶다는 말로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