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있었지만, 익숙함 속에서 불안함이 자랐다.
지금 하는 일을 10년 뒤에도 계속할 수 있을까?
어느 날, 문득 그런 질문이 떠올랐다.
2년 전, 나는 HR 경력 6년 차였다.
공공기관에서 2년, 신탁사에서 4년.
나름대로 다양한 조직과 환경을 경험했고,
HR이라는 일이 나와 잘 맞는다고 느껴왔다.
그런데 신탁사에서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이 회사 창립 이래 HR 직무로 입사한 첫 신입사원이 나였고,
대부분의 직원이 사업부서 출신이었다.
HR 업무는 여전히 즐겁고 잘 맞았지만,
‘조직의 분위기’는 나에게 또 다른 고민거리를 던져줬다.
신탁사 입사 후 4년 동안 줄곧 인사팀에서만 근무했다.
채용, 교육, 급여, 평가, 조직문화, HR 디지털전환 등 HR의 전반을 맡아왔고
4년 내내 최상위 고과를 받을 정도로 성과도 인정받았다.
팀원들과의 관계도 좋았고, 전사 직원들과도 잘 어울렸다.
표정도 밝았고, 의욕도 넘쳤고, 무엇보다 ‘잘하고 있었다’.
사실 HR을 계속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특히 IT 차장님과의 협업에서 시너지를 많이 느끼며
HR 데이터를 정제해 조직에 제안하는
HR Analyst로도 성장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회사 규모가 300명 남짓이다 보니
HR 안에서 특정 분야를 깊게 파고들긴 어려웠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과
‘더 깊어지기 어려운 환경’ 사이에서
나는 점점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게다가 이 회사는 대부분의 직원이
사업부서 출신이라는 점.
현업에서 실무를 겪고 올라온 사람들 사이에서
HR만 해온 나는 어느 순간부터 단절감을 느꼈다.
“사업부를 안 거친 HR은 한계가 있다.”
그건 분위기만이 아니었다.
3년 차쯤부터는 실제로 그런 말을 직접 듣기 시작했다.
“너도 이제 사업팀 한번 나가봐야지.”
“그 자리에 오래 있으면 고이게 돼.”
그 말들이 처음엔 불편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 불안을 대변해 주는 말처럼 들렸다.
나도 느끼고 있었다.
뭔가를 더 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사실 나는 부동산 업계 자체에 관심이 많았고,
언젠가 내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인사팀 2년 차 때부터
공인중개사 공부를 병행했다.
첫 해엔 1차 시험만 준비했고, 합격했다.
이듬해엔 2차에 집중했지만 떨어졌고,
세 번째 해엔 1차와 2차를 동시에 준비했지만
또다시 2차에서 고배를 마셨다.
최종합격은 하지 못했지만
3년에 걸쳐 계속 시도했다는 사실은
그때의 갈망을 증명해 준다.
한 달 공부해서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을 땄던 것도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어디쯤인지
스스로 탐색하려는 시도였다.
그때는 이게 HR을 벗어나는 일인지,
HR을 확장하는 일인지조차 잘 몰랐다.
다만 확실했던 건,
“여기서만 머무를 수는 없다”는 감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인사발령을 요청했다.
하지만 처음 요청했을 땐 거절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다시 요청했고,
그제야 회사는 내 결정을 받아들여줬다.
사실 그 때의 선택이 무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HR에서 충분히 인정받고 있었기에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것이
그렇게 두렵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자신 있었다.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하면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그 선택이 나를 어디까지 데려갈지,
그리고 어떤 감정을 마주하게 될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