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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휘수 Mar 12. 2021

청소

숫자와 사람

잘 청소된 공간은 나에게 활력을 준다. 어디에선가 본 이 문장은 천식에 걸린 뒤에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기도 크기에 따라 바뀌는 내 기분을 잘 묘사하는 문장이 되었다. 대학 시절에도 룸메이트들보다 깨끗했던 나는 이제는 깔끔남을 자처해도 될 지경이다.


그래서인지 스톡을 많이 준다는 말에 혹했는지 나는 두 번째 직장으로 가사 도우미 업체를 택했다. 회사는 가사도우미들과 청소를 원하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수수료를 챙겨서 수익을 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서버 개발자로서 입사했지만 매니저의 부재로 인해 잠시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숫자를 깊게 많이 봤다. 사람들을 숫자로 분석하는 시간이었다. 평점, 리텐션, 나이 때 같이 일차적인 변수에서 여러 가지 복합변수 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툴은 많았다. 난 짧은 기간 동안 가사도우미가 좀 더 플랫폼에 오래 머무르게 만들 수 있도록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도왔다.


청소 서비스를 2주마다 이용할 수 있는 복지제도가 있었다. 청소 도우미 몇 분이 다녀갔다. 2주마다 계속해서 도우미 분들이 오셨는데 몇 번 동안은 오시는 도우 미분들과 잘 맞지 않아서 다른 분을 보내 달라고 말씀드려야 했다. 오랜 시간 자취했던 내겐 오래간만에 만끽하는 게으름이었다. 다섯 번째 도우 미분께 정착했다. 그분은 어떤 60대 여성분으로 본인 말에 따르면 손자 용돈 벌이를 한다고 하셨다. 그 외에도 VR 사업을 한다고 하셨다. 그분이 한 이야기들이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한참 동안은 청소를 잘해주셨으나 결국 결별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퇴사하게 된 데다가 갈수록 부재 시엔 청소를 대충 하셨기 때문이다. 청소를 맡기고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눈에 보이는 수도꼭지만 반짝거리고 사방에 먼지가 남아있곤 했다. 이제 공짜도 아닌데 굳이 감시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실은, 평점 추이에 따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분은 총평점이 낮고, 특히 평점 추이가 하향 곡선을 그리는 분이었다. 숫자가 의미가 있다면 아마 나도 그분을 만났던 다른 사람들처럼 7~8 회차쯤에 실망하게 되어 있었다. 결국 낮아지는 평점은 우연이 아니었다. 내 평점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흘러갔다.


다시 직접 내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가사도우미 서비스 담당자가 되면서 높아진 내 기준은 전보다 더 까다로워졌다. 여기도 저기도 먼지가 보인다. 스스로에게 평점을 준다면 3.5점쯤 되겠다. 이미 책임 없는 즐거움을 알아버린 나는 전보다 청소가 어렵다. 그래, 이쯤 되면 다시 청소의 보람과 즐거움을 느낀 얘기가 나와야겠지만, 몇 개월이 지나고 지금도 청소가 힘들다. 결국 정기 청소 서비스를 다시 예약했다. 이번에 오실 분은 좀 더 좋은 분이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인공지능이 발전해서 청소를 나 대신해주는 그 날이 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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