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말랑한 나로 살아가면 안 되나요?
요즘 SNS를 보면 유난히 이런 말을 자주 본다.
“그 일을 겪고 나서야, 조금은 단단해진 것 같아요.”
“예전의 나였다면 무너졌겠지만, 이제는 단단해졌어요.”
별생각 없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며 단단해져야만 할까?
그냥 태어난 그 상태 그대로, 말랑말랑한 마음을 지닌 채 살아가면 안 되는 걸까?
‘단단해졌다’는 말은 보기보다 슬픈 말이다.
누군가 그 말을 꺼냈다는 건, 그 사람이 아프고 힘들었다는 뜻이다.
무너질 뻔했고, 많이 흔들렸고, 그럼에도 어떻게든 버텨냈다는 말.
단단해졌다는 말은 겉으로는 성숙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이제는 웬만한 건 놀라지 않아요”라는 체념이 숨어 있다.
“다신 그렇게 아프고 싶지 않아요”라는 두려움도 함께.
어쩌면 단단해졌다는 말은
그 순간의 감정을 이야기하지 않기 위해,
감정을 구조화해서 꺼내놓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사회는 우리에게 단단해지라고 말한다.
상처받지 않으려면 단단해져야 한다고,
세상은 만만하지 않으니 감정을 잘 숨기라고 말한다.
말랑하면 불리하다고 배운다.
잘 흔들리고, 잘 무너지고, 잘 믿고, 잘 실망하는 사람은
"아직 어리다", "미숙하다", "사회생활 더 해봐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래서 우리는 방어기제로서 단단함을 택한다.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누군가에게 가볍게 보이지 않기 위해
조금씩 마음의 표면을 굳히며 살아간다.
나도 그랬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애썼고,
웬만한 일엔 놀라지 않는 척을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감정은 나중으로 미루는 법을 배웠다.
그게 ‘어른스러운 거’라고 생각했다.
감정을 줄이고, 냉정하게 보고, 실망도 덜 하고, 기대도 덜 하며.
그렇게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반대로 살고 싶어진다.
여전히 감정에 흔들리고,
사소한 말에 마음이 동하고,
때로는 무너지더라도 말랑한 나를 인정하며 살고 싶다.
단단한 것보다 어려운 건,
그 말랑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용기인 것 같다.
단단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무너지지 않을 만큼,
그리고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을 만큼 말랑한 마음이면 충분하다.
세상이 아무리 거칠어도,
내 마음 안에 단단함만을 채우다 보면
언젠가 따뜻함마저 잃게 될까 봐 그게 더 두렵다.
살아남기 위해 단단해지는 것보다,
살아가며 말랑함을 지켜내는 게 더 어렵고, 더 멋진 일일지도 모른다.
이 글이 말랑한 당신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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