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은 부담스럽고 설친처럼 가볍게.
떼어내려 했다.
유리체 안에서 유영하는 이물질.
'망막의 파편'
늘 함께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는데, 오늘따라 거북하다.
긁어내려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오히려 더 커졌다.
둥실둥실 내 눈 안에서 헤엄치던 그것이
결국, 바닥의 껌처럼 내 안구에 붙어버렸다.
눈을 뜨고도 새까만 세상,
그 두려움은 처음 겪는 막막함이었다.
또, 꿈이었다.
현실의 내가 기획한 시나리오.
꿈속의 나는
그 구체적이고 교묘한 함정에 의심 없이 빠지고 말았다.
몇 달 전,
안과에서 망막박리 진단을 받고 시술을 했지만,
유리체 안 파편들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냥 적응해야 해요."
의사 선생님의 건조한 대답이 무척이나 서운했다.
현대 의학으로 이 작은 파편하나 없앨 수 없다는 그 말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먹어야 할 약은 없나요?
"그런 건 없습니다. 6개월에 한 번 검사받으러 오시면 됩니다."
저렇게나 단정 지을 수 있다니.
검색을 해봤지만 나오는 건 영양제뿐이었다.
밤이 늦도록
계속되는 취미생활이
처음으로 후회되었다.
퇴근 후 밤늦도록 아이패드로는 일러스트를,
물감과 붓으로는 인물과 풍경을 그렸다.
작은 바늘하나로 만드는 소품에 반해,
퀼트에 미치게 빠진 적도 있었다.
내 몸의 한계를 유린한 줄 모르고,
나는 나를 혹사했다.
망막박리 시술 후에
실명에 대한 불안이 끊임없이 날 괴롭혔다.
그리고 그 불안이
결국 꿈속에서 실체를 드러냈다.
불안은 망막의 파편과 같다.
나는 불안을 깨달은 이후,
한순간도 예외 없이 그것과 함께 했다.
없애려고 할수록,
날 더욱 따라붙었다.
길들여진 나는,
불안이 없을 때 더욱 불안했다.
떼어낼 수 없다면,
옆에 두고 좀 더 알아가기로 했다.
"조금만 더 친해지고 싶어."
절친도 아니고 남처럼 불편하지도 않은,
그런 적당한 사이.
나는 그것을 설친이라고 부르기로 했어.
딱 그 정도만 더 친해지자.
배신해도 아프지 않고
오랫동안 같이 있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게.
그 정도만 함께하자.
그러니, 나를 망가뜨리지는 말아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