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깨 보는 행위가 주는 소소한 기쁨
어느 날 문득 나의 하루가 너무도 단조롭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불혹이라 불리는 마흔의 나이가 된 지도 3년 차, 이대로 나이 들어감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렇다고 무언가 혁신적으로 바꾸기엔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에 한 가지씩 , 가볍고 사소한 것들을 변화시켜 보기로 마음을 먹고 일상을 살아 나가고 있는 중이다. 나의 이 사소하고 별거 아닌 개인 프로젝트에 이름을 붙여 보았다. 일명 '해보자 프로젝트'
아침에 눈을 떠 내가 고집스럽게 유지하고 있는 오래된 습관들을 의식해 보는 것으로 타깃 설정을 시작해 본다. 언제, 무슨 연유로 그 일들을 피하고 싫어하게 됐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내 몸과 의식의 습관을 알아차리고 생각해 본다. 예를 들어 아침에 과일을 먹지 않고 피하려 했던 이유를 생각해 보니 눈을 뜨자마자 커피를 마셔야 했기 때문이었다. 커피와 과일을 동시에 먹으면 속이 쓰리고 치아가 아린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이 싫어 가능하면 빈속에 커피만 주입해 정신을 차리는 패턴으로 20년을 살아왔다. 조금 더 건강한 아침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눈을 뜨자마자 커피를 마시는 게 좋을까? 과일을 먹는 게 좋을까?' 나는 주저 없이 커피를 포기해보기로 결정했다. 20년간 아침 첫 모금은 무조건 커피여야 했던 나의 습관을 과감히 버리고 몇 달간 물과 과일로 아침 식사를 대체해 보니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음.. 일단 커피 주입 시간이 정오로 밀리니 하루 커피 양도 줄고, 잠도 대체적으로 잘자는 것도 같고..' 이처럼 경험해 본 결과가 나쁘지 않다면 최대한 유연하게 변화한 일상을 유지해보기로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유연하게'이다. 그래야 다른 일상의 변화도 편하게 시도해볼 수 있다.
여름이 다가오며 '해보자 프로젝트'의 해봐야 하는 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올여름엔 원피스 수영복을 입는 것이 첫 번째 목표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 자신 없어진 몸매를 감추기 위해 반바지와 래시가드를 입고 큰 챙모자를 쓰고 그늘 아래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수영장에서의 내 모습이었다. 우선 원피스 수영복을 온라인으로 구매하고 나니 마음 가짐부터 달라졌다.
'저 수영복이 쑥~ 하고 내 몸에 들어가야 마음이 덜 상처받지 않겠어?'
수영복을 입기 위해 그날부터 나는 틈틈이 팔뚝 운동과 스트레칭을 해가며 원피스 수영복이 내 몸에 안착되는 상상을 해 보았다. 그리고 지난 주말, 그토록 소원하던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또 하나의 해보자 프로젝트를 시도하게 되었다. 다이빙해보기!
우리가 방문한 야외수영장은 다이빙대가 설치되어있었다. 높이가 높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이 가능했지만 내가 저 다이빙대에 올라서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 생각하며 지내왔다. 그러나 이번 나의 도전은 저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성인 몇몇이 다이빙대에서 멋진 폼으로 뛰어내리거나 엉성하게 뛰어내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저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어?' 이미 나의 머릿속엔 포물선을 그리며 한 마리 인어가 되어 바다로 뛰어드는 나의 모습으로 가득하다. 자신감 착장 했으면 바로 시도한다! 호기롭게 머리를 질끈 묵고 옆에 있는 큰아이에게 나의 도전을 알렸다.
"아들, 엄마 저기 보이는 다이빙대에서 다이빙하고 올 거야. 기대해!"
"엄마가?" "응, 엄마는 하루에 한 가지씩 안 해본 짓 하고 살기로 마음먹은 사람이야"
씩씩하게 걸어 올라 다이빙대 끝에 서 보았다. 멀리서 보았을 땐 시시하기 그지없던 다이빙대가 생각보다 높고 흔들렸다. 발아래 물의 깊이도 생각보다 아득하다. 순간 몸이 떨리고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뒤에 대기하고 있는 어린이들이 모두 나를 보고 있었다. 후퇴하기엔 늦었다. 코를 두 손가락으로 꽉 막고 눈을 질끈 감고 뛰어내렸다. (포물선 그리며 뛰어내리기는 애초에 불가한 일이었다. 그건 상상에서나 가능한 동작이다.)
풍덩! 몸이 수면 아래로 끌려 내려가더니 두둥실 떠오른다. 개헤엄을 쳐 물 밖으로 기어 나오니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리고 웃음이 단전 밑에서부터 올라왔다. "으하하하 이게 뭐야"
나의 엉성한 다이빙 포즈를 큰아이가 영상으로 찍어 보여줬다. 키득거리며 엄마 되게 웃기게 뛰어내렸다며 평점을 매겨 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드레날린 과다 분비로 정신이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하루에 두 가지의 틀을 깨고 나니 알 수 없는 해방감 마저 들었다. 나의 도전이 헛되지 않았는지 다이빙을 절대 하지 않겠다던 두 아들 녀석들이 본인들도 해보겠다며 다이빙대 위에 선다. 그리고 풍덩!
"으하하하" "엄마 이거 대박 재밌어" 아까 나와 같은 표정과 흥분상태로 수차례 다이빙대에서 몸을 던진다.
"거봐, 해보니깐 별거 아니지? 재미있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지쳐 잠든 아이들을 보며 다시 한번 나의 이 별거 아닌 시도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동안 내가 고집해 오던 많은 행동과 생각들이 어쩌면 나를 더 속박하고 수동적인 인간으로 만들고 있던 건 아닐지. 아이들에게 다양한 시각과 도전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싶은 마음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되어 준다. 엄마가 다 옳은 건 아니라고, 엄마도 안 해본 것들이 아직 많아서 이제야 조금씩 시도해 보고 알아가는 중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일은 어떤 틀을 깨고 나아가 볼까? 매일의 작고 소소한 도전이 나를 즐겁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