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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연 Nov 04. 2024

엄마가 다녀간 후, 대상포진에 걸리다.

얼마 전 이사를 하게 되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주택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수차례 이사를 해오며 제주도 까지 이주를 해보았던 터라 이사를 별거 아닌 일이라 얍잡아 생각했다. 하지만 주택으로 이사는 일반 아파트 이사보다 배로 힘이 들었다. 특히나 우리 집은 크지 않은 3층 주택이라 구석구석 공간을 잘 활용해야 좁아 보이지 않는 집이었다. 포장이사였지만 결국 모든 정리는 나의 몫. 이사를 하기 전부터 입주 청소와 물건 정리로 지칠 대로 지친 나는 한동안 이사라면 꼴도 보기 싫은 상태에 이르렀다. 생각지 못한 비행기 소음과 , 관절의 무리, 아이들 등하교를 위한 라이드 정도는 감당을 하고서라도 당분간 이사는 하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고야 말았다.




이사한 집이 나의 손길로 온기가 돋아날 즈음. 엄마가 새집으로 방문을 하겠다 연락이 왔다.

금요일 저녁비행기로 들어와 토요일 저녁 비행기로 가는 1박의 짧은 일정을 무리해서 오겠다는 이유를 알기에 말리지 않았다. 지난 금요일, 제주도는 100년 만에 기록적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비를 뚫고 마트로 회집으로 분주하게 돌아다니다 보니 신발은 이미 축축이 젖어 있었고 머리는 만신창이었다.

거지꼴로 엄마를 맞이하면 분명 미용실을 가자느니 , 네일을 받으러 가라는 둥 폭풍 잔소리가 일 것을 알기에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그녀를 맞이하러 공항으로 향했다. 작은 케리어 가방을 끌고 나오는 엄마를 보니 종일 피곤하던 마음이 누그러들었다.


"엄마는 내가 아는 70대 중에 제일 용감한 거 같아. 혼자 씩씩하게 폭우를 뚫고 비행기를 타고 오다니. 멋진데?"

"그러엄~걸어 다닐 수 있는 순간까지 내 발로 여기저기 잘 다녀 볼 거야"


홀로 제주도로 오기 위해 집에서부터 지하철과 버스,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우리 엄마.

그녀가 이렇게도 무리하게 이사한 딸 내 집으로 온이유는 단 하나, 새로운 집에서 살아갈 가정에 축복의 기도를 하기 위해서였다. 때마침 엄마의 오랜 숙원이던 교회 권사 직분을 받은 직후였기에 엄마는 더욱 의기양양하게 기도빨(?)을 남기고 싶어 했다.

"권사 자녀들은 다 잘 되고 축복받는 거 알지?(엄마의 개인적 생각이니 오해 마시길)"




다음날 그치지 않을 것 같던 기세 좋던 빗줄기가 얇아지고, 엄마를 모시고 송당 동화마을로 향했다. 제주도에 온 목적이 너무도 분명했던 엄마이기에 관광은 필요치 않다했다. 그저 경치 좋은 곳에서 차 한잔 마시면 그만. 오랜만에 만난 엄마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을 열심히 하는데도 돈줄이 막히는 기분이라 토로하던 나에게 "혹시, 아빠 사진 같은 거 지갑에 넣고 다니니?"라고 그녀가 물었다.

"어, 아빠 돌아가시는 날부터 지금까지 아빠 신분증을 넣고 다니지."

"돌아가신 분 이젠 미련 두지 말고 놓아드려. 옛 어른들 말에 돌아가신 분 유품은 품고 사는 거 아니라더라. 정리해"

교회 권사님이 하시기에 적절한 말은 아닌 듯 했지만 엄마가 살아온 세월의 무게를 나는 믿는다.

돌아가신 아빠를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못하는 딸을 염려해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던 그녀일 것이다.

어쩐 일인지 나도 그 말 한마디에 미련의 한 조각이 툭 하고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응.. 정리할게. 들고 다니던 것들도, 붙잡고 있던 아빠 전화번호도, 놓지 못하던 마음도 이젠 모두 보내드릴게"


그렇게 엄마의 짧은 1박 딸 집 방문은 끝이 났다. 공항으로 모셔다 드리며 작년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 충격으로 대상 포진에 걸린 엄마가 걱정됐다.

"엄마, 대상포진 걸렸던데는 괜찮아? 예방접종 다시 맞았지?"

예방접종도 다시 맞고 이젠 말끔하다는 엄마의 말에 안도가 되었다. 지난 1년의 시간 동안 우리는 몸과 마음에 난 상처를 스스로 잘 치유하고 있던 것이다. 몸은 피로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하던 엄마와의 시간이었다.

........ 그러나


내 몸은 주인의 생각과는 또 다른 의견을 지니고 있었나 보다.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는데 등이 따끔거리는 게 아닌가.

?? 이게 뭐지??

등에 동그랗고 오돌토돌한 수포들이 원을 그리며 있었다.

'나.. 이거 아는데?'


그렇다. 엄마에게 조심하라던 대상 포진이 내 등에 들러붙어 있었던 것이다.

인생은 이토록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차키를 들고 야간 진료 365 병원으로 향하며 실소가 터져 나왔다.

정답은 없다. 이 또한 생각하기 나름이다. ' 괜찮아, 약 먹으면 낫겠지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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