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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휘수 Mar 24. 2021

테헤란로 10길 10

대한민국의 중심

삼성동이 괜찮아 보였다. 직장에서도 멀지 않고 너무 낯설거나 익숙하지 않았다. 잘 모르는 홍대나 종로 쪽에도 살아보고 싶었지만 2호선이 두려웠다. 익숙한 잠원동 부근에 사는 것은 따분해 보였다. 첫 집은 작은 원룸이었다. 1인실 기숙사만큼이나 공간이 적었다. 바닥에 뭘 둘 수가 없어서 저절로 깔끔해졌다. 집이 좁은 것은 별로였지만 덕분에 밖에 많이 있게 되어서 또 좋았다. 집 앞에는 비야 게레로라는 맛있는 타코 집이 있었는데 혀 타코를 팔았다. 혀 타코는 눈을 감고 먹으면 쫄깃하고 괜찮았다. 타코를 먹다 보면 집의 위치가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


기침을 심하게 했다. 눈을 뜨니 집에 안개가 낀 것 같고 코가 막혀 어떤 상황인지 알고자 창문을 열었다. 찬 공기가 들어오니 상쾌한 밤공기와 함께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래층 사람이 화장실에서 연초를 피웠던 거다. 집주인과도 이야기하고 직접 항의도 해보았다. 그 사람과 계약을 할 때는 흡연 금지 특약을 넣지 않아 쫓아낼 수 없다는 말을 했다. 한 달 반을 시달린 끝에 이사를 했다. 초반에 혹시 몰라서 단기계약을 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옮긴 장소가 테헤란로 10길 10이었다.


이번에는 좀 더 신중했다. 건물을 들어갈 때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냄새를 맡았다. 아랫집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건 아닌지. 건물 전체가 흡연 특약이 걸려 있으면 최고고 아니더라도 중재를 해줄 관리실이 있으면 좋을 듯했다. 기숙사 공간이 넓어서 퀸침대가 들어갈 수 있는 방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화장실이 낡지만 추레하지 않으면 좋겠다. 낮이나 밤이나 소음이 적은 것이 좋겠다. 그리고 약속이 있을 때 사람을 보기 편한 강남역 부근이어야 했다.


분리형 원룸이었다. 꽤 넓어 보이던 방은 이것저것 사서 채워 넣으니까 생각보다 좁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구를 좋은 것으로 샀지만 곧 더 좋은 것으로 샀어야 했나 하고 후회했다. 방의 한 뼘 땅이 내가 가진 모든 책 보다 비싸다고 생각하면 답답하다가도 방바닥에 들어 누으면 이렇게 넓을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여유 있지는 않지만 모자라지 않은 크기였다.


처음에 들어왔을 때 만나던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집이 넓어지기 전보다 집에서 만나는 일이 많아졌다. 내가 바래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관계가 일상이 되고 점차 우리는 갈등을 해결하는데 반복해서 실패했다. 딱히 집에 오래 머물러서 그런 것은 아닐 텐데 집 핑계를 대었다.


코로나와 함께 재택이 시작되었다. 재택을 할 때의 집은 꽤 다른 공간이었다. 평소에 준비가 되지 않은 나와 집의 관계는 곧 한계를 드러냈다. 쉬기엔 충분했던 집은 업무를 보기엔 너무 좁고, 미뤄왔던 방청소는 미룰 수 없는 무엇이 되었다. 일은 휴식과 섞여버리고 일도 휴식도 제대로 해내기가 힘들었다.


일과 휴식이 분리되는 곳이면 좋겠다. 거실이 누구를 초대해서 식사를 할 만큼 넓었으면 좋겠다. 주방이 요리를 편하게 해 먹을 만큼 넓었으면 좋겠다. 주변이 주택가여서 낮에도 밤에도 번잡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라는 것들이 생겼다. 또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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