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은 힘이 세다

캐논볼 애덜리 Cannonball Adderley

by 이락 이강휘

처음 ‘캐논볼 애덜리Cannonball Adderley’라는 뮤지션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는 ‘캐논볼’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포탄’이라니, 이 정도로 박력 있는 이름이라면 분명 험상궂게 생겼을 거라는 편견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앨범 재킷 사진은 얼핏 보면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흉측한 모습으로 ‘Know What I Mean?’이라고 묻는다. 아뇨, 전혀 모르겠습니다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하지만 사진을 자세히 보면 뒤집힌 하체는 조각상이고, 색소폰 리드로 관자놀이를 긁적이고 있는 아저씨의 인상은 박력 있는 이름과는 달리 순하기 이를 데 없다. 사실 ‘캐논볼’이라는 이름은 외모와는 전혀 상관없고, 그저 고등학교 때 너무 많이 먹어 그가 지나간 자리는 포탄이 떨어진 것 같다고 친구들이 붙여준 무지막지한 별명이다. 뮤지션으로서의 그가 캐논볼이라는 별명을 이름으로 쓴 건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비밥이라도 씹어 먹어버리는 실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일종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폭발적인 속주와 화려한 스윙을 보여주는 연주는 ‘포스트 찰리 파커’라는 평(캐논볼의 유래도 찰리 파커Charlie Parker의 ‘버드Bird’만큼 별 볼일 없다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을 들을 정도인데, 이 정도 실력은 되어 줘야 “이제부터 나를 ‘포탄’이라고 불러줘.”라고 할 때 ‘이 정도라면 과연 그렇게 불러도 될 만하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유래야 어쨌든 ‘캐논볼’이라 불릴 수 있다는 것은 연주의 파괴력을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은 거라고 봐야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에도 캐논볼 애덜리의 팬이 많다. 그래도 이 재즈판에 실력파 뮤지션이 한둘도 아니고 유독 캐논볼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따로 있을 것이다. 국어교과서에는 한국 문학의 특질을 ‘한’과 ‘신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학창시절 본 적 있으시죠?) '신명'. 캐논볼 애덜리가 한국 재즈 팬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한국인의 정서를 관통하는 그의 신명 때문 아닐까. <Know What I Mean?>의 수록곡 ‘Waltz for Debby’는 본래 빌 에반스Bill Evans조카를 위해 작곡한 곡이며 동명의 앨범에도 수록된 그의 대표곡이다. 원곡은 오르골로 연주해도 어울릴 만큼 잔잔한 3박자 왈츠곡이지만 캐논볼 애덜리의 연주로 완전히 신명 나는 곡이 되어버린다. 빌 에반스 특유의 차분한 스윙으로 풀어내는 테마를 캐논볼이 색소폰으로 반복한 후 그 테마를 기반으로 한, 그러나 에반스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프레이즈를 ‘좌라라락’하고 펼쳐놓는다. 그렇게 시작된 신명이 한창 고조되는 고음 부분에서는 알토 색소폰 특유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연속해서 네 번 정도 나는데 나는 이 부분을 너무 좋아해서 그 부분이 나오면 마치 내가 색소폰을 연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고개를 뒤로 딱딱 꺾으면서 듣게 된다. 놀라운 건 빌 에반스도 캐논볼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원곡에서보다 훨씬 더 신나게 스윙한다는 것이다.

캐논볼과 함께 하는 빌 에반스는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는 천성이 워낙 무뚝뚝하고 유머라고는 블랙코미디밖에 할 줄 모르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라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을 좋아한다.(물론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여야 한다. 지나치면 버겁다.) 사람은 자신과 반대인 사람에게 끌린다는데 그건 학생들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여서 밝은 에너지를 지닌 학생들은 보면 ‘저 놈은 뭘 해도 하겠다.’하면서 흐뭇해한다. 예전에 담임을 맡은 아이 중에 선영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뭔가 어수선하고 정신없었지만 밝은 에너지로 가득한 녀석이어서 나도, 아이들도 선영이를 참 좋아했다. 학교에서는 나한테 장난을 거는 용감한(?) 아이들이 잘 없는데(아이들이 대체로 나를 어려워하는 편이다.), 선영이는 유독 나한테 장난도 많이 걸었다. 선영이가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면 나는 윽박지르고 그러면 선영이는 그걸 무시하고 바로 다른 화제로 돌린다. 그게 재미가 있어서 대꾸를 해주는데, 다른 아이들은 그 장면을 보면서 많이 웃었다. 그런 모습을 자주 보여주니 수업이 좀 더 밝아졌고 자연스럽게 수업 분위기도 좋아지고 성적도 꽤 좋아졌다. 한 명의 에너지가 교사도, 학급도 바꾸는 것이다.


캐논볼 애덜리도 캄포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을까. ‘Toy’는 신명이 한껏 오른 빌 에반스의 피아노 연주가 일품인 곡인데 ‘Waltz for Debby’에서보다 더 신나 한다.(하지만 기품을 잃지는 않는다. 이 정도는 되어야 재즈계의 쇼팽이라 불릴 수 있는 거다.) 이 곡에서 애덜리는 마치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자유롭게 리듬을 다룬다. 장난스럽게 삽입된 프레이즈도 마냥 듣기 좋다. 베이스의 ‘둥둥둥’하는 소리에 뒤따른 드럼의 재빠른 두들김으로 시작되는 부분은 ‘이 곡 엄청 신나니까 즐길 준비 하시죠.’라고 하는 것 같아서 들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빌 에반스를 포함한 쿼텟 전체가 애덜리의 영향을 받아 신명으로 들떠 있는 느낌이다. 음악이 갑자기 딱 끊기는 것으로 급하게 마무리되는데 그래서인지 신명의 여운이 더 강하게 남아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캐논볼 애덜리의 대표 음반으로 <Somethin' Else>를 꼽지만 아무리 들어봐도 이 앨범은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취향이다.(실제로 블루노트 레이블에서 마일스의 앨범으로 기획했었지만 마일스가 블루노트 소속이 아닌 관계로 블루노트 소속이었던 캐논볼의 세션으로 참여하는 형식으로 발매되었다.) 애덜리와 다소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아트 블레이키Art Blakey 역시 재즈계의 대표 신명꾼(!)인데, 이 둘을 모아놓고 어떻게 이런 잔잔한 앨범을 만들어냈는지 모르겠다. 이 음반에서는 가장 돋보이는 건 단연 마일스 데이비스의 트럼펫인데, 곡 속에서 꿈틀거리는 애덜리의 신명이 역설적으로 마일스의 연주를 충실히 돕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음반을 들으면 왜 그가 애덜리를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 아무튼 발라드를 연주해도 신명 잔치를 벌일 것 같은 멤버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기 스타일을 밀고 가는 마일스도 참 어지간히 대단한 사람이다.

포스 좔좔 3인방(마일스 데이비스, 캐논볼 에덜리, 존 콜트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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