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대중교통으로 요세미티까지 가기 위해서는 대략 7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 사이 한국의 지하철과 같은 바트(BART)를 한두 번 정도 갈아타고 암트랙(Amtrak) 열차와 버스를 한 번씩 타야 한다. 그 정도면 어렵지는 않을 거 아니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그곳의 대중교통 체계에 익숙해질 시간도 없이 바로 이렇게 길다란 여정을 떠나는 건 적잖이 부담이 되는 일이다. 특히 몇몇 차의 경우엔 놓치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다음 날까지 그저 기다리는 것 밖에 없어서 그 작은 위험도 꽤나 크게 신경 쓰이게 된다.
공항과 연결된 바트 역에 가자 마침 내가 타야 할 색깔의 바트가 도착해 바로 올라탔다. 타기 전 공항 직원 조끼를 입은 아주머니에게 이것을 타는 게 맞는 것인지 확인차 여쭤보았다. 귀국해 글을 쓰는 지금 고백하기 조금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 난 아직도 바트 타는 법을 잘 모른다. 한국의 경우 지하철 환승역들은 각 노선에 따라 승강장이 분리되어 있으며 차의 방향에 따라서도 구분되어 있다. 예컨대 종로3가의 경우 1호선과 3호선을 타는 곳이 완전히 나뉘어 있으며 승강장 역시 이동방향에 따라 안국행과 을지로3가행으로 앞뒤로 구분되어 있다. 그런데 이 샌프란시스코의 바트는 - 내가 여전히 오해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 한 승강장에 몇몇 다른 노선의 차가 함께 들어오며 어느 방향의 열차인지도 한국처럼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역에 따라 쉬운 경우도 있기는 했다). 이게 도대체 어떤 구조일까 파악해보려 애를 나름 쓰다 결국 그냥 포기하고 탈 때마다 역에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다녔는데, 그래도 가고자 하는 곳엔 모두 어려움 없이 다녀왔다. 타지에 가면 지극히 일상적인 모든 것부터 한없이 낯설다. 어색하게 뒤틀려 있던 그 도시를 풀어내어 비로소 친밀함을 갖고 마음에 담아오는 게 바로 여행의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리치먼드(Richmond) 역에서 내려서는 암트랙 열차를 기다렸다. 역 근처는 교외 주택가 같은 곳이었는데 특별히 우뚝 솟은 건물 하나 없는 낮고 조용한 동네였다. 역도 전혀 붐비지 않고 조용했고 유난히 금색으로 빛나던 태양이 여기저기 물들이고 있었다. 함께 기다리던 열 명 남짓 되는 사람들 중 절반 정도는 요세미티로 향하는 것 같았다. 당일 혹은 짧은 1박의 일정으로 다녀오나 궁금할 정도로 작디작은 백팩에 운동용 타이즈를 입고 있던 중년의 부부와 등산화를 신고 있던 몇몇 젊은이들이 있었다. 잠시 훌쩍 다녀올 정도로 요세미티가 가까운 이들은 참 좋겠는 걸 생각했다. 같은 곳을 가지만 나는 비행기 탑승 거부까지 당했다고요.
커다란 소리를 내며 열차가 도착했다. 휴대폰으로 예매했던 티켓을 아무리 보아도 좌석이 지정되어 있다는 문구는 없는 것 같고 그나마 좌석 종류와 관련된 것으로 추측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게 1층과 2층을 구분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어 그냥 아무 곳에나 앉았다. 이후엔 눈치로 해결하자라는 마음이었다. 곧이어 티켓을 확인하는 차장이 나타나 한 명 한 명 검사를 했는데 아무 말 없이 지나가는 것을 보니 괜찮나 보다. 낯선 곳에선 별에 별 것에 눈치 보게 된다.
내 반대편에는 남미 출신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앉아 있었는데, 차장이 표를 보여달라 하자 불안한 눈빛으로 그저 창밖만 바라보며 사실 자기는 어디 어딜 간다고 어눌한 발음으로 횡설수설하였다. 차장은 익숙한 일인 듯 다음 역에서 바로 내리라고, 미리 여러 번 반복하여 입에 붙은 듯한 말을 확실히 전하고 지나갔다. 표를 사지 못 했다는 그의 상황보다 직원과 전혀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한없이 흔들리고 또 애타게 시선 둘 곳을 창밖에서 찾던 눈동자가 그의 불안과 위태로움을 더 분명히 드러내었다. 그러고 보니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연결통로에서 청소도구를 들고 대기하던 있던 서너 명의 노동자 모두 히스패닉이었다. 지난해 뉴욕에 갔을 땐 모두 흑인이었다. 미국은 인종주의 위에 지어진 나라라고 소리 높여 말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유효하겠구나 생각했다.
고작 몇 가지 사례를 가지고 일반화하는 것 아니냐고, 지나친 계급적 감수성에 판단의 균형을 잃은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에 대해 통계적 데이터들을 가져오거나 비행기의 그 직원들을 불러올 마음은 전혀 없다. 다만, 직접 미국에 와서 지역과, 문화와, 직종과, 학교와, 생활공간들 속에서 당신은 감지되는 게 전혀 없는지 정도는 반문해볼 수 있겠다.
음악을 들으며 조금씩 졸다 보니 어느새 반대편의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아까 열차 직원의 풍채나 꼼꼼함을 생각하면 그가 차 안의 다른 칸으로 갔을 것 같진 않다. 아마 그다음 역에서 어디인지, 또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내렸으리라. 내 마지막 기억에서 그는 차장이 지나간 뒤에도 한참을 창문 너머 무언가 바라보고 있었는데, 더 정확히는 바라볼 것을 찾는 것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는 열차 안에서 그가 무얼 생각하고 그리고 있었는지 나는 전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가 떠난 뒤에도 열차는 계속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