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살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했지만, 결국 무너져버린 이유

by 인생이란

결국, 나는 인사팀을 떠나 사업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오자마자부터 야근은 일상이었다.
새벽 4~5시에 출근했고,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가 있었다.
몸도 마음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은 아니었다.
빨리 적응하고 싶었다.
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일이었고
‘모른다’는 말이 나오는 게 두려웠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하나라도 더 익히려 애썼다.


그 시기 나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야근에 주말 출근까지 이어지던 날들이었지만
다행히 아내가 대부분의 준비를 도맡아주었다.

그 배려와 신뢰가, 그 시기 내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여유는 거의 없었다.
업무에 쏟아지는 부담이 너무 컸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 표정, 말투, 분위기까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사업부서로 온 뒤 처음 맡은 일은
미분양 상태로 남아 있던 공장 분양 정리와
지식산업센터 관련 소송 대응이었다.


두 사업장 모두 수주 당시부터 구조 자체가 꼬여 있었다.
얽혀 있는 관계사, 반복되는 민원,
해결되지 않은 법적 분쟁까지.


특히 공장 세입자들이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회사 대출금 연체가 이어졌고
그 연체 사유를 듣다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회사의 일을 해야 했고
결국은 채권 추심까지 진행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본부장님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표정이 인사팀에 있을 때랑 너무 다르다.”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이미 내 안의 에너지는 거의 고갈된 상태였다.


며칠 뒤, 인사발령이 났다.
같은 본부 내 옆 팀으로의 이동이었다.




새로운 팀에선
A 아파트 사업 관련 소송 대응과
B 지역의 미분양 도시형생활주택, 상가 분양 정리를 맡게 되었다.


A 아파트 사업은 시공사와의 신탁계약 해석을 두고 수년째 소송 중이었다.
나는 법무법인에서 요청하는 자료들을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른 채
하나하나 뒤져야 했다.


당시 담당자들은 대부분 바뀌었고, 연락도 닿지 않았다.
7~8년 간의 경위를 맥락 없이 파악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버거웠다.


한편, B 지역 물건들은 수년째 팔리지 않고 있었다.
나는 직접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아다니며 시장 분위기를 파악했고, 할인 전략도 고민했다.


하지만 회사는 대출금을 이유로 공매를 진행하라는 압박을 했고
위탁자나 투자자들은 자신들의 수익이 줄어든다며 반대했다.
나는 그 두 입장 사이에 낀 채,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역할을 해야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버텨나가고 있는데,
C 지역의 신축될 지식산업센터 프로젝트까지 내게 주어졌다.

버겁던 상황이었으니 사수 배정을 요청했으나
배정된 차장님도 본인 업무로 바빠 실질적인 도움은 받기 어려웠다.

나는 형식상 ‘경력자’였지만, 사업 업무는 처음이었기에 사실상 신입과 다름없었다.

게다가 내가 맡게 된 일들은 대부분, 내가 전혀 경험해보지 않았던 분야였다.

계약 구조도 낯설었고, 용어 하나하나가 생소했다.

무엇을 먼저 알아야 할지도 모른 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헤쳐나가야 했다.


사수도 매뉴얼도 없이,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했다.




몰입은 했지만
마음은 점점 더 지쳐갔다.
잘하고 싶었고, 이겨내고 싶었는데도
만족도, 보람도, 내 안에 쌓이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는 시간들’이
나를 무너뜨렸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단순한 소진이나 실패였다고 말하긴 어렵다.
너무 힘들었고
그 힘듦이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건지
그땐 잘 몰랐다.


지금에서야 조금 알 것 같다.
문제는 몰입 그 자체가 아니었다.
나는 원래도 몰입을 좋아했고, 몰입으로 성취감을 얻어온 사람이었다.


그 일들엔 방향도 없었고, 목적도 희미했다.
더 결정적인 건,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조차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일에 나를 갈아 넣다 보니
의미는 점점 멀어지고, 내 마음은 텅 비어갔다.


하지만 모든 걸 혼자 책임져야 했고
아무도 먼저 실타래를 잡아주지 않았다.
그 막막함은 매일 나를 갉아먹었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마침내

“나는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힘을 내는 사람일까?”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그 시간들은, 몰입 그 자체보다도
‘무엇에 몰입할 것인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처음으로 깨닫게 해 준 시간이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시간들을 지나 다시 힘을 내기 시작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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