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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Sep 28. 2016

재미있는 공익생활

나의 동사무소 생활은 재미있었다. 내가 하는 주된 업무는 기초생활수급자들, 노인, 장애인들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동사무소에서 하루는 엑셀 등 컴퓨터 업부, 각족 민원 업무, 관내 청소 등으로 정말 바빴고 매일 새로운 일들을 배웠다.


내 생활은 계속해서 신선했다. 나는 매일 레벨업하는 기분으로 살았다. 심리학자 빅터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찾은 자는 정서적으로 아프지 않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삶의 의미는 게임에서의 점수와 같은 개념이다. 내가 매일 성장하는 것이 점수로, 눈으로 확인이 되고, 전에 못했던 일들을 어느 순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삶의 의미를 만지는 이 순간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정서적으로 건강한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게임에 몰두했던 것도 내 무의식이 이런 게임의 효과를 느껴서였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공황에 게임이 큰 치료 효과가 있다. 그런데 게임에 너무 몰입하면 현실과의 괴리감이 생기기 때문에 나중에 우울증이 올 수 도 있다. 만약에 우리 삶이 게임과 같이 의미를 손으로 만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당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원식아, 고마워!" 였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가치가 올라간다고 느꼈다. 나는 공익하면서 월급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내게 일 시킬 때마다 그런 말을 많이 한 것이다. 공무원들뿐만이 아니라 우리 동의 주민들도 내게 고마움을 많이 표시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할 때마다 내 자존감도 올라갔다. 내가 읽었던 그 많던 자기계발서에선느 한권도 빠짐없이 내가 행복하려면 남들을 도와주라고 하였다.


당시 공익 동기, 후임, 공무원들과 매일 같이 동사무소 2층에서 탁구치고 마치면 같이 농구나 족구 등의 운동을 했다. 직원들의 집에도 자주 놀러가고 삼겹살에 소주도 많이 먹었다. 모든 직원들이 내게 잘해주었지만 나의 사수였던 사회복지사 누나는 특해 내게 더 잘해주었다. 그 누나는 착하고 예뻤기 때문에 내가 누나를 약간은 이성적으로 좋아했던 것 같다. 난 아무 걱정이 없었다. 나는 아직 내 미래를 걱정하기에는 군생활이 많이 남았었다.


내가 한 달에 15만원을 받았지만 우리 아빠가 대기업 다니고 있어서 경제적 어려움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나에게 동사무소 출퇴근하라고 중고차도 사주었다. 나는 이 차로 수급자들 쌀도 나눠주는 등 공적인 일도 많이 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인생에서 3가지만 만족스러우면 공황장애나 우울증 같은 신경증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세가지는 인간 관계, 일, 그리고 사랑이다. 나는 그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웠고 내게 공황이 올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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