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없어?! 완전 럭키비키잖아!
제주도에서 독채 숙소를 운영한 지 3년 차에 접어든다. 오픈 시기엔 코로나의 영향으로 홍보도 하지 않은 숙소가 그럭저럭 운영이 되어주었다. 작년 겨울 무렵부터 예약상황이 주춤해지더니 24년에 들어서부터 한 달을 잘 버텨 내는 게 그달의 과제가 되고 있다. 말로만 듣던 자영업자의 고충이 뼈를 때리고 심장을 쫄게 한다.
예약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 마음을 졸이며 새벽에도 고객의 문의를 놓치는 게 아닌지 놀라 잠에서 깨는 날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예약 상황에 일희일비하던 나는 조울증이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로 감정기복을 주체하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일을 하는 것 자체가 괴롭기 시작했다. 1인 사업장이다 보니 홍보, 예약관리, 회계, 청소등 운영에 필요한 모든 일을 혼자 결정하고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큰 압박으로 느껴졌다. 자연스레 예약이 안 되는 이유 또한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sns 속 크고 멋진 숙소들을 볼 때면 작고 소박한 우리 숙소가 초라하게 느껴졌는데 공간과 내가 일체가 되어 나 스스로 후지고 뒤처지는 사람 같이 느껴졌다. 자신감과 자존감은 지하 어딘가 밑바닥 아래로 끝도 없이 떨어져 내려갔다.
그럼에도 돈을 들여 홍보업체와 체험단을 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처음 공간을 오픈할 때 기준으로 삼은 인위적이지 않고, 요란스럽지 않은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초심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조금 더 예약을 받기 위해서라면 기준인원도 늘렸어야 하지만 설계 당시부터 최대 투숙인원이 입실했을 시 동선과 편의까지 고려해 준비한 공간이기에 장사가 안된다고 기준을 무너 트리고 싶지 않았다. 이 공간에서 어떤 행위를 했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여운이 깊게 남을지 수많은 고민을 했기에 실제 방문을 해 경험을 한 분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그럼에도 돈이 걸린 일에 일관성이 무슨 소용인가? 나는 장사를 하는 것이지 예술을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같은 불일치성을 이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sns에서 '원영적 사고'라는 단어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초긍정적 사고를 하는 요즘 mz친구들의 방식이 밈이된 용어이다. 아이브라는 걸그룹 멤버인 장원영이 자신의 영어 이름 ‘비키’를 이용해 자주 사용하던 표현으로 ‘럭키비키(운이 좋은 원영이)’라고 말하는 것이 유행을 한 것이다.
원영적 사고의 예를 들어 보면 대략 이러하다.
비가 일주일 내내 줄기차게 내리는 경우
"아 무슨 비가 이렇게 계속 내려!!" > 일반인들의 생각
"아니야~ 비가 안 내렸으면 미세먼지로 공기가 탁했을 거고, 지저분한 거리도 비로 인해 깨끗해지니 완전 럭키비키잖아!" > 원영적 사고
더운 날 들고 있던 물병에 물이 반밖에 안 남았을 경우
"물이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일반인들의 생각
"이 한 병을 다 가지고 있었다면 무겁기만 하고 다 마시지 못했을 텐데 적당히 반만 남아있으니 딱 내가 먹기 좋은 양과 무게잖아? 이게 완전 럭키비키 잖아!" > 원영적 사고
'그래! 바로 이거야!
저 아래 떨어져 있는 나의 자존감을 끄집어 올릴 초긍정적 사고. 원영적 사고를 해보는 거야!'
습관처럼 입 밖으로 내뱉던 부정탄 말들을 이제는 멈출 때였다. 어린 친구 (장원영 양)가 생각하는 게 참으로 밝고 긍정적이어서 배울 점이 많게 느껴졌다.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개인 사업을 하면서 번아웃의 빈도수가 높았던 이유도 자극을 받고 보고 배울 동료가 없어서였다. 나는 원영 양을 새로운 mz 신입사원이라 생각하고 그녀를 리버스멘토링으로 삼아 보기로 상상해 보았다.
"원영 양~ 이번주 예약 자가 하나도 없어요!! 어떻게 7월에 이렇게 손님이 없을 수 있는 거죠? 아무리 제주도가 3주째 장마라지만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우리는 이제 망한 거 같아요. 그냥 팔아치우고 각자 다른 업체에 취업이라도 합시다"
"사장님~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손님이 없는 날 그동안 못한 청소를 더 할 수 있는걸요? 우비 입고 청소솔 들고나가 그동안 해치우지 못한 이끼 제거를 하도록 해봐요! 물값도 아끼고 시원하니 일석 이조 아닌가요?
그리고 이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사장님이 그렇게 쓰고 싶다던 브런치 글을 쓸 수 있어요~ 누가 알아요 언젠가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에서 수상하실지도 모르잖아요? 일도 안 하고 글을 쓸 시간을 합법적으로 사용하는데 이건 너무 럭키비키잖아요!"
그리하여 나는 오늘 하루 비어 있는 숙소를 구석구석 청소하고 음악을 틀어 놓고 이렇게 유유자적 글을 쓰며 놀고 있다. 일이라 생각 안 하고 내가 사랑하는 공간에서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해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있다. 사고 싶은 거 조금 줄이고 , 먹고 싶은 거 조금 덜먹고 7월을 보내면 되는 것을 왜 스스로 땅밑으로 꺼지려 했던 것일까? 분명 내가 느끼는 이 기분 좋은 감정을 알아주는 이들이 우연하게 찾아와 줄거라 믿어보기로 했다.
이번주 단 한 팀의 예약이 없어도, 오늘 하루가 럭키비키 같은 날이었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