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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Mar 27. 2016

오랜만에 화가 나다

어제 알바를 하고 있을 때였다. 사건이 일어날 당시 매장은 너무 바빴고 나는 2군데를 한꺼번에 배달 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보통은 맵에 익숙하여 주문서만 보고 음식을 챙겨서 바로 출발하는데, 그땐 평소 안 시켜먹던 낯선 곳에서 주문이 들어와 맵을 확인하는데 시간을 다소 소요하고 있었다. 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보더니 “여기 음식 다 챙겨놓았잖아요! 와서 안 가져갈 거에요? 제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드릴 순 없잖아요?” 이러더니 짜증 섞인 동작으로 음식을 배달가방에 넣어주었다. 나는 경황이 없어 일단 바로 배달에 나섰는데 가면서 조금씩 맘이 상하려고 하였다. 그래도 난 ‘신경 쓰지 말자!’ 하면서 넘기려 했다.



그런데 배달 목적지 아파트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18층을 누르고 올라가는 동안 갑자기 분노와 억울함이 본격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우선 나의 이 감정을 지켜보면서 ‘이런 느낌 참 오랜만이다’ 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는 사실 거의 모든 일에 화를 내지 않는 성격이다. 화가 나더라도 그것을 밖으로 표출하는 경우는 평균 5년에 한번 꼴인 것 같다. 그런데 그 표출이라는 것도 언성을 높이거나 흥분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에게 그저 랩 하듯이 따지고 드는 것이 다이다. 그런 내가 겨우 이런 일로 화가 났으니 스스로가 더 당황했던 것이다. 매니저가 원망스럽다기보다 이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내가 바보 같았다.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 한번도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을 알고 있다.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왜’라는 부사를 가장 사랑했던 철학자 소크라테스였다. 그는 자신과 타인의 모든 행동에 ‘왜’라는 부사를 접목시켰으니 자신에게 이는 작은 감정에 있어서도 ‘왜’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던졌을 것이다. 그런 태도가 화를 소멸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그 엘리베이터 안에서 소크라테스처럼 ‘왜 화가 났을까?’ ‘지금 이 화의 본질은 무엇일까?’에 대해 탐구하였다.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안 보이던 것이 조금씩 보였다. 나는 어디에 가서든 일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사실 맥도날드 라이더는 음식을 직접 만들거나 챙길 의무까지는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일 잘한다는 인정을 받고 싶어 감자도 직접 담고 커피, 플러리, 셰이크, 맥피즈 등도 어떻게 만드는지 유심히 관찰해 직접 만들어서 배달을 갔다. 그런데 그 매니저는 이런 나의 노력을 몰라주고 내 자존에 상처가 되는 말을 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 무너진 자존감을 끌어올리려는 욕구를 감지했고 그것이 ‘분노’라는 불편한 감정을 만들어 내었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매장으로 돌아가 그 매니저에게 화를 내거나 ‘사실은 그게 아니라..’ 식으로 따지듯이 말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사실관계’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매니저에게 화를 내거나 변명을 하는 것은 서로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음을 감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불편한 감정을 안은 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은 그 매니저는 어제까지만 해도 본인이 원하지 않았던 파견 근무를 갔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매니저는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짜증을 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짜증은 정당화될 수 없겠지만 아직 그녀는 나이가 어리기에 감정 처리가 세련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면 그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더 힘들 것이고 그러면 다음에라도 내가 그녀에게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그 노력은 효험이 없을 확률이 높아진다.



모든 감정이 마찬가지겠지만 ‘화’라는 감정도 목적성을 지닌다. 나는 감정의 메시지를 빠르게 읽어나갔다. 어차피 내 자신을 존중 받고 싶어서 무의식에서 화가 발생한 것이고, 그 존중은 좋은 관계에서만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나는 최선의 방법을 궁리했고 답은 이것이었다. 매장으로 돌아간 뒤 나는 “ㅇㅇ매니저, 며칠 동안 파견근무 갔다 온다고 많이 힘들었지? 아무튼 우리 매장은 매니저들만 빡시게 굴린다니깐!” 이렇게 말하고 나는 최대한 성실히 일에 임했다. 난 내 감정의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해 성의를 다하였고, 스스로에게도 그 과정을 납득시켰다. 그 시간 이후로 더 이상 ‘화’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사람은 물에 빠졌을 때, 살고 싶은 마음에 몸에 더 힘을 주어 발버둥 치지만 그러면 더 깊게 가라앉게 된다. 정말 살기 위해서는 몸에 힘을 빼고 유연하게 헤엄쳐 나오는 것이다. 감정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본다. 화가 난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힘 주어 화를 내는 것은 어떤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고 상황만 더 악화시킬 뿐인 것 같다. 감정의 동요 앞에 부드럽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대처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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