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링.”
출근하는 남편 뒤로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면 “휴......” 깊은 한숨이 나왔다.
‘이 집에 작은 아기와 나 둘 뿐이구나. 아무도 없구나. 혼자 있구나.’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느낌.
그땐 딱 그런 마음이었다.
30여 년을 서울에서 살다 결혼 후 이곳에 집을 얻었다.
가까운 미래에 출산과 퇴사를 하게 될 나보다는
남편의 직장 근처인 이곳에 사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서였다.
결혼 2년 후 아기가 태어났고 얼마간의 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집에 왔다.
한동안은 괜찮았다.
출산휴가 중인 남편이 같이 있었으니까.
남편이 다시 출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음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잠에서 깰까 봐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가는 남편의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면,
그때부터 울컥하고 외로워졌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이 동네에 이 넓은 집에 나 혼자,
아니 너무 작아서 부서질 것 같은 아기와 단 둘이서만 지내야 하는 하루가 너무 막막했다.
이제 막 시작된 오늘 하루가 벌써부터 힘에 겨웠다.
겨우 일어나 방 밖으로 나오면 깨끗하게 정리된 거실과 주방을 보며 엉엉 울었다.
밤새 아기를 달래고 수유하느라 어지럽혔던 흔적을 새벽에 정리하고
아침도 거른 채 출근한 남편에게 너무 미안해서였다.
조그마한 아기 하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 허둥지둥하며 매일을 보내는
내가 너무 무능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기가 2월에 태어났기에 외출도 못하고 집에만 있었다.
예방접종 하는 날을 소풍 가는 것처럼 설레며 기다리기도 했다.
내 인생 전체에서, 가장 긴 시간을 집에만 있던 시절이었다.
겨울의 짧은 해도 너무나 길게 느껴졌고,
어서 날이 어두워져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아기가 낮잠을 자고 있어도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내가 잠든 동안에 아기가 깨서 우는데도 모를까 봐.
그렇게 불안과 눈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거실 넓은 창으로 늦겨울의 햇살이 환하게 비추는 것도 모른 채
뭔지 모를 걱정과 두려움이 쌓여갔다.
사소한 것에도 폭풍 같은 감정이 휘몰아쳐 힘들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게 두렵고 깜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창밖에 하얀 눈이 이불처럼 베란다를 덮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바람도 세차게 불었다.
평소에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이런 날 따뜻한 집안에 안전하게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갑자기 문득 든 생각이었다.
작은 아기와 내가 함께 있는 공간.
차가운 어둠이 아니라 포근하고 아늑하게 느껴졌다.
하얀 눈이 따뜻하게 내려 이불처럼 우리 집을 감싸던 그때부터
서서히 그러나 단단하게 나의 마음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집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휑하고 허전하기만 했던 곳이 여유롭고 편안해졌다.
그날 이후,
-남편의 퇴근을 여전히 기다리긴 했지만-
집에 들어오는 그에게 웃어줄 수 있게 되었다.
내복 사이즈가 바뀔 만큼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는 아기를 보며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둘만 있는 시간이 아직도 막막하긴 하지만,
창밖의 이른 봄 햇살을 받는 아기를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제야 아기가 예뻐 보였다.
행여 잘못될까 봐 불안하고 힘들던 마음에 눌려있던 모성애란 것이 드러나기 시작했는가 보다.
창밖엔 개나리, 진달래가 피기 시작했다.
나에게만 유독 길었던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동시에 내 겨울 마음도 봄바람을 맞으며 조금씩 녹고 있었다.
꽁꽁 얼었던 엄마의 겨울에 봄내음이 나기 시작하니 아기도 안심이 되었나 보다.
밤잠이 조금씩 길어지고 방긋방긋 웃는 시간이 많아졌다.
기나긴 겨울 동안 아기와 나를 지켜준 우리 집은
추위와 바람만 막아준 것이 아니었다.
두려움과 걱정으로 꽁꽁 얼었던 나의 겨울 마음도
포근하게 감싸주고 안아주었다.
새 생명이 따뜻하게 자랄 수 있는 토대가 되어 주었다.
남편이 없는 낮 동안에,
이 공간에는 연약하고 작은 아기와 무능한 나, 둘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둘을 감싸주고 지켜주는 ‘집’이 함께 있었다.
우는 아기를 안고 서성이며 같이 울던 나.
급한 마음에 선 채로 밥을 먹던 나.
항상 불안한 엄마 옆에서 천사처럼 잠든 아기.
매일 매시간 쑥쑥 자라며, 조금 울고 많이 웃어주어 엄마를 또 울게 만든 아기.
그런 둘을 가만히 지켜주던 우리 집.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지금도 그 집이 자주 떠오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곳에 살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외롭고 분주해서 슬펐던 어린 엄마와
천사보다 더 천사 같던 아기가 생각난다.
너무 그리울 땐 눈을 감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
울고 있는 여린 엄마에게 다정히 말을 건넨다.
“괜찮아. 지금 잘하고 있어. 아기도 아주 잘 크고 있어. 걱정하지 마.”
그리고 집에게 말한다.
“집아, 네가 있어주었구나. 나와 아기를 지켜주는 네가 있었구나. 고마워”
아기와 함께했던 집은
내가 엄마 품을 떠나 살게 된 첫 번째 집이다.
집은 우리 아기를 따뜻하게 키워주고 나를 의연한 엄마로 만들어 주었다.
그 시절 아기와 나에겐, 마음을 자라게 해 주는 집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