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스 데이비스 Miles Davis를 듣다 보면 여러 피아니스트를 만나게 된다. 과장을 좀 보태서 ‘엄청 유명한 뮤지션이니까 꼭 들어보세요.’라는 평을 듣는 피아니스트는 일단 그의 캄포에서 연주한 경험이 있다고 보면 된다. 마일스 데이비스 산하의 피아니스트 계보를 처음으로 주욱 당기면 가장 처음 레드 갈란드 Red Garland를 만나게 된다. 빌 에번스나 허비 행콕만큼의 이름값은 아니지만 엄연히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 ‘1대’ 피아니스트이다.
좋아하는 앨범 <Groovy>, 재킷 디자인도 까리하다.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을 탈퇴한 후 그는 트리오나 쿼텟을 결성하여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 시절 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특히 ‘On Green Dolphin Street’의 강렬하고 리드미컬한 연주는 마일스 데이비스 버전에서 들어볼 수 있는 윈튼 켈리 Wynton Kelly의 잔잔하고 부드러운 연주와는 사뭇 다른 매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비교해서 듣는 재미가 있다.
그의 여러 앨범 중 <Groovy>는 특유의 리드미컬하면서도 빠르게 이어가는 즉흥 연주를 들어볼 수 있기 때문에 가끔씩 찾아 듣는 음반이다. ‘Will You Still Be Mine’에서 들려주는 속사포 같은 연주는 오스카 피터슨 Oscar Peterson인가 싶을 만큼 빠르고 흥겹다. ‘Gone Again’와 같이 강렬한 타건으로 연주하는 발라드도 색다른 느낌이다. 부드러우면서도 경쾌한 피아노가 마음을 들뜨게 하는 ‘What Can I Say Dear’은 내가 재즈를 소개할 일이 있으면 권하는 곡이다. 시작 부분에서 들을 수 있는 부드러운 타건으로 마음을 푹 놓고 들을 수 있다. 워낙 밝은 곡이다 보니 꽤 길게 지속되는 폴 체임버스 Paul Chambers의 운궁 솔로도 그리 무겁게 들리지는 않는다. 착착 하는 아트 테일러 Art Taylor의 브러시 연주도 듣기 편하다.
‘What Can I Say Dear’을 들으면 첫 직장 생활을 했던 밀양이 떠오른다. 밀양이라는 도시가 절로 떠오르는 연주 스타일이라는 말은 아니고, 복싱선수라는 레드 갈란드의 독특한 이력과 연주 실력, 밀양에서 만난 한 친구의 이미지가 겹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밀양은 대구만큼 더운 곳이다. 이름에 ‘볕 양(陽)’이 들어가지 않나. 정말 무시무시하게 따뜻했다. 그곳에서 깊게 사귄 동료 교사가 하나 있는데 밀양이 따뜻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것이 바로 그였다. 이번엔 날씨 얘기는 아니고, 정식 출근 전 처음 학교를 방문했을 때 이미 4년 차였던 그는 나에게 ‘식사하셨어요?’라고 묻고는 짜장면을 시켜줬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도 그날 함께 먹은 짜장면은 참 맛있었다.
맛있는 사과가 난다는 건 그만큼 덥다는 얘기
그 친구와 나는 여러모로 다르다. 나는 운동신경의 존재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품고 있는 몸뚱이의 소유자다. 그래서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마냥 부럽다. 그 친구는 어릴 때 아버지의 뱃일을 도와(통영 출신이다.) 힘도 좋고 운동도 잘한다. 나는 지금까지 비전공자와 전공자를 통 틀어서 그 친구보다 운동 잘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레드 갈란드를 들을 때 그 친구가 생각나는 이유는 강인한 인상 속에 숨겨진 감수성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What Can I Sat Dear’의 야리야리한 전주를 들으면 그가 전직 복싱선수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게 된다. 프로복서 정도의 운동 실력이라면 음악 정도는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야 되지 않나 싶은데 불공평하게도 그의 연주는 여느 피아니스트 못지않은 감수성을 보여준다. ‘Hey Now’의 경쾌한 피아노는 심지어 발랄하기까지 하다. 운동 신경이 좋아서 그런지 아트 테이텀 Art Tatum을 떠올리게 하는 엄청난 속도의 타건을 보여주는데 그러면서도 섬세하기도 이를 데 없고 멤버 간의 인터플레이도 아주 부드럽다.
왼손으로 일정한 화성을 넣으면서도 오른손은 엄청난 속도로 움직인다. 신통방통.
이 친구도 그렇다. 잘못해서 그에게 불려 온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차렷 자세를 취한다. 그다지 무섭게 말하지 않아도 그의 앞에 선 아이들은 결코 그 자세를 풀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면 차렷이 부동자세임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도 수업 때는 조심스레 분자모형을 들고 다니는 천생 ‘화학’ 선생님(체육교사가 아니다.)이다. 잘못을 지적할 때 외에는 아이들한테도 참 따뜻하고 섬세하다. 학창 시절 문예반 부장의 실력을 발휘하여 아이들에게 편지도 곧잘 써준다. 난 지금껏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던 행동이다. 레드 갈란드의 따뜻한 연주를 듣노라면 섬세한 필치로 학생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그 친구의 굵은 팔뚝이 떠오른다. 요즘은 캘리그래피를 배우는 모양인데 찍어 보내온 작품을 보면서 그 다운 감수성이다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이 자식이 이런 것까지 잘하면 반칙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에게는 나에게는 없는 면이 많았고 그것들은 대개 좋은 부분이었다. 일찍 결혼해 아이가 둘이 있었는데 아이들한테도 참 좋은 아빠였다. 총각인 데다 애인도 없었던 나는 그게 참 좋아 보였다. 그저 ‘열심히 살아야지’하는 마음이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심으로 바뀐 건 그에게 받은 자극에서 비롯된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처음 왔을 때 사준 짜장면부터 지금까지 참 감사할 게 많은 친구다.
내가 딸을 낳았을 때 즈음해서 이 친구의 막내아들이 태어났다. 그래서 우린 서로 ‘사돈’이라고 부른다. 여러모로 사돈으로 그 만한 사람은 없지 싶다. 하지만 그의 아들을 사위로 두는 건? 말은 '우리 사위 잘 크고 있나?' 해도 그렇게 쉽게 딸을 내줄 수야 있나. 좀 지켜보고 생각해보기로 하자. 에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