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암스트롱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둥그스름한 얼굴. 사람 좋게 생긴 인상, 익살스러운 표정. 무엇보다도 걸쭉한 목소리와 스캣. 저 유명한 ‘What a Wonderful World’.
역설적이지만 너무 유명하다는 면 때문에 루이 암스트롱 Louis Armstrong은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빠져 있었다. 그가 재즈의 획을 그었다는 둥, 트럼펫의 위치를 격상시켰다는 둥 하는 소리를 듣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흙냄새 나는 그의 트럼펫보다는 하드밥의 콩 볶는 듯한 고소함이 좋았고 쿨재즈의 나른함을 즐겼다.(후기이다 보니 음질이 더 좋았다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아이들과 재즈 수업을 하지 않았다면 플레이리스트의 업데이트에서 루이 암스트롱이 들어올 자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젊었을 때보다 살은 많이 빠졌지만 목소리와 표정은 그대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재즈 수업을 열었다. 재즈를 공부하며 음악을 통해 새로운 것을 접하는 즐거움을 전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아이들이 잘 접하지 못하는 미국사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줬다. 흑인 인권 운동도 조금 다룰 예정이다. 이것저것 분주하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기분은 좋다.
그 첫 번째 시간, 재즈사에서 루이 암스트롱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했을 때 재즈를 가르치는(가르친다는 말이 몹시 민망하긴 하지만) 입장에서 그를 빼먹을 수는 없는 일인데, 막상 그의 음악을 들려주기는 머뭇거려졌다. 평소 루이 암스트롱을 듣지 않는 오만가지 이유와 그로 인한 노파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음질이 안 좋으면 어쩌지, 아이들이 싫어하면 어쩌지, 처음 듣는 재즈인데 그로 인해 아이들이 재즈랑 거리가 더 멀어지면 어쩌지, 이 수업은 망하면 안 되는데. 온갖 걱정을 하면서 재즈를 틀었는데, 맙소사, 생각보다 괜찮다.(노파심은 교사의 대표적 직업병이다.) 덕분에 나도 집중해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여느 때와 달리 트럼펫을 쭉쭉 찢는 듯한 투박한 음색이 듣기 좋았다. 퍽퍽한 그의 저음도, 원곡을 뒤흔드는 자유로운 리듬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환상의 콤비, 엘라와 루이스. 아이들도 좋아했다.
아이들에게 들려줬던 노래 중 하나인 'Cheek to Cheek'은 재즈를 본격적으로 듣기 전부터 즐겨 들었던 노래이다. 피아노로 시작되는 가벼운 전주나 엘라 피츠제럴드 Ella Fitzgerald의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좋았기 때문이지 루이 암스트롱의 나른한 저음이 내 취향이었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수업에서 듣는 노래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엘라의 목소리를 사랑스럽게 보듬는 트럼펫 소리도 들렸다.
지금까지 수백 번은 들었을 노래가 다르게 들리는 이유는 두 가지 정도라 생각하는데, 하나는 책을 읽다가 루이 암스트롱의 위대함에 나도 모르게 젖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훌륭하다는 얘기를 계속 반복해서 들으면 천성이 귀가 얇은 나로서는 그것을 버텨낼 재간이 없다. 그의 음악사적 업적을 읽은 직후에 듣게 된 그의 목소리, 그의 입술에서 터져 나오는 트럼펫 소리가 달리 들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두 번째는 여럿이서 재즈를 함께 들은 덕이다. 재즈 수업을 설계하고 못내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이제 재즈를 혼자서 듣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재즈라는 것이 대중성과는 담을 쌓은 지 오래인지라 함께 듣는 것은 엄두도 못 내는 일이었기에 수업이라는 것을 핑계 삼아 재즈를 '함께' 듣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느껴보고 싶었다. 그 첫 번째 성과로 루이 암스트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얻었다.
1920~30년대 빅밴드 연주를 들으면 톰과 제리가 떠오른다. 나만 그런 건가...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St. Louis Blues’와 같은 그의 본격적인 연주는 아직 접근이 어렵다. 고막을 빵빵 때리는 트럼펫 소리는 아직까지는 시원하게만은 들리지 않는다. 당시의 투박한 연주를 견디고 듣지 않아도 될 만큼 좋은 음반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이라는 게 세월이 지나면 변하고, 환경이 바뀌면 또 변한다. 또 모르지 않나. 언젠가 머리가 하얗게 센 내가 루이의 트럼펫에 발을 까딱거리면서 커피를 내리고 있을지. 아, 커피를 내릴 때 파란 앞치마를 하고 있으면 더 멋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