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삶의 첫걸음
스무 살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게 떠오르세요? 아마도 설렘, 청춘, 캠퍼스, 첫사랑 같은 아름다운 단어들이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에게 스무 살은 꿈이 시작되는 시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스무 살은 한마디로 ‘고독’이었어요. 마치 누군가 제 등을 떠밀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세상이라는 전장에 혼자 던져진 느낌이었죠.
제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 몽골로 사업을 하러 가셨다가 연락이 끊겨 버렸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비가 내리던 날, 월세가 밀려 빨간 딱지가 가구에 붙어있던 광경이 잊히지 않아요.
다행히 어릴 적부터 제가 유도하는 모습을 예뻐해 주셨던 유도체육관 관장님이 계셨어요. 그 관장님께서 저에게 사범 일을 하면서 체육관 옥상에 있는 컨테이너 반 칸에서 살아보겠냐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스무 살, 옥상 위 작은 컨테이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대학교 1학년 1학기 등록금은 겨우 마련했지만, 2학기 등록금을 낼 형편은 되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시절, 운동선수로만 살아왔던 저는 그때 처음으로 ‘공부’라는 걸 진지하게 마주하게 됐습니다.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않았던 일이었죠.
하지만 목표는 분명했어요.
유도 선수 시절의 루틴처럼 누구보다 먼저 도서관에 가고, 누구보다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며 꼭 장학금을 받아내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용인대학교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의 차를 얻어 타고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다시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밤 9시 30분에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저의 하루였습니다.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자취방은 고등학교 친구와 함께 사용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최선을 다한 결과, 1학기 성적이 학년에서 2등이었습니다. 하지만 장학금은 30%밖에 지원받지 못했고, 나머지 70%는 여전히 부족했습니다. 여름방학 동안에는 새벽에 공사장 일을 나가고, 오후에는 유도체육관에서 사범 일을 하며 등록금을 모았지만, 그래도 약 150만 원이 부족했습니다. 그때의 절망과 눈물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그때 유도체육관 관장님이 부족한 2학기 등록금을 내주시겠다고 하셨어요. 주변의 친척도, 그 어떤 어른도 도움을 주지 않았던 상황에서 관장님께서 건넨 그 말 한마디는 정말이지 눈물이 날 만큼 감사했습니다.
관장님의 도움 덕분에 2학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2학기에도 열심히 공부했지만, 전체 학과 수석에게만 주는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는 없었죠. 결국 2학년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휴학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알아보다가, 친한 친구 전형준(흑곰이란 별명을 가진 친구) 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어요. “염색 나염 공장에 들어가서 보일러취급기능사 자격증을 따면, 관리 업무만 하면서도 공부할 시간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을 거야.” 그 말이 저에겐 하나의 현실적인 길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바로 보일러취급기능사 자격증을 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학원을 다닐 돈이 없어 문제집 하나를 통째로 외우면서 준비했습니다. 오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오후에는 유도체육관에서 사범으로 일하며 밤에는 컨테이너 안에서 자격증 공부를 이어갔어요. 컨테이너 생활은 겨울이면 밖보다 더 추웠고, 여름에는 뜨거운 햇볕 때문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학 등록금을 꼭 벌어야 한다는 마음과 아버지를 위해 빨리 성공해서 효도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버텨냈습니다.
그렇게 1년간의 노력 끝에 필기와 실기시험을 모두 합격했고, 보일러취급기능사 자격증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때 저에게는 대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곧 성공의 길이라고 믿고 있었어요.
삶의 적용 TIP 5가지
목표가 확실하면 어려운 상황도 버틸 수 있습니다.
주변의 작은 도움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져보세요.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세요.
작은 기회라도 놓치지 말고 최선을 다해 활용하세요.
환경이 열악하더라도 긍정적이고 끈기 있는 태도를 유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