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시술권 삽니다.

피부는 정돈되었는데, 마음이 주름져 있습니다.

by 방구석 아티스트


"00이 엄마 할머니 같아!"

하원하는 딸아이를 보고 너무 활짝 웃는 바람에

깊은 팔자주름과 푹 패인 볼을 들켜버렸습니다.


'녀석, 잘 배운 티가 나네'

귀여운 7살 유치원생의 입에서 나온 독침은 내가 아닌 딸아이에게 꽂혔습니다.


남편에게 독침 에피소드를 알리는 것이 무척이나 부끄러웠지만,

딸아이의 정신적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결국 피부과 결제권을 따냈습니다.


마흔이 넘어

난생처음 시술 전문 피부과를 방문했습니다.

절약에는 영 무재주라, 악명 높은 이 분야의 진출을 최대한 자제했지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습니다.


그 병원의 주력시술을 모두 받은 듯한 실장님이 저를 호명하며 상담실로 손짓합니다.

두꺼운 유리문, 저 안으로 들어가면 저는 분명 배정예산을 초과한 결제를 할 거라 직감합니다.


실장님은 저의 경제사정을 고려해 시술 메뉴판 하단에 별표로 강조된 정액할인권 문구를 짚어줍니다.

백화점 변칙세일을 알고도 속는 것처럼 저는 그렇게 눈을 질끈 감고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수술대만큼이나 차가운


시술대 위에 누운 저는 눈이 가려진 채 겁에 질렸습니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고도 무통주사 바늘을 빼달라고 애원한 저는 선단공포증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제 얼굴에 필요한 것을 주입하고 필요 없는 것을 제거하기 위해

바쁜 손놀림으로 바늘과 레이저를 교차사용합니다.


도포된 마취크림은 혹시 영양크림이었나 의심이 듭니다.

억눌린 비명으로 고통을 분산시켜 보지만, 나아지지 않습니다.


2~3일이 지나자,


괴물처럼 울퉁불퉁했던 얼굴이 제법 가라앉았습니다.

일주일 후, 거울 속 내 얼굴이 낯설 만큼 만족스럽습니다.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고 절대 퇴사하지 않겠다 다짐합니다.


어느새 저는, 원래 잡티가 없던 사람처럼,

노화를 막는 물질이 가득한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밤,


잠에 들지 못하고 이런저런 생각회로를 돌렸던 저는

멍 한 상태로 키보드를 두들기다 또 다른 생각을 떠올려 봅니다.


원래 불필요한 생각이 없었던 사람처럼, 긍정적인 생각만으로 가득 찬 사람처럼

다음 날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셀 수 없는 등장인물과 과거와 현대를 넘나드는 대하소설과 같은 나의 생각은,

매일 밤 머릿속에서 저를 파괴합니다.


생각 속에서 저는 하찮고, 잘못하고, 매 순간 부끄럽습니다.

제 모습을 들킬까 봐 늘 두렵습니다.


그러니,

생각시술권 삽니다.

참, 정액할인권으로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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