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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남 May 18. 2017

<불한당>이 버리지 못한 것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박진감, 그 이후

스포일러: 약함



 리더의 부재로 몸살을 앓았던 최근 한국 영화에는 악인, 그중에서도 죄수가 세상의 모든 결정권을 부여잡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이러한 영화계의 동향은 시국에 대한 반발심 혹은 일종의 저항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의문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이들 영화에서 죄수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가, 이를 통하여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두 가지 궁금증을 충족한다면 영화는 이러한 시도에 기꺼이 박수를 받을 것이다.


 제목이 그렇듯 <불한당>은 악인의 권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영화다. 영화에서 감독은 감옥 내부로 하여금 동시대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영화에서 플래시백으로 펼쳐지는 부분들은 조현수(임시완)의 기억임과 동시에 어수선하고 떠들썩하던 한국의 지난날이다. 교도소의 안마당은 마치 정치적 이념에 따라 갈라진 영남과 호남처럼 철조망으로 이분화되어 대립구도를 보이고 있고, 이곳의 권력은 줄곧 대통령의 임기로 비유되기를 반복한다. 마치 오래된 질서이자 법칙인 양 경비교도대원들은 두 구획으로 나뉜 사회를 그저 방관하며, 양분화된 사회 속에서 소모적인 권력 쟁탈전은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감옥은 변성현 감독이 만들어낸 국내 정세(政勢)의 축소판이다. 관객은 이 영화에서 또 한 차례 대한민국을 경험하게 된다.

한재호, 그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관객이 과거 사회 시스템의 붕괴를 경험했듯, 영화는 플래시백 속에서 시스템의 붕괴를 경험한다. 질서를 바로잡고 규제해야 할 경비교도대원들은 그저 소란스러운 일들을 처리하는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보안계장은 '짝짝이 대회’, 담배 밀수업이나 옥내 휴대폰 반입 따위를 주도하기에 이른다. 악인들은 체제의 부패성을 이용하여 너무나도 쉽게 권력을 쟁취한다. 그러니까 악인이 힘을 얻는 것은 이미 부패할 대로 부패한 사회 때문이다. 감독은 이렇듯 자신이 만들어낸 사회의 축소판을 통하여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라는 매체의 날을 세우기 시작한다.


 무리 속에서 권력을 거머쥐는 데 성공한 자, 그가 바로 한재호(설경구)다. 그는 담배 밀수업의 주도권을 쥠으로써 교도소 안마당의 두 공간을 모두 장악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김성한(허준호)이 보안계장의 동네 선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재호는 자신의 권력을 빼앗긴다. 기반이 허술한 권력이란 이렇듯 허무하기만 하다.

조현수와 한재호, 의리와 의심의 사이에 놓인 관계

 영화는 사회가 부패하면 권력을 잡게 되는 것은 악인이라는 사실을 교도소에서의 사건들을 통해 시사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시스템의 붕괴를 한 번 더 보여주는 데에 그칠 뿐 정의를 이야기하는 데 할애되지도, 현실을 풍자하거나 비판하기 위하여 사용되지도, 능동적인 행동이나 생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도 않는다. 드러날 뿐 도려내 지거나 탈바꿈되지 못한 악의 단면은 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할 뿐이며, 보여주기는 결국 보여주기에 그치고 만다. 그렇다면 실생활에서 이미 지겹게 겪어왔던 대한민국을, 우리는 왜 이 영화를 통하여 또다시 상기시켜야만 하는가. 관객에게 아무것도 전해주지 않은 영화는 결국 극장을 나오는 순간 잊힐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시간을 넘는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박진감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수확은 가히 놀랍다. <불한당>의 서사는 관객의 예상을 번번이 피해가며, 플래시백을 한 번 거칠 때마다 한재호와 조현수의 관계는 의리와 의심 사이에서 거대한 진자운동을 반복한다. 믿음의 존재를 확신시키고 부정하기를 반복하면서 영화는 느슨해지는 틈이 없이 마지막까지 달려온다. 거기에 권력의 최후를 보여주기 이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열두 명의 사제들과 풍요로움을 즐기는 '최후의 만찬'을 그대로 재현하는 변성현 감독 특유의 유머는 무거운 분위기를 시기적절하게 환기한다. 오락성의 측면에서 보노라면 <불한당>의 수준은 가히 '넘사벽'이다.




 <불한당>은 교도소를 통해 동시대의 모습을 상징화하여 표현하고 있지만, 감독의 의도가 여기에서 발화하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 시대적 요구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지 못하고서 거머쥐지 않아도 될 책임을 거머쥔 느낌이다. 세상이 바라는 요소요소들을 갖추기에 급급하기보다 창작자 개인이 담고자 하는 바가 우선시 되는 한국 영화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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