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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남 Sep 13. 2017

현재와 마주한 <아이캔스피크>

스포일러: 약함



 연휴가 길어지면 극장가도 북새통을 이룬다. 그에 발맞춰 올 추석을 겨냥하는 수많은 영화들이 하나 둘 개봉을 맞는다. 추석 특선영화의 특징은 온 가족이 함께 보기 좋은 소재와 재미와 감동을 요소별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뻔하지만 유쾌하고 지겹지만 일말의 찡함을 선사하는, 무언가를 얻기보다 킬링타임용으로 소모되는, 바로 그것이 추석 특선영화의 묘미라면 묘미다. 그러나 이들 영화의 가장 강력한(?) 특징은 연휴가 끝남과 동시에 아무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추석 특선영화는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시의적절이라는 말이 있듯 타이밍이란 모든 일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겠지만, 시기를 놓치는 순간 생명력마저 잃고 마는 것들도 세상에는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위안부 소재의 영화다. 이 영화는 위안부 동원 피해자들이 '살아있는 동안'만 그 생명력을 지속한다. 2017년 현재 정부 등록기준 위안부 피해 생존자 수는 35명에 불과하며, 이들의 평균 연령은 90.5세를 넘어서고 있다. 이렇게 보면 추석 특선영화의 소재로 위안부 문제가 다루어진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1991년 위안부 공개 증언 이래 위안부 소재는 한국 영화계에서 마치 뜨거운 감자처럼 주야장천 다루어져 왔다. 해결이 쉽지 않은 빅이슈라는 의미에서도 그렇고,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이라는 의미에서도 그렇다. 역사적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자국민적 사명감은 근 30년 간 되풀이되고 소모되어 역으로 의미를 퇴색시키는 결과마저 낳았다. 문제를 직시하라는 의도와 달리 일부 관객은 위안부 이야기가 뻔하다며 외면했다. 그럼에도 위안부 영화는 끊임없이 쏟아졌다. 올초 <눈길>이 개봉했고 위안부 소재로 이례적인 흥행 기록을 보인 <귀향>의 후속작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이번 주 개봉을 맞는다.


<아이캔스피크>가 이들 영화와 가지는 차별점은 위안부 문제의 '현재'를 다룬다는 것이다. 위안부 영화의 표지를 장식하는 것은 언제나 위안부 소녀들이었지만, <아이캔스피크>의 경우 그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은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온 한 명의 노년기 여성이다. 김현석 감독이 주목하는 것은 위안부로 동원된 소녀가 어떤 대우를 받았느냐가 아니라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냐는 것이다. 주인공 옥분(나문희)은 당신이 선택할 수 없었던 일에 대하여 평생 부끄러움을 느끼며 살아야 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아님에도 그녀는 스스로를 치욕스럽게 여기며 감추는 삶을, 숨기는 삶을 살아왔다.


 감독의 차별화된 시각은 위안부 영화의 목적을 조금 더 명료하게 정립하는 데 한몫한다. 위안부 영화는 그간 일제의 잔혹함을 조명하는 데 너무 많은 씬을 할애해왔다. 모든 것이 기록에 근거한 사실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고증에 입각한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의 재현은 때때로 영화의 향방을 단순히 그들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데 그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잔혹했기 때문에 사과하라는 게 아니다. 그 잔혹함으로 하여금 평생토록 고통받고 살아온 자가 있기 때문에 사과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영화 <아이캔스피크>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요구하는 바를 정확히 표명해낸다. 흉터를 끌어안고 살아온 옥분의 삶의 보여주기를 통해.



 위안부와 관련한 2막을 시작하기에 앞서 영화는 특유의 재치를 시종일관 선보인다. 구수한 영어 발음을 선보이는 나문희 여사와 원칙주의자 공무원 이제훈의 케미에 더불어, SNL의 간판 배우 정연주와 표정만으로 웃음을 선사하는 염혜란, 거기에 애드립의 대가 박철민까지. 한국의 '절차사회'와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는 시각과 한 끼 저녁식사를 통해 인간애와 정을 구현해내는 영화는 요소요소를 모두 갖춘 추석 특선영화임에 분명해 보인다. 긴 연휴 중 하루를 이 영화에 할애한다한들 후회는 없을 듯하다.


 그러나 <아이캔스피크>은 여러모로 아쉬운 영화다. 이야기 전개를 위하여 캐릭터의 신념을 간단히 저버리거나 행동의 변화에 대한 설명을 웃음으로 무마하는 둥 영화는 여러 방면에서 성실하지 못하다. 2막으로 나아가기까지 관객은 영화가 애써 설명하지 않는 것들을 감안하고 수용해야만 한다. 하지만 작품성의 기준만으로 이 영화를 정의 내리고 판단할 수는 없다. 여러 의미에서 <아이캔스피크>는 '지금'을 놓치는 순간 아무도 찾지 않을 영화다. 다시 말해, 지금 봐야 하는 영화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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