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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i Oct 27. 2022

환자의 팬티를 선물 받았다.

실습 첫날에 생긴 일

정신병동 실습이 시작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인사'였다. 병실별로 돌아다니며 환자분들의 이름을 여쭤 보고 나는 누구인지 소개하는 것이다. 내가 실습한 병원에는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폐쇄병동, 반개방 병동, 개방병동이 있었다. 증상의 정도나 치료 기간에 따라 구분했기 때문에 병동의 분위기는 천차만별이었다.


먼저 폐쇄병동은 여성과 남성 전용으로 나뉘어 있었다. 입원을 하면 가장 먼저 폐쇄병동에서 3일~7일 정도 지내야 한다는 규칙이 있어서 그런지 신규 환자가 꼭 있었다. 그리고 증상이 재발해 만성화된 환자, 자기 병을 인식하지 못하는 환자, 장기 입원한 환자 등이 주를 이루었다.




폐쇄병동의 첫인상은 시끌벅적한 학교 같았다. 나를 보자마자 달려온 환자분들은 기자회견을 하듯 질문을 쏟아내고 갑자기 손을 잡아 어디론가 데려가고, 유치한 퀴즈를 내고, 본인들끼리 싸우는 일이  번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망상과 환청 내용으로 주제가 휙휙 바뀌어 과연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답을 내리지 못했다자기 배에 총이 들어 있다거나, 대통령과 비밀로 사귀고 있다거나, 비누를 먹으라는 소리가 들린다는 꿈같은 이야기부터 다른 환자가 자기 물건을 훔쳐갔다거나, 가족으로부터 매를 맞았다는 등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까지 그 스펙트럼은 다양했다.


폐쇄병동에 입원한 환자분들의 병은 오랜 시간 재발을 반복했고, 그 세월을 말해주듯 연령대가 높았다. 아동 청소년이 드물게 있기는 하지만 중년부터 노년층이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20대인 나에게는 직장 상사와 대화를 나누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졌다. '저분들의 눈에는 내가 얼마나 어려 보일까' 싶은 생각에 중년부터 노년층 환자분과 마주칠 때면 그 사람의 또래로 변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른은 존재 자체로 나의 자세를 뻣뻣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병동에서의 어른은 조금 달랐다. 다른 사람의 눈치 따위 보지 않는 마라 맛 화법과 유치한 별명을 짓고 투닥거리는 장난스러움이  초등학생을 닮았다. 병동의 어른은 자기가 실제로 다섯 살이라고 믿는가 하면 과거의 기억을 소환해 자기보다 어린 사람을 엄마나 언니라 불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인사만 열심히 한 하루였다. 병실 곳곳을 돌며 근황을 나누고 한 명도 빠짐없이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한 분 한 분과 스몰토크를 하고 병실 밖을 나서는 그때, 한 환자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손에 묵직한 뭔가를 쥐어 주고 수줍게 웃었다.


언니, 선물이야. 부담 갖지 말고 잘 써.”


그가 입던 팬티였다. 내 손바닥 위에 낯선 사람의 속옷이 있다는 감각이 간지러워 얼른 돌려 드리려 했다. 하지만 마치 첫 월급을 모아 준비한 선물인 것처럼 그냥 좀 받았으면, 하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환자분의 손에 겨우 토스하면, 기어이 나의 주머니에 꽂고 예쁘게 입으라는 말만 반복했다. 팬티를 건 창과 방패의 싸움은 도무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 우리를 지켜보던 직원이 “다음에 다시 주세요.”라고 하자마자 환자분은 쿨하게 자리를 떠났다. 그 후로 그분을 마주칠 때마다 슬그머니 주머니를 손으로 막았다. 




나는 경계를 하느라 병동에 들어갈 때마다 그분이 있나 없나부터 살피게 되었다. 그때 환자분은 거의 항상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있었는데, 고민 하나 없는 얼굴로 활짝 웃고 박수를 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는 꼭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 가장 소중하고 멋진 물건을 건넸다. 칫솔, 스카프, 스티커, 반찬, 휴지 한쪽 등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얼마나 사소했는지 막상 그걸 받은 사람은 왜 쓰던 걸 자기에게 주냐며 버럭 화를 냈다. 그럼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눈에 근사해 보이는 걸 선물하곤 했다. 


시간이 흘러도 그는 한결같이 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내가 30살은 족히 어릴 테지만 "언니 어디가?" "언니 오늘 입은 옷 예쁘네" "언니 나랑 놀래?"라며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는 의미 없을 무언가를 주면서 대화에 마침표를 찍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자기 마음을 투명하게 표현하는 그가 꼭 다섯 살 어린아이 같았다. 만약 여기가 병원이 아닌 놀이터였다면 모래를, 학교였다면 연필을, 들판이었다면 꽃을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가 나의 손에 쥐어준 게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2021년 3월 9일 (화) 수련일지 

누구나 마음속에 어린아이가 있다고 느낀 날이다. 음악 감상을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환자들이 자기가 신청한 노래를 진지하게 감상했다. 그리고 다음 주에 무슨 노래를 들을지 아주 심각하게 고민하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가사가 적힌 활동지를 소중하게 들고나갔다. 자기의 손을 닿은 것은 모두 소중하다고 생각하는지, 10년 넘게 프로그램 활동지를 투명 파일에 보관해온 사람도 있었다.

미술치료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색연필로 빈칸을 자유롭게 칠한 후 그 종이를 번쩍 들어 올리며 수줍게 웃고, 다른 사람의 관심을 얻기 위해 색연필을 빼앗는 모습이 순수한 아이처럼 보였다. 겉모습만 봤을 때는 표정이 굳어 있어 혹시 기분이 좋지 않은지, 사람을 경계하는지 걱정했다. 하지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자마자 한껏 얼굴이 밝아지며 선물을 주려고 주변을 둘러보기 십상이었다. 나이가 많든 적든 누구나 마음속 어린아이 한 명쯤은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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