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촌스러운 엄마

by 한우주

내 어린 시절 엄마는 나에게 최고의 영웅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똑똑한,

내 마음속을 훤히 꿰뚫고 있는,

못하는 게 하나도 없는 유능한 여신!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십 대, 이십 대 시절을 지나면서

‘어? 엄마도 못하는 게 있구나.’

싶었고,


나였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일을 하는 엄마를 보면

한없이 무능해 보였다.


세상 물정도 모르면서 고집 세고 목소리까지 큰 엄마와 외식이라도 하는 날엔

옆 테이블까지 엄마 목소리가 너무 크게 들릴까 봐 창피했다.

그리고 화가 났다.


때론 지나친 훈육으로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슬픔을 만들어 놓기도 했으면서,

이미 성인이 된 나에게

아직도 예전과 같은 잔소리를 하는 엄마를 보면 정말 너무 화가 났다.

그러나 내가 특히 화났던 때는

너무나도 촌스러운 엄마를 마주할 때였다.


엄마는 30년 가까이 서울에서 살며 직장을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시골에 사는 사람처럼 촌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이미 흘러간 과거의 경험이나 생각을 지금 시대에 그대로 적용시키려 들거나,

한번 옳다고 믿은 신념은 절대 바꾸지 않는다.

그게 아니라고 말하면

“기껏 키워 놓았더니, 제 잘나서 큰 줄 안다!”

는 소리를 듣고 감정싸움이 되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에

차라리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 보면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기도 했다.


엄마는 늘 촌스럽고 고집이 셌다.

몇 년 전 기념일에 좀 괜찮은 데 가서 밥을 먹기 위해

엄마를 데리러 갔을 때

주차장에 서 있던 엄마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젊은 시절에나 입었을 법한 바지정장을 차려입고 차에 올라타며

“오늘 내가 신경 좀 썼어.”

하고 웃는 모습이라니!


‘엄마, 요즘엔 결혼식에 가도 그런 옷은 안 입어.’

라는 말을 삼키고 식당에 들어서니

세련되면서도 편안해 보이는 캐주얼룩을 입은 근사한 손님들이 보였다.


어느 누구도 우리 가족의 옷차림에 관심이 없음을 알면서도 나는,

촌스러운 엄마 때문에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엊그제,

그렇게 촌스러운 엄마와 단풍을 보러 갔다.

해마다 보던 단풍인데

그동안의 단풍보다 올해 단풍이 유난히 예뻐 보였다.


그 때문에 틈만 나면 집 앞 공원이라도 나가곤 했다.

“엄마 여기서 봐. 해가 떠서 단풍이 너무 예뻐.”

하며 폰 카메라를 드는 순간

엄마는 단풍나무 옆에 서서 한쪽 팔을 나무에 기대는,

아주 촌스러운 포즈를 취했다.


‘요즘처럼, 사진 찍는 것이 숨 쉬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시대에 엄마 왜 그래!’

라는 생각에 화나는 순간,

한 구석에서 다른 마음이 올라온다.


‘아…… 엄마는 눈 감고 귀 닫고 살아야 했구나!

남편 없이 세상과 싸워가며 우리를 키우느라

그 좋은 시절을 눈멀고 귀먹은 듯이 살아냈구나!‘


엄마는 외골수여서 하나에 몰두하면 다른 것은 잘 보지 못한다.

나는 엄마의 그런 모습이 너무너무 싫고 창피했는데

그 외골수 기질이,

그 촌스러움이,

험하고 힘든 세상 속에서 엄마와 우릴 살린 것이다.


그리고 올라오는 또 다른 마음.


나는 엄마의 촌스러운 모습에 자주 화나는데,

그것은 엄마에 대한 내 죄책감 때문이었다.


옛 사진 속 젊은 엄마는 객관적으로도 꽤 세련된 미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유가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나만 없었으면

저렇게 촌스러운 모습으로 나이 들지 않았을 것 같다는 죄스러움에 화난 것이다.


촌스러운지도 모르고 촌스럽게 살고 있는 엄마가 안쓰럽다가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엄마한테 화를 내고,

불쌍한 엄마한테 화냈다는 또 다른 죄책감을 안고 있었던 내가

참 가엾게 느껴졌다.


엄마도 나를 키우며 행복했을 테니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는 말을 누군가 해준 적이 있다.

그 말이 단순한 위로처럼 들렸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당신의 손자에게

“늬 엄마가 어릴 때 참 착했어.”

라고 말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촌스러운 우리 엄마.


자식들 키우고 가르치느라 당일치기 여행 한 번 못 가보고,

영화관 한 번 못 가 봐도 그게 당연한 줄 알았던

아니,

자신이 그런 삶을 사는지 인식조차 못했던 촌티 줄줄 우리 엄마.


‘엄마가 그렇게 촌스럽게 살아서 내가 지금 세상을 즐기지 못하는 거야!’

라고 원망도 참 많이 했는데 그게 결국,

내가 나에게 쏘는 화살이었다니.


누구보다 과거 속에 살고 있던 진짜 촌스러운 사람은 나였네.


엄마 미안해.

촌스럽다고 미워해서 미안해.

촌스럽든 어떻든 나는 사실 엄마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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