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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남 May 14. 2017

전도연의 여자들 (3)

자신을 위하여 살아가다

◁전도연의 여자들 (2) 


스포일러: 약함



 2005년 [프라하의 연인] 이후 스크린을 통해서만 모습을 보이던 전도연은 TV 드라마 [굿와이프]를 통해 11년 만에 브라운관 복귀에 성공한다. 전도연, 유지태, 윤계상 등의 명배우들과 나나의 활약으로 화제가 되었던 [굿와이프]는 미국 드라마를 원작으로 탄탄하고 짜임새 있는 각색에 성공한 웰메이드 드라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비극은 이 드라마에서도 어김없이 그녀를 찾아오지만, 마지막화에서 전도연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것을 쟁취한다. 이제 사랑은 좀처럼 그녀를 흔들지 못한다.

의뢰인을 변호 중인 혜경

 혜경은 변호사 준비가 한창이던 학생 무렵, 연수원에 강의를 온 태준(유지태)과 사랑에 빠져 이제까지 꿈꿔오던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그대로 결혼하였다. 잘 나가는 '스타검사' 태준의 그늘에 가려진 채 혜경은 지난 15년 간을 평범한 주부로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수사 방식은 승승장구하던 태준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렸고, 혜경은 기댈 곳이 없어진 채 세상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꼴이 되었다. 당장 살아갈 길이 막막해진 그녀는 연수원 동기였던 중원(윤계상)에게 도움을 청하고 로펌의 신입 변호사로서 인생의 2막을 시작한다.


 [굿와이프]는 혜경이 로펌에 들어간 이후의 이야기들을 다룬다. 늦깎이 신입으로서 혜경은 숱한 고비를 맞닥뜨리지만, 점차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서 이겨나가는 법을 터득해나간다. [굿와이프]의 혜경은 이제까지 사랑의 열병에 시달리던 전도연의 여자들보다 성숙하다. 그녀는 허황된 로망을 좇기보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직업여성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데 몰두한다. 법의 모호성에 의해 흑백으로 가릴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혜경은 오로지 자기 스스로를 믿고 행동한다. 그러니까 그녀는, 홀로서기로 하여금 오로지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다.

인생의 2막, 홀로서기에 성공한 '전도연'




 문학 작품에서 사랑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의 형태를 그림에도 그것을 성취해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실패는 사랑 그 자체의 비가시성이나 모호함, 희박한 가능성의 정도 때문이라기보다 행동의 부재 탓이 크다. 우리는 <접속>의 그녀처럼 사랑을 묵묵하게 기다려주지 못하며, <하녀>의 그녀처럼 사랑 앞에 위험을 무릅쓰지도, <무뢰한>의 그녀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지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머릿속 수백만 번의 사랑의 시뮬레이션에도 불구하고 행동은 번번이 어긋나거나 만개하기도 전에 저물고 만다.


 그래서일까. 사랑 영화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역할은 단연 배우다. 수많은 연애 소설과 사랑 노래가 사랑의 시뮬레이션이라면, 영화와 드라마는 사랑의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이들 매체는 시청각을 통하여 행동하는 모습 자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행동의 주체가 바로 배우다. 그들은 내면의 부재로 행동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사랑 앞에 행동하는 법을 보여준다. 사랑은 용기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임을, 사랑은 표현하는 것임을 몸소 이야기해준다. 그런 면에서 전도연은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의 가장 효과적인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내 마음의 풍금> 속 홍연을 보노라면 말이다.


 한 영화를 서너 번, 특히나 감명이 깊었더라면 수십 차례에 걸쳐 다시 감상하는 편이다. 시간 낭비 아니냐는 말들이 많은데, 다시 보면 다른 게 보인다. 단지 그 이유 하나뿐이다. 전도연의 영화는 특히 더 그렇다. 두 번 보면 그녀의 연기에서 보지 못했던 감정선이 보이고 세 번 보면 전혀 다른 부분에서 공감하게 된다. 그렇게 필모그라피를 하나 둘 정주행 하다 보면 배우와 함께 자란다, 는 느낌에 사로잡히는 순간이 온다. 더군다나 해리포터 시리즈와 함께 자라왔던 세대이므로.


 아닌 게 아니라 전도연의 필모그라피에는 마치 한 사람의 일대기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 어느 영화에서는 사랑에 서툴던 한 소녀의 유년기가 보이고, 어느 영화에서는 사랑에 농익어 위험을 무릅쓰는 당돌함의 성년기가 보인다. 이후 사랑 자체의 무모함에 지쳐버린 이 여자는 진정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깨닫는다([굿와이프]에서 로펌 신입 변호사가 되기 전 15년 동안 타인에 의해 살아온 혜경의 모습은 이전까지의 필모그라피 속 그녀들과 상당 부분 비슷하다). 전도연이라는 배우는 바로 이 지점을 향해 계속해서 달려오고 있었다. 인생의 2막을 성공적으로 출발한 그녀는 어떤 모습을 하고서 다시 관객 앞에 나타날까. 이제 영사기 불빛 아래 변함없는 그 관객석에서 부푼 기대심을 안고 반길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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