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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연 Jul 23. 2024

감정의 밑바닥을 찍고 올라와

오랜만에 여름다운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던 주말, 아이를 데리고 야외 수영장에 다녀왔다. 우리 집 꼬꼬마와 친구의 아들이 물놀이에 심취한 사이, 나에게 바다 다이빙의 재미를 알게 해주고 싶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친구는 이 순간을 놓칠 리 없었다.

“휘연, 저기 3미터 다이빙 풀에서 입수하는 방법 알려줄게 가자!”

비척비척 그녀의 뒤를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따른다. 물론 나는 요즘 하루에 한 가지씩 안 해본 짓 하고 살기로 한 사람이니 그녀가 알려주는 가르침을 사양할 이유가 없다. 그래도 물은 무섭다…


“자, 봐봐. 양손을 머리 위로 모아서 쭉 뻗고, 무릎을 살짝 구부린 다음, 고개를 떨어뜨려 니 발가락을 봐, 정수리가 바닥으로 내려 꽂힌다 생각하고 들어가는 거야 고개 들지 말고!”

“풍덩!”

“자, 이제 니 차례야 , 절대 머리가 바닥에 안 부딪히니까 겁먹지 말고 시선을 네 발가락에 유지하고 들어와!”

“풍덩”

“악! 코에 물들어갔어! 따가워!”

“겁을 먹어서 그래~ 무의식 중에 고개를 들어버리는데, 잊지 마. 절대 머리는 바닥에 안 닿아. 바닥에 부딪히지 않으니 겁낼 거 없어.”


그렇게 몇 번의 입수를 반복했다. 처음엔 코로 물이 들어오는 게 무서워서 물을 먹고, 발이 닿지 않는 물의 깊이에 겁을 먹었다. 수영장 바닥이 마치 어두운 심해 속 같아 입수를 하고 잽싸게 물밖으로 뛰쳐 올라왔다.

“오~ 이제 조금 안정적인 자세가 나오는데?”

몇 차례의 입수로 방법을 조금씩 터득하니 떨어지는 게 무섭다는 생각이 옅어져 갔다. 어차피 똑, 딱 하고 떨어지는 것을. 내 옆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입수를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개구쟁이 아이들 같았다.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내가 하고 있는 단순한 입수 동작이 별거 아닌 듯 느껴져 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지친 몸을 쉬고 싶어 졌지만 빨래와 집안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홀로 제주도에서 아이 둘 키우며 지내는 일상은 여유가 없다. 귀찮아서 잠시 미뤄둔 일은 복리이자가 붙어 불어난다.어차피 누군가 대신해줄 수 없다면 조금이라도 기운이 남아 있을 때 해치워야 했다. 빨리 몸을 움직이고 잠시 누워 쉬려는 찰나, 혼자 집을 지키던 큰아이가 나를 보자마자 배고프다고 성화다.

“아니, 이 시간까지 왜 아무것도 안 먹고 있었는데?”

속에서 치밀어 오는 짜증이 얼굴과 말투에 베어났다. 다시 몸을 일으켜 일찍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 누가 좀 대신해 줘…’


“엄마, 나 이거 먹기 싫어”

“엄마, 물 가져다줘 “

“엄마, 내 도복 안 빨아놨어?”

“엄마, 나 여기가 아파”

“엄마! 형이 때려! “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두 아이의 민원을 해결하고 내 개인적인 일까지 신경을 써야 하다 보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아이들이 집에 있는 주말은 더욱 고되다. 이제 막 사춘기 진입로에 발을 내디딘 6학년 꼬마와 매 순간 자기의 예기를 들어줘야 하는 2학년 꼬꼬마의 ‘만만한 사람’ 이 되어 주는 일도 마음의 연료가 떨어지면 받아주기 어려워지곤 한다. 눈만 마주치면 싸우는 두 녀석의 소란을 듣고 있을 때면 가끔 이러다 미칠 수도 있겠구나 싶은 날도 더러 있었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돌아가며 짜증을 부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내가 지은 ‘죄’라곤 너희들을 낳고 사랑한 죄 밖에 없다 말하고 싶어졌다. 발이 닿지 않는 깊은 수심아래 홀로 발버둥을 치는 기분이었다. 발버둥을 치면 칠 수록 수면아래로 내려앉는 기분. 차라리 빠져 죽는 게 나을까? 자포자기 심정으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더는 못하겠어, 나는 이 모든 걸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었어. 나는 안 되는 사람이었어 “


모든 걸 홀로 잘 해내는 씩씩하고 단단한 사람이고 싶었다. 남들이 보기에 혀를 끌끌 찰 일들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잘 해내고 즐겁게 살고 있다 보여 주는 척만 했지 내 속은 그렇지 못했다. 스스로가 그런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이다 인정을 하고 모든 걸 원점으로 다시 돌리려 바닥으로 다이빙을 한다. 풍덩…




질질 짜고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머리가 한결 가벼운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게 버겁고  못 하겠다 생각되던 마음이, 아무 일 없듯이 잔잔해져 있었다.

’아.. 나 괜찮구나‘

절망에 휩싸여 감정의 심연으로 냅다 몸을 던졌더니 두둥실 몸이 수면 위로 떠올라 버렸다. 친구의 말이 맞았다. 머리를 처박고 부상을 입을 줄 알았는데  쑤욱하고 다시 떠올라 숨을 내뱉고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엄마, 잘 잤어?”

잠에서 깬 아이가 나에게 안겨 입을 맞춰주었다. 이 보드랍고 여린 아이에게 온 세상은 오로지 나일 텐데.

아이들에게 부족한 엄마의 모습을 보인게 부끄러웠지만 후회는 되지 않았다. 엄마도 사람이기에 때론  버거운 일들 앞에 두려워할 줄도 안다고,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며 비비며 살아내자 생각해본다.우리가 사는 동안 이런 마음은 계속 되겠지..

또다시 모든 게 버거워 미칠 노릇일 때,다시 한번 숨참고 d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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