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semite여행기(1) 비행기를 놓치는 것보단

by 날들과 바람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새로운 시간축과 장소에 들어서게 되면 즐거움뿐 아니라 난관 역시 비일상적이고 생전 처음 접하는 종류의 것이 된다. 짐을 모두 챙겨 공항에 가서 체크인을 하다 출국을 거절당했을 때는, 눈 앞이 캄캄했다.


태어나서부터 이중국적자였지만 오랜 시간 한국 여권만을 사용했다가 마침 정말 오랜만에 미국 여권을 갱신한 겸 여권을 '하나'만 들고 공항에 갔다.(미국 대사관에서 미국을 갈 땐 꼭 미국 여권을 사용하라 신신당부해 항공권 예약도 미국 걸로 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한국과 미국 양쪽 여권이 모두 있어야만 출국이 가능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만 같아 편리할 줄 알았는데 둘 다 챙겨야 한다니 번거로움은 더해진 것이다. 어렸을 적에 미국에 다녀왔을 때 여권 두 개를 항상 모두 챙겼었나,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음 날 인천공항에서 단수여권을 발급받은 후에야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일정과 숙박 예약들을 조정했어야 해 자칫 굉장히 큰 위약금 폭탄을 물 수 있었는데 정말 다행히 대부분을 부담 없이 수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출국을 거절당하고 돌아오는 공항철도에서 다시 일정들을 손보니 되려 여행 일정이 훨씬 깔끔해진 부분도 적지 않았다. 조금 촉박하게 준비를 했고 애초에 준비 자체도 꼼꼼히 빽빽히 하지 않는 터라 조금 아쉽고 뻣뻣한 부분이 스케줄에 있었는데 거의 모두 유연하게 풀어진 것이다. 모든 문장은 언제나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하루키가 말했는데 여행 계획 역시 마찬가지인가 보다. 단, 마음을 잘 추스르고 정리했다는 전제에서. 사실 출국을 거절당했을 땐 '정말 보내주지 않는 거야?' 하는 끝내 믿지 못할 심정과 절망, 야속함, 부끄러움 따위가 몰려왔었다. 그럴 땐 사랑하고 의지하는 음악을 찾는 게 최선이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건 거의 1년 만이었는데 생각보다 이코노미 좌석이 좁지 않아서 안도했다. 너무 내가 커다란 불편을 미리 그렸던가 생각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예상보다는 널찍한(이라고까지는 차마 말하기 어렵지만) 자리에 안도했다. 거기에 더해 바로 옆자리가 비어 몇 가지 짐을 바로 옆에 올려놓아 더더욱 편했다. 비좁은 좌석에선 가방에서 필요한 것들을 넣고 꺼내는 것도 모두 신경 쓰이고 불편하다. 기내에서 주는 일회용 슬리퍼와 안대까지 준비하니 비행 준비는 완료였다. 가슴 철렁했던 출국 거부는 어느새 잊혀지기 시작했다.



세계의 공항을 여러 군데 가본 것은 아니지만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은 충분히 정갈하고 편안한 곳이었다. 부대시설들이 주는 느낌은 인천공항보다 오히려 더 정감 있는 면이 있다. 군데군데 놓여있는 이지체어에는 사람들이 편히 쉬고 있었고 로비 같이 커다란 공간에는 어떤 곤충 관련 전시를 하고 있었다. 하늘을 날 들뜬 마음으로 공항에 온 사람들에게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올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전시된 것들을 꼼꼼히 살피며 사진으로 담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식사를 공항에서 해결해야 했던 터라 마땅한 곳을 찾다 멕시코 음식집에서 브리또를 시켰는데 기대보다 푸짐하고 맛도 있었다.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을 충분히 채워줄 수 있는 끼니였다.


원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루를 묵은 뒤 요세미티 공원에 갈 예정이었다. 자투리 시간이라도 더 내어 도시를 구경하고 싶었다기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요세미티까지 가는 게 정말 쉽지 않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꽤 많은 교통수단을 갈아타야 하고 자동차를 이용해 바로 가는 것보다 소요시간이 2배 정도 더 걸리며 그마저도 한 번이라도 차를 놓치면 속절없이 다음 날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렌터카를 빌리거나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투어 업체의 교통편을 이용한다. 때문에 나 역시 처음엔 투어 차량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연기된 출국으로 투어 일정도 수정되어 나 혼자 요세미티에 먼저 가서 이틀 정도를 보낸 뒤 일행들과는 공원 안에서 합류해 투어를 시작하기로 했다.


이미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충격적인 일을 겪다 보니 7시간 넘게 대중교통으로 길을 찾아가는 것이 전혀 난관 혹은 불안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사서도 고생해라'라는 말에는 거의 언제나 동의하기 어려운데, 그래도 한편으론 오로지 어려움을 겪는 것만이 선사하는 특수한 선물이 있는 것 같다(물론 그것을 잘 견디거나 이겨냈을 때 이야기지만). 당장은 눈치챌 수 없다 해도 보이지 않는 천사가 어느새 곁에 와서 고생했다고 스윽 무언가를 놓고 가는 것처럼 아픔과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믿는다. 적어도, 버스와 지하철을 놓치는 건 비행기를 놓친 것보단 작은 일이겠지.


[ 이미지 출처 : Jim Darling, <Airplane Window Seat Painti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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