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젤 워싱턴과 아버지, 그리고 <펜스>
스포일러: 강함
남자는 자라서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는 모두 남자다. 그러나 ‘아버지’와 ‘남자’는 애초에 동음이 아니어서 의미도 정해진 운명도 모두 다르다. <펜스>의 주인공 트로이(덴젤 워싱턴)는 결혼 비슷한 모든 단어들과 어울리지 않는 한 남자였다. 그에게는 야구 선수라는 꿈이 있었고 배후에는 쫓아다니는 수백 여명의 여자들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그는 야구 포지션에 흑인을 위한 자리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좌절감 속에 트로이는 숱한 여자들 중 한 명과 결혼하여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단 한순간도 아버지였던 적 없었던 남자, 트로이. 그가 가장 잘 알고 있던 것은 단연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 기억에 따르면 아버지란 자녀들의 과업에 관해 궁리질 하는 사람이었다. 관심과 사랑으로 키우는 것은 어머니였고 각각의 아이들에게 알맞은 일거리를 시키는 것이 아버지였다. 말하자면 그는 두 마리의 통닭을 해치우고 남은 닭 날개를 열한 명의 아이들에게 나눠 먹이는 파렴치한이었으나, 트로이는 라이언과 코리를 기르면서 종종 자신의 아버지를 참고했다. 여덟 살 무렵 자신의 어머니가 아버지로부터 도망쳤다는 사실은 좀처럼 떠올리지 못했다.
트로이와 그의 현명한 아내 로즈(비올라 데이비스)의 사소한 입씨름은 18년 내내 멈추지 않았다. 아내의 이야기를 단 한 번도 가만히 들어줄 줄 모르고 언제나 ‘남 편’에 서던 트로이는 인생의 동반자라기보다 차라리 원수에 가까웠다. 펜스를 지어달라는 아내의 말에 ‘마땅히 훔쳐갈 것도 없는 이 좁은 마당에 펜스가 웬 말이냐!’라고 소리치는 자, 그게 바로 트로이였다. 그러나 그는 고분고분 목재를 들고 나와 톱질을 하는 자이기도 했다. 몰이해와 비소통으로 점철된 사이에도 세월의 힘은 대단한가 보았다. 그들 부부는 사실 남부럽지 않게 다정다감하고 유쾌했다.
브로드웨이의 무대 연극(2010)이자 덴젤 워싱턴 감독의 영화(2016)이기도 한 <펜스>는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 애증 하는 부부와 가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가족 드라마에는 언제나 앞뒤 꽉 막힌 고리타분한 가장이 있고, 이 작품에서는 그 역할을 트로이가 맡는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그를 미워할 수 없다. 꼴 보기 싫고 답답한 이 꼰대는 하나뿐인 나와 당신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한 집안의 가장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경제력이 밑바탕으로 깔려 있어야 했다. 야구 선수가 되고 싶었던 트로이는 자신의 꿈을 접고 쓰레기 트럭 수거원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은 채 20여 년을 살았다. 모든 이야기를 야구에 버릇처럼 빗대는 그는 그러나 포기한 꿈에 너무나 큰 미련을 갖고 있어, 미식축구에 빠진 아들 코리를 볼 때마다 꿈을 향해 달려가던 청년시절의 좌절을 자꾸만 떠올리게 되었다. 사실상 트로이의 관념은 2차 세계대전 이전 흑인이 괄시받던 세상 속에 고정되어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변한다는 로즈의 말은 그에게 좀처럼 새겨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자격지심에 사로잡힌 트로이는 백인으로만 이루어진 운전자 집단에 집착하고 결국 첫 번째 흑인 운전자가 되지만, 그럼에도 세상의 변화는 보지 못하고 앞으로 겪을 코리의 좌절감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렇게 그는 아들의 꿈을 꺾으려 하는 아버지가 된다. 부푼 꿈을 끌어안고 달려 나가도록 응원하는 지지자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돈이 되는 일을 권고하는 훈수꾼이 된다. 거기에 아들은 반발한다. 자신의 말을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고 설사 듣더라도 어린애 취급을 하는 저 어른이 너무나도 밉다. 코리는 아버지가 시킨 집안일도 구해준 일자리도 모두 팽개치고 필드로 나가버린다. 트로이는 엇나가려는 이 아들을 억압한다. 군대 선임이 후임을 대하듯 복종을 강요하고 명령으로 훈육한다. 대답 끝에 'sir'을 붙이도록 지시하고 눈을 맞추면 '뭘 쳐다보냐'고 비아냥댄다. 결국 트로이는 풋볼 코치를 찾아가 언지를 두고 코리는 자신에게 찾아온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친다. 부자간의 골은 점차 깊어지고 아버지에 대한 코리의 증오심은 날로 커진다.
트로이의 왕년은 언제나 너무나도 화려하지만, 매번 어딘가 미묘하게 다른 구석이 있다. 200마일을 걸어 도망쳤다는 무용담과 현직 야구선수보다 실력이 낫다는 허풍은 그를 더욱 미덥지 못한 인간으로 만든다. 이런 아버지 대부분은 부자간의 정이 있어야 할 자리에 책임과 의무만을 채운다. 배를 채워주고 옷을 마련해주고 집에서 재워주는 것으로 제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월급봉투를 아내에게 쥐어주는 것만으로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는 그들은 그렇게 돈 버는 기계를 자처한다. 트로이 역시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는 아들의 말에 ‘너를 사랑하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난 내 도리를 다 했다’고 말한다. 그에게 화목한 부부 생활이란 안중에도 없다. 아내란 그저 동업자에 불과하다.
로즈가 트로이에게 18년 동안 바라오던 모습은 그와 형제지간인 게이브에게 존재한다. 게이브는 일본과의 전쟁 도중 정신적 불구가 되어 늘 부족하고 모자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단 한순간도 다른 누군가의 기분을 헤아려주지 않는 트로이와 달리 게이브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기분을 먼저 생각하는 인물이다. 이 남자는 길을 가다 로즈의 이름과도 같은 장미꽃 한 송이를 발견하면 꺾어서 건네주는 법을 안다. 초라한 꽃 한 송이에 로즈는 너무나도 기뻐한다. 신혼 시절 로즈는 트로이라는 토양에 자신의 바람을 심어 두고 그것이 만발하기만을 기다렸지만, 토양이 너무 단단하고 돌 투성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로즈가 바라던 한 송이 장미와 같은 배려심은 안타깝게도 트로이의 외도와 함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다. 트로이가 자신의 불륜 사실을 털어놓은 것은 여자의 배가 막 부르기 시작할 임신 3개월 무렵이었다.
아버지로서 트로이는 오로지 알맞은 삶, 깨끗한 삶을 사는 데 전력을 다했었다. 교도소에 다니고 와인에 취해 길거리에서 노숙하던 삶은 진작에 청산했다. 그는 오로지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성실하게 일했으나,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는 언제까지나 남아있었고 삶은 느슨해질 겨를이 없었다. 돈 버는 기계를 자처하던 그는 후회하기 시작한다. 결국 트로이는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함으로써 '아버지' 아닌 '남자'로 돌아온다. 그는 가정이라는 압박과 문제로부터 도망쳐 앨버타라는 여자에게로 향한다. 그녀 곁에서 트로이는 마냥 행복을 느끼고 호탕하게 웃으며 심지어 꿈을 향해 달려 나가던 청년 무렵으로 돌아간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 여자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그는 가정을 버린 이기적인 남자가 되면서까지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기 위해 몰두한다.
가장으로서 주어야 할 것과 주지 말아야 할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온 그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맹목적인 헌신 앞에 결핍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도 남들로부터 받아야 할 것이 있었다. 속이 텅 비어버린 트로이에게는 이제 자기만의 시간과 자신만을 위한 공간, 그리고 자신을 위로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앨버타였다. 로즈에게 다른 누군가의 아빠가 되었음을 고백하는 순간의 그는 그녀가 원하던 것과도 같은 한 송이의 장미를 원하고 있었다. 여기서 장미의 꽃말은 사랑의 다른 이름인 '공감'이다.
로즈는 트로이에게 큰 배신감을 느꼈고, 코리는 잘했다는 말 한마디는커녕 단 한 번도 자신의 손을 들어준 적이 없었던 아버지를 원망했다. 그의 눈에 꿈을 막는 아버지는 유망한 아들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자격지심의 소유자로만 보였다.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앨버타가 죽자 트로이는 코리에게 막말을 퍼부었고 폭력을 행사했으며 마침내는 그를 집 밖으로 내쫓았다. 더 이상 아버지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었던 코리는 자진해서 해군에 들어가고 6년 후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집으로 돌아오지만 장례식에 가는 것은 거부한다. 로즈는 그런 코리를 가차 없이 매질한다.
로즈는 트로이를 끝내 용서할 수 없었지만, 다만 그를 가슴 시리도록 이해했다. 로즈라고 해서 흔들림 없는 결혼 생활을 해왔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도 모든 책임과 의무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던 순간이,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설렘을 느끼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 로즈는 트로이를 '굉장히 이기적인 듯하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결혼함으로써 꿈을 포기했고, 이해받지 못함으로써 아들로부터 외면받았고, 불륜을 저지름으로써 아내를 잃었으며, 앨버타를 죽음으로 떠나보내면서 자기 자신을 또다시 잃었다. 입술에 루주를 바르는 일보다 손에 묻은 밀가루가 이마에 옮겨 붙는 일이 더 많았던 로즈는 트로이를 가장 증오하면서도 가장 연민하는 사람이었다. 같은 크기의 흔들림 앞에 로즈는 트로이의 유일한 배우자이자 동반자였다.
코리는 라이언과 같이 나이를 먹으면서 서서히 아버지를 인정해나간다. 코리에게 트로이는 흑인으로서 맛보았던 좌절감을 안기고 싶지 않았던 같은 운명의 한 남자였으며, 시행착오를 줄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조언해준 든든한 인생 선배였다. 코리를 향한 억압조차 사실은 자립심을 길러주기 위한 그만의 방법이었다. 14살 무렵 자신의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도망쳐 나왔던 트로이는 자신의 길을 걸어감으로써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었고 자신의 아들도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에 완고한 아버지를 자처했다.
이 시대의 수많은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와 갈등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세대 간의 간극이 걷잡을 수 없이 벌어져 있는 우리나라는 특히 더 심각한 수준이다. 유교 사상 특유의 어른 공경으로 간신히 견뎌오고 있지만… 어떨 때 아버지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을 정도고 인내심은 폭발할 지경이다! 그럴 때 우리는 스스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한 평생을 그렇게만 살아온 아버지를 바꾸려 드는 것보다야 이게 훨씬 쉽다. 그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에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아버지였을까? 아버지에게도 꿈이 있지 않았을까?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들은 때로 간사하고 자기변명을 위해 말도 안 되는 말들을 한다. 그러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유를 하나 둘 찾아가다 보면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에도 납득할 만한 이유가 다 있다. 그러고나면 아들은 아버지를 더 이상 미워하지 못한다. 절대로 아버지처럼은 되지 않겠다던 코리가 아버지의 노래 'Blue'를 흥얼거리듯 어느새 당신은 아버지를 닮은 아들이 되어 있을 것이다.
자식을 억압하고 꿈을 짓밟는다고 해서 외도를 저질렀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만 이해받지 못했을 뿐이다. 이렇게 보면 도덕적 잣대가 무조건적으로 옳은 것도 아닌 듯하다. 아버지는 누구나 처음이고 처음은 누구나 서툴다. 아이가 생겼다고 해서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마냥 기뻐하는 아버지는 없다. 당장 둘이 먹고살기도 빠듯한 경제력에 셋이 먹고 살 날을 그들은 두려워하고 무서워한다.
누군가는 사람들을 배척하기 위해 펜스를 짓고 누군가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펜스를 짓는다. 로즈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펜스를 친 사람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아들 간의 마찰이 언젠가는 분열을 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어쩌면 남편의 외도조차도 짐작하고 있었다. 반면 트로이는 사람들을 몰아내기 위해 펜스를 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진정 아들을 사랑하지 않았을까. 다만 분명한 것은 트로이가 언제까지나 레이넬의 방을 '코리의 방'이라 불렀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마지막, 트럼펫 소리가 울리고 구름이 걷힌다. 햇살이 쏟아지는 눈부신 순간에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