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생각, 그리고 방향에 대하여
이틀 간의 짧은 휴가가 생겼다.
어디 여행을 가기엔 애매했고, 사실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알찬 휴가를 보내기 위해 뭘 할까? 고민하다가
선릉의 한 비즈니스 사교모임에 처음으로 나가봤다.
내 주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사람들을 만났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광고업과 유학원을 병행하는 투잡러,
이제 막 4개월 차지만 셀프 브랜딩을 고민하고 있는 필라테스 원장,
대형 회계펌을 나와 창업한 지 반년 된 세무사 대표까지.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어제 나처럼 모임에 처음 나오신 한 대기업 부장님이었다.
반도체 기술 엔지니어로 개발 직무에서 근무하시다가
현재는 전략 부서에서 10년 가까이 일해왔다고 하셨던 것 같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어 보니
그분의 말은 대화라기보다 한 편의 잘 정리된 글을 읽는 느낌을 받았다.
가벼운 고민으로 시작한 이야기에도
먼저 주장을 정리해 제시하고
그에 대한 근거를 하나씩 덧붙이셨다.
말 사이사이에서 사고의 깊이가 느껴졌다.
투자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회사 커뮤니티에 글을 연재해 오셨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글쓰기를 오래 해온 분이라 그런지,
아니면 전략기획 부서에서 업무를 오래 해오셔서 그런지
전략적 사고력이 남달랐다.
일을 정말 잘하실 것 같았고,
내가 앞으로 성장하고 싶은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난 작년 7월에서야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AI가 없던 시절부터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남겨온 분은
확실히 레벨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또 하나,
글쓰기를 꾸준히 하기 위해선
마르지 않는 소재가 중요하다는 얘기가 나왔고, 서로 동의했다.
근데, 문득 어떤 글을 써야겠다고 소재를 막상 메모해 두어도
시간이 하루 이틀 흐르다 보면
그 글을 어딘가에 올리고 싶은 마음도,
더 심하면 그 글에 담아뒀던 생각조차 희미해질 때가 있다.
나 역시 그렇게 발행되지 못한 글의 파편들을
열 개 남짓 가지고 있다.
부장님은 그런 소재들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그때는 그렇게 느꼈지만,
지금 다시 돌아보니 다른 생각이 든다면
그 변화 자체가 글이 될 수 있다고.
별거 아닌 이야기 같았지만,
‘아 이건 망했어’ 라며 치워놨던 생각들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크게 와닿았다.
독자 입장에서도
글쓴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각이 바뀌었는지를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을 테니까.
역시 먼저 해본 사람의 얘기는 다르구나.
AI가 모든 걸 대신해 줄 것처럼 말하는 시대지만,
결국 차이를 만드는 건 여전히 ‘생각하는 힘’인 것 같다.
AI는 그 힘을 대체하기보다는, 더 증폭시켜 줄 거라고 생각한다.
내 경쟁력을 더 키우기 위해
책을 더 읽고,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나며 살아가야지.
보통 약속이 있어도 밤 10시면 집에 들어가는 편인데,
어제는 이야기가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2차까지 가게 되었다.
집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네.
멀리 떠난 휴가는 아니었지만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좀 더 생각하고 다짐하게 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