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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Mar 29. 2016

미래 부정

설날 전, 습관처럼 글쓰기 모임, 사업, 건강 등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심각하게 하고 있었다. 그때 엄마랑 마트 장을 보러 갔는데 그날 그냥 날씨도 꾸릿꾸릿 하고 사람들도 숨 막힐 듯 많아 현기증이 났다. 공황이 올 것 같아 불안했다. 그때 갑자기 어떤 영감이 스쳤다. 지금 이 공간에서 숨막혀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만약 ‘지금 엄마랑 마트 장보는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면?’ ‘오늘 하루가 내 삶의 전부라면, 내가 그 사실을 안다면 나는 어떨까?’ 하며 찌릿해 했다. 이런 생각이 나를 관통하고 나서야 깊은 숨을 쉴 수 있었다.



나는 평소에는 늘 미래를 걱정하다 공황이 한번씩 찾아오면 그제서야 ‘그래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데.’ 이런 생각이 들면서 미래를 의식에서 밀어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이 세상의 모든 불안, 분노, 우울 등 안 좋은 감정들은 전부 ‘미래’를 깊게 생각할 때만 나타나는 것 같다.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모든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 열반, 즐거움 등은 내 의식이 현재에 집중했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물론 우리는 미래를 고려할 수 밖에 없다. 공부도 하고 사업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야 한다. 이런 골치 아픈 일들을 해야 할 암묵적인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래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것과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한다. 그냥 내 몸은 미래를 위해 움직이지만 내 정신은 현재에만 머무를 수 있다. ‘just do it’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노트 필기에만 몰입하다가 공부를 반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즐겁게 현재를 즐겼더니 음악, 스포츠, 일을 잘하게 되었다는 주변의 얘기도 자주 듣는다. 미래에 대한 욕심이 없어야 오히려 더 일이 잘 풀린다.



아무튼 나는 이날 마트에서 얻은 영감을 증발하듯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 이후 내 명상의 방법을 바꾸었다. 예전에는 그냥 무념무상으로 호흡에만 집중하려고 했는데, 관념을 제도화시켜야 오래간다는 알랭 드 보통의 말을 참고하여, 이제는 명상할 때 이런 소리를 내었다. “지금 이 순간이 전부이다”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이렇게 소리 내어 내 의식이 미래로 슬며시 빠져나가는 것을 저지했다.



그랬더니 확실히 내게 변화가 나타났다. 세상은 어차피 ‘의무’로 나열되어 있기에 미래를 신경 써야 하지만 이제 나는 놀라울 정도로 미래를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내가 미래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에만 의식을 집중하였다. 요즈음은 행복감이 더 자주 찾아오는데 이것이 다 바뀐 명상법 때문인 것 같다. 그 이후로는 공황도 안 온다. 과장되게 말하면 지금 나는 미래와 현재가 완전히 분리된 것 같아서, 내일 내게 무슨 사고가 생긴다고 해도 현재에 흐트러짐이 없을 것 같다.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면서 “지금 이 순간이 전부다”라고 10번만 말하자. 기적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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