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놀라고, 눈치 봐도 괜찮아.

라고 말해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by 방구석 아티스트
"여러분,
울고, 놀라고, 눈치 보는 것은
무릎반사처럼 튀어나오는 거예요.
제어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저녁 내 쌓인 설거지를 하느라 싱크대 앞에 있던 나는,

잠시 손을 멈췄다.


소리가 나는 곳은,

남편이 이 집에 '자기 것'은 이것뿐이라며 애정하는 80인치 대형 티브이였다.


두툼한 안경과 세련된 흰머리의 50대 남성이

단호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화면 아래에는 그의 권위를 입증하듯 자막이 길게 나열되어 있었다.

- 정신의학과 박사, 대학교수, 과학자이자 IT계열 CEO


'그래, 그렇지? 그랬던 거지?'

명치를 둘러 감아 옥죄던 두꺼운 고무줄이 툭. 끊어진다.


"왜 울어? 뭐 때문에?
울지 말고 말을 해!"

눈물의 이유가 슬픔만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질타했다.


만화 주인공 오스칼의 죽음이 떠오를 때나

마음이 쓰이던 친구의 뜯어진 바지자락이 우연히 눈에 들어올 때조차도

울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


답답했던 그들은 너무 심했나 싶을 때쯤 이렇게 나를 걱정했다.

"자주 울면, 사람들이 무시해.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감정이 많아 눈물을 흘리면 사람들이 무시할까?

울음의 횟수가 누적될수록 난 조금씩 더, 움츠러들었다.


"엄마는, 놀라면 안 돼"


분명 주의 깊게 관찰했음에도 아이들은

장애물 없이도 넘어지고, 제 앞에 둔 플라스틱 컵을 두고 멀리 있는 유리잔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악!", "어머!", "헉"과 같은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곤 한다.


사람들은 나의 호들갑을 목격할 때면,

엄마의 내공은 이런 거라는 듯 자신의 침착한 사고 대응 경험담을 풀어내곤 한다.


엄마는 놀라지 않아야 한다.

난 그 기준에 미달되었기에 늘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왜 그렇게 눈치를 봐?


선후배들과 상사의 아름다운 뒷이야기를 풀 때면,

나의 나이와 직책, 경력에 비해 한껏 낮춘 자세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목소리, 호흡, 표정에서 오는 미묘한 감정변화는 그들의 생각을 밖으로 흘려보냈고,

나는 누군가가 불편함을 말하기 전에 미리 행동했다.


매 순간 유입되는 과도한 타인의 감정들을 아득하게 버텨나간 사회생활 속에서,

나의 공감과 배려가 '눈치'로 전락하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마음껏 울고, 놀라고, 눈치 봐도 돼."

사실 이렇게 말하는

'정신의학과 박사이자 대학교수이자 과학자이자 IT계열 CEO'는 내 상상 속 인물이다.


가끔 곤란한 상황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눈물부터 보이는 아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주장을 펼치지 못하고 눈치를 보는 딸을 마주한다.


아이는 차차 세상의 잣대에 익숙해지면서 스스로를 억누르겠지.

자책하지만 변하지 않는 자신에게 실망하겠지.


권위있는 박사님은 아니지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아들, 딸,


마음껏 울고, 놀라고, 눈치 봐도 돼.


나도 그래,

아직도 그래.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니야.

그냥, 무릎반사 같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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